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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팬더 Jan 01. 2023

로널드 리드 이야기

-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재능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입니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는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 버리고,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앞으로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당연히 남들을 앞서고 싶다면 더 빠르게 달려야겠죠.


 경영학에서도 <기업의 혁신>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어느 기업이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어느덧 후발주자들에게 역전을 허용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업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를 하고 신사업을 모색합니다.


 재테크를 할 때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뭔가 열심히 하고 노력을 하고 하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만 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월급이 올라도 남들이 더 많이 오르면 내 월급은 인플레이션 hedge가 되지 않고, 내 집이 올라도 다른 집이 더 오르면 이사를 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테크 세상에 뛰어든 사람들은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내릴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남보다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흔히 무엇인가 특별한 재능이나 노력, 지식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재능, 노력, 지식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명문대 학벌,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자격증, 복잡한 금융지식 등을 연상하곤 합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들이 있어서 크게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있어서 '나쁜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재테크에서 요구되는 재능의 종류가 꼭 위와 같은 것들만 있을까요?


“로널드 제임스 리드는 미국의 독지가, 투자자, 잡역부, 주유소 직원이었다. 리드는 주유소에서 25년간 자동차를 수리했고, JC페니 백화점에서 17년간 바닥을 쓸었다. 38세에 방 두 개짜리 집을 1만 2천 달러에서 사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며, 그의 가장 큰 취미는 장작 패기였다.

2014년 리드는 9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러고 나서 이 시골의 허름한 잡역부는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2014년에 죽은 미국인 281만 3,500명 중 순자산 800만 달러 (약 90억 원 규모입니다)를 넘긴 4,000명이 되지 않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별다른 비밀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번 얼마 안 되는 돈을 저축했고 그 돈을 우량 주식에 투자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수십 년간 말이다.”                                              
                                                                                           (모건 하우절_돈의 심리학 중)


 이 일화를 소개한 모건 하우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널드 리드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의사보다 심장이식 수술을 잘하거나, 세계 최고의 원자력 엔지니어보다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며, 이것은 금융 성공이 대단한 과학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당연히 로널드 리드가 살았던 시절은 미국의 고도 성장기 (그 사이에 세계 제2차 대전과, 몇 차례의 석유 파동과, 베트남전 및 걸프전을 포함한 몇 차례의 전쟁과, 쿠바에 소련의 핵 미사일 기지가 설치될 뻔한 일이나, 1987년의 Black Monday와 2000년의 닷컴버블 붕괴, 2001년의 9.11 테러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앞의 사례들을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인정된 1950년대 이후의 11차례의 Recession 기간 등을 제외한다면 매우 매우 평화롭고 순조로웠던)라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번 돈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는 일화일 수도 있겠지요.

(매우 평화로웠던 시기였다)

 저자인 모건 하우절이 이 일화를 소개한 것은 단순히 "야 (평범한 너두) 재테크 성공할 수 있어!"라는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매우 평범한 의도는 아닙니다. 저 또한 저렇게 꾸준히 돈을 모으고, 우량주에 투자하고, 검소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수십 년간 한다는 것은 아이비리그의 졸업증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하나의 특별한 재능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소개한 일화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재테크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재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이 세간에서 일반적인 성공의 요소라 생각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반대로 세간의 일반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이 반드시 재테크를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식과 논리만이 재테크의 성공을 결정한다면 경제학자들은 모두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되어 있어야겠지요.


 성공의 예시로 들었던 로널드 리드의 방식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리드의 방식을 완전히 답습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직 성인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은 저의 아이는 배당과 시간과 복리가 주는 힘을 충분히 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량주를 장기투자하는 방식 외 다른 방식으로 주식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습니다. 주식 시장이 아니라면 다른 자산 시장도 좋습니다. 사업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습니다. (물론 사업의 벽이 낮아진 것과 별개로 그만큼 난이도도 올라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노력 또한 훌륭한 하나의 재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했던 마이트 가이 선생님이 팔문둔갑의 진을 극성으로 연마하고 세계관 최강자인 우치하 마다라에게 '자신이 상대한 최고의 격투가'라는 평을 끌어낼 정도의 천재 캐릭터라는 것은 함정이지만요...

(근데 나루토 결말은 죄다 선천적 혈통 빨...)

  

 재테크 세상에서 저의 재능은 무엇일까요? 항상 고민하고 있지만 쉽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자 한다면 '버티는 재능은 있다'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에 나온 지 어느덧 11년, 그동안 자산은 꽤 늘었지만 소비는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제 근로소득만으로 필요한 지출을 다하고 조금씩 자산을 쌓아오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깜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능한 제 능력 범위 내로만 일을 벌이고자 하였습니다.


 자산 시장이 좋았던 시절에는 스스로가 굉장히 답답하고 미련하게 느껴졌지만, 2022년 같이 상황이 좋지 않은 시절에는 마냥 나쁜 습관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변명입니다. 붉은 여왕의 나라는 빠르게 뛰지 않으면 뒤로 가는 나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습관이 이 나라에서 최소한 계속 달려갈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명줄 정도는 되어 주지 않았나... 그렇게 스스로를 달랠 뿐입니다. (물론 주식 시장에서 손실에 대한 가장 속 편한 변명은 '나는 가치투자자, 장기투자자다.'라는 뼈아픈 조언도 항상 가슴에 품고는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22년보다는 '23년의 현금흐름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소비는 더 줄일 수 있는 상황이고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023년도 조금 더 발버둥 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이번 글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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