누구를 위한 결혼식인걸까,

by roun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겨우 결혼식을 하는 마당에 정은이 꿈꿔 왔던 화려한 결혼식은 가당치도 않았다.

정은과 성호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결혼 준비를 해 나갔다.

하루는 혼주 한복을 대여하기 위해 성호 어머니를 모시고 대여점을 찾았다.

성호 어머니의 낯빛이 내내 어둡다고 느끼고 있었던 정은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얼굴이 환하게 돋보이는 컬러를 열심히 골라 드리며 살갑게 굴었다.

한복 계약을 마치고 대여점 문을 나서자 성호 어머니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단 듯, 성호에게 난처한 속내를 비쳤다.


"아버지가 정은이 집을 마음에 안 들어하셔."


"아버지가 왜?" 성호는 어머니에게 되물었다.


"정은이 부모님은 이혼하고 각자 재혼해서 살고 있잖니! 이혼 가정 반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은이 듣는 앞이었지만 성호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나, 엄마! 우리 둘째 작은 아버지는 이혼 안 하셨어? 둘째 작은 아버지도 이혼하고 혼자 사시는데 뭐가 문제야 도대체?"


정은의 앞이라 그런지, 아니면 성호도 부모님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성호가 순간 발끈했다.


"야! 둘째 작은 아버지랑 정은이 부모랑 어떻게 같아! 비교를 해도 너는 어디서 말도 안 되게."


정은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자신이 계속 있는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길 한복판에 서서 정은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도로에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성호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는 길.

정은과 성호는 서로 말이 없었다.

솔직히 정은은 성호 어머니의 말과 행동에 화가 많이 나있었다.

정은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아도 될 일인데 정은이 듣는 앞에서 그러는 건, 정은의 아픔보다 자신들의 속상함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성호에게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한 정은은 어느 건물 한편으로 숨어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있는 힘껏 퍽퍽 내리치기 시작했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은 또 있었다.

정은의 엄마가 말했다.


"네 결혼식 혼주석에 아저씨가 앉아야 하니까 아빠한테 결혼한다고 얘기하지 마!"


며칠, 성호 어머니 말 때문에 신경 쓰여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나 골머리 썩고 있던 찰나에 정은 엄마의 발언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정은을 그대로 주저앉혔다.


"엄마! 말이 돼?


"나를 키워준 건 아빠야.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키워준 공도 모르고 내 발로 집 나와 엄마한테 오긴 했지만 고생하며 키워준 아빠한테 어떻게 결혼한단 말을 안 해?"


"야! 너 생각해 봐! 네 말대로 아빠가 고생해서 너를 키웠는데 너 아빠 버리고 나한테 왔지? 아빠가 배신감에 딸 없는 셈 칠 테니 연 끊고 살자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결혼한다고 갑자기 아빠한테 연락해 봐. 네 아빠는 대번에 결혼식 비용 좀 대주려나 아쉬워서 연락했다고 생각할 거야!"


정은은 아빠에게 결혼식 비용을 손벌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늘 엄마가 그리웠던 정은은 아빠 몰래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빠의 욕설과 발길질을 감당해야 했다.

정은 엄마의 외도로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된 정은 아빠는 늘 분노에 차 있었다.

불결한 자신의 아내를 아이들이 엄마라며 찾는 것이 싫어 정을 떼게 하려고 애썼다.

정은의 아빠는 아내의 외도 증거물을 딸인 정은 앞에 매일같이 펼쳐 놓고 정은에게 엄마는 나쁜 사람이니 찾지 말라고 말했다.

아빠가 정은에게서 엄마를 차단하려 할수록, 정은은 사무치게 엄마가 그리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정은이 숙제처럼 하는 일은 할머니가 지운 엄마의 흔적들을 돌려놓는 것이었다.

옷장에 남아있는 엄마의 옷가지들을 코에 박고 엄마 냄새를 맡으며 울었다.

그런 정은을 할머니는 미워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정은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정은의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저 년, 뒤태도 엄마랑 꼭 빼닮아가지고 아휴 꼴 보기 싫어!"


할머니의 차별과 구박은 정은을 집 밖으로 내밀었다.

갈 곳이 없던 정은은 결국 엄마를 찾았고 그렇게 정은은 아빠와 절연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들 다 아는 내 딸의 결혼 소식을 아빠인 자신이 모르고 있었단 사실을 알면 아빠의 절망이 클 것 같았다.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아빠의 몫이고 정은은 무조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은의 엄마는 완강했다.


"너 내가 혼수에 결혼식 비용까지 다 댔는데, 엄마 생각해서 그것도 하나 못해줘!?"


정은은 자신의 엄마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말을 들고 있자니 오히려 정은 자신이 세상 나쁜 딸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불현듯 정은은 결혼식을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 결혼식 안 할래."


"결혼식 안 하고 살면 네 시부모가 사는 내내, 너 무시해. 식 하고 안 하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너는 그런 소릴 해!"


엄마의 말에 정은은 다시 한번 얘기했다.


"아니 나, 이 결혼식 안 할 거야. 못 하겠어!"


정은은 얼굴이 얼얼할 정도로 울었다.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에 뭐 그리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간섭도 많은지, 자녀들의 온전한 행복을 빌어주는 어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고민이 깊어진 정은은 친자매라고 느껴질 만큼 가깝게 지내던 시누이 여진에게 의논했다.

정은의 고민을 듣고 있던 여진은 정은에게 말했다.


"언니, 그분 손 잡고 입장하는 거 3초면 끝나! 언니가 3초만 참으면 언니 어머니가 30년 편하게 지내실 수 있는데 그걸 못 해?"


여진의 말에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진은 생각이 트여 있고 현명한 여자인 것처럼 느껴져 정은은 여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정은은 결혼 소식을 아빠에게 전하지 않았다.

엄마의 남편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하기로 했고 혼주석에도 엄마와 엄마의 남편이 앉기로 했다.

청첩장에 엄마의 남편 이름을 넣는 대신, 정은은 자신의 성을 쓰지 않기로 했다.

정은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자신을 위한 결혼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정은은 더 이상 다가오는 결혼식이 기대되지 않았다.


정은이 새아빠를 엄마의 남편이라 칭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정은의 아빠가 정은에게 매일같이 보여주던 엄마의 외도 상대를 정은이 아빠라고 부르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은의 엄마는 정은이 자신의 남편에게 아빠라고 불러주길 원했고 친딸처럼 살갑게 굴어주길 바랐다.

정은이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해주는 날엔 남편의 지랄 맞은 주사가 좀 덜했다.

정은의 엄마는 정은의 어려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결혼식만 끝나면 엄마와도 끝이란 생각으로 정은은 버텼다.


결혼식 당일.

청첩장에 자녀들 성이 없다는 걸 눈치챈 몇몇 하객들의 질문에 성호 부모님은 불편한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범벅이 된 정은을 보고 신부가 울어도 너무 운다며 다들 의아해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정은과 성호는 식장 밖에 서 있는 정은 엄마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마침 그 앞을 성호 아버지가 지나갔고 정은은 상견례도 어머니들끼리만 했으니 이 기회에 두 분을 자연스럽게 인사시키면 좋을 것 같았다.


"아버님, 오늘 고생 많으셨죠. 이 분이 저희 아버세요."


정은도 편히 소개한 건 아닌데 성호 아버지는 듣지 못한 척, 그 자리를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성호 아버지는 그날, 그 시간의 불편함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내가 아주 하객들 앞에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세상천지에 이런 결혼식이 어디 있냐!"


성호 아버지의 격앙된 목소리에 정은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반박할 말도, 변명할 여유도 없었다.

사실 정은도 그날의 공기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하객들의 낯빛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아버지의 날 선 비난은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정은의 가슴 한복판에 꽂혀 들어왔다.

정은은 묵묵히, 모든 말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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