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구체적인 종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 목적이 아니며, 주식의 향후 가치를 보장하는 글도 아님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식의 가치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상황 변경에 따라 본 글에 적힌 판단은 수정, 철회될 수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PRS계약은 많은 경우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한 계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필요한 쪽이 조금 더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PRS계약을 한다고 하면 투자자들은 일단 “회사가 사정이 안 좋은 거 아냐?”라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금조달이 급하게 필요한 상태라고 생각된다면 회사 주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지요.
하지만 모든 PRS계약이 회사의 긴급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소개할 SK디스커버리의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 사례의 경우, 다른 목적으로 PRS 계약을 체결하면서 hedge도 적절하게 된 사례인데 한번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19년 5월 1일 기준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의 지분 구조입니다. 기타 주주는 일단 제외하고 '19년 당시 SK㈜와 SK디스커버리㈜가 각각 44.5%, 28.3%를 가지고 있었네요.
문제의 발단은 2017년 SK디스커버리㈜는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로 전환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지주회사 : 공정거래법 제2조 및 시행령 제3조에 근거하여 자산총액 5천억원 이상의 회사 중 보유 중인 자회사의 주식 가액의 합계액이 해당 회사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를 의미]
지주회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각종 행위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행위제한 규정 중에는 비상장 자회사의 주식을 ‘최대주주로서 and 40% 이상’ 무조건 보유해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23년 현재는 법이 개정되어서 50%가 되었습니다)
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2년 이내로 위반 사항이 해소가 되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분 강제 매각까지 이론상 명할 수 있습니다.)
SK디스커버리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지주회사 전환인 2017년으로부터 2년 이내인 2019년까지 SK에코플랜트의 주식을 추가 취득해서 ‘최대주주 and 40% 이상’ 요건을 맞추자니, SK㈜의 지분을 다 사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SK㈜ 또한 지주회사라서 SK디스커버리가 위반 상태를 벗어나면 SK㈜가 행위제한 위반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SK(주)가 팔 마음도 있어야 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큰돈이 필요하겠지요.
그렇다고 SK에코플랜트 주식을 다 팔자니 SK에코플랜트는 비상장주식이다 보니 적당한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헐값에 넘기자니 많이 아쉽고... 결국 고민 끝에 SK에코플랜트를 상장시켜서 외부 매각을 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7월 SK에코플랜트가 시공하던 라오스의 댐이 붕괴하여 엄청난 희생자가 나오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연히 상장도 무산되었지요. 결국 SK디스커버리는 아래와 같이 2019년 주당 30,500원의 PRS계약을 통해서 SK에코플랜트의 주식을 기관투자자에게 넘겼습니다.
PRS계약의 경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결권 및 배당 권리 등이 매수인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진짜 매각으로 인정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속마음은 어떨진 모르겠지만 PRS 계약으로 지분 매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크게 문제를 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 4년이 지난 현재 SK에코플랜트는 기존의 건설 사업에 더하여 폐기물 재활용, 수처리 등 친환경 신사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SK건설에서 SK에코플랜트로 사명을 변경한 것도 단순 건설 사업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지요) 친환경 산업은 이리저리 수상쩍은 눈길도 받기는 합니다만 앞으로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상장 전까지 최대한 그럴듯한 포장을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요.
물론 SK가 계획한 청사진처럼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SK에코플랜트는 2019년 PRS 계약을 체결할 당시보다 그 가치가 꽤나 올라갔습니다. (단 위의 자료는 SK에코플랜트의 단독 가치가 35조원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SK그룹의 Green 산업 가치 목표를 의미합니다. )
22년 SK에코플랜트가 Pre-IPO를 진행하면서 기존 주주의 물량이 일부 매도가 되었고, 7월 21일 SK디스커버리는 PRS 계약 일부 정산 공시를 냈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시를 보면 2,702,702주가 정산이 되면서 SK디스커버리가 1,176억원을 정산받았다고 되어 있네요. 앞의 글에서 PRS 계약이 정산될 때 매도자가 정산을 받았다는 것은 기초 가격 대비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었지요?
이 자료를 토대로 대충 SK에코플랜트의 현 가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176억원을 2,702,702주로 나누면 @43,512원이 됩니다. PRS계약을 체결할 당시 @30,500원이었으니, 주당 약 42.7% 정도 가치가 오른 상황이네요. 어떻게 보면 저 정도의 수익률이 눈에 크게 띄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조 원 단위의 기업 가치가 40% 이상 올랐다는 것과 올해 급격한 긴축으로 IPO 시장이 엉망이 되었음을 고려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 성과 같습니다.
결국 SK디스커버리 입장에서는 PRS계약이 좋은 한수가 되었습니다.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행위 제한도 벗어나고, SK에코플랜트의 가치도 올라가서 금전적인 이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700만 주 상당의 물량이 PRS계약으로 묶여 있으니 SK에코플랜트가 계획대로 성장하고 본상장을 하게 되면 더 큰 이익을 올릴 수도 있겠지요.
이것으로 PRS계약을 자금 조달이 아닌 목적으로 사용한 사례를 보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같은 PRS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한 계약인지에 따라, 그 계약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처음 접하면 그렇게 쉽게 이해가 가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처럼 기업에서 Governance 관련된 업무에 주력하는 사람이라면 쓸 곳이 많지만, 일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니기도 하지요. 그래도 'PRS파생계약'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지 않나요? 이런 지식들을 정보들을 잘 공부한다면 앞으로의 투자 인생에서 힘이 될 하나의 무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