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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팬더 Jan 03. 2023

한국은행_금융안정보고서(4편)

- 2022년 기업신용 부분 (단기자금시장)

 안녕하십니까. 지난 글에 이어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서 '22년의 기업신용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한국은행이 기업신용의 Risk 요인으로 뽑은 것이 2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중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은 'a) 레고랜드 사태 이후 CP시장 동향 및 평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22년 10월 강원도가 과거 지급 약정했던 레고랜드의 PF-ABCP에 대한 지급의무를 미이행하면서, 해당 CP 2,050억원이 최종 부도 처리가 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본 ABCP는 발행 회사(강원중도개발공사)가 상환을 하지 못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지급을 보증하겠다는 약정을 하였기 때문에 A1 등급으로 발행되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단기 자금 시장에 대혼란이 발생하였지요. 즉 지방자치단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사기업을 어떻게 믿느냐는 심리가 시장을 강타하였습니다.


* ABCP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 유동화 전문회사가 매출채권, 리스채권, 회사채 등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CP)을 입니다.

** 유동화 전문회사 : 기업은 다수의 사옥, 공장 등 부동산과 매출채권(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고 거래처로부터 장래에 받을 채권), 금융채권(돈을 빌려주고 장래에 받을 채권) 등 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당장의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자산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융기관에 일정 수수료를 주고 유동화 전문회사를 만들어 이들 자산을 일찍 현금화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회사가 B회사에 물건 100억원치를 팔았는데, 이 돈을 10월 정도에 받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A회사가 15월 정도에 급하게 70억원의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A회사는 C금융회사가 만든 유동화 전문회사에 1억원의 수수료를 주고 100억원의 매출채권(B회사에 받을 채권)을 넘긴 후, 99억원의 현금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물건을 팔고 그 돈을 바로 받고 그 돈으로 비용을 바로바로 지급(임직원 월급을 준다거나 원재료를 산 기업에 대금을 준다거나)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단기적으로 받을 돈과 가지고 있는 돈과 줄 돈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위의 CP나 기업대출 등을 통해 단기 자금을 조달해서 자금을 회전시킵니다. (대기업이라면 거래 규모가 꽤 커서 며칠의 금융비용을 생각하여 받을 돈은 최대한 일찍, 줄 돈은 최대한 천천히 주는 것이 자금부서의 능력(?)이라지만... 이러면 하청 기업들은 눈물 나지요 ㅜㅜ) 이 흐름이 막혀버리면 최악의 경우 회사가 분명 이익을 내는데 도산을 하게 되는 경우도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흑자도산'이지요.


 물론 레고랜드 사태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의 자금 시장은 a) 긴축의 영향으로 약해진 체력 b) 한전 적자를 돌려 막기 위한 블랙홀 같은 한전채 발행 c) 건전성 강화 지침에 따른 금융권의 자본 확충 영향 등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레고랜드 사태는 도화선을 당긴 정도 수준이었지요.

(물이 넘치는 것은 항상 마지막 한 방울이다)

 

1. 결국 나온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장안정화 대책 ('22년 10월 ~ 11월)


- 9월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단기 자금 시장이 혼란을 겪었고, 결국 10월 원 채무자의 불이행 사례가 연달아 나오면서 신용보강을 약정한 증권회사 등도 같이 흔들리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CP금리가 급등함은 물론, 금리를 높게 주고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으면 다행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요.


- 결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빠르게 시장안정화 대책(10월 23일), PF-ABCP, CP시장 추가지원 방안(11월 11일), 추가 시장안정화 대책(11월 28일) 등을 연이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 매입 재개, 회사채 및 CP 매입프로그램의 매입대상 확대, 증권금융의 증권회사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 등을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은행도 발을 맞추어 한국은행 대출 등 적격담보 대상증권 확대, 차액결제 담보증권비율 인상 유예, 증권회사 및 증권 금융 등에 대한 한시적 RP매입을 발표하였습니다. 시장에서 기업의 단기 자금 조달이 어려우니 정부와 한국은행이 직접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게 된 것이죠.

* RP (repurchase agreement) :  채권발행자가 일정 기간 후에 금리를 더해 다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으로 `환매조건부 채권` 또는 `환매채`라고도 합니다.

- 규모로 보면 약 55조원의 규모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우리나라의 5대 금융지주 (KB, 신한, 하나, 우리, NH)에서 95조원 규모의 대책을 연달아 발표하였습니다. (물론 95조원 중에는 아래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출자액 중 금융지주 몫이 중복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시장안정화 대책 반응


- 처음 시장안정화 대책이 나왔을 때는 굉장히 시큰둥한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몇몇 증권사는 곧 무너진다. 모 대형 건설사가 부도가 난다더라 등의 정체불명의 괴소문들이 시장에 돌아다녔었지요. 참 분위기 흉흉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2년이 가기 전까지 아주 큰 문제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모 대형 건설사도 (계열사 주주들의 눈물을 대가로) 계열사 자금 지원을 통해 자금 조달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당시 소문이 돌기로는 그 건설사가 자금 조달 계약을 도장 찍기 직전에 저런 소문이 돌아서 그 작업이 cancel 되었다는 말이 있더군요. 위기가 있어서 소문이 돈 것인지, 소문이 위기를 만든 것인지... 어차피 확인할 수 없지만 참 애매한 일입니다.


- 여하튼 12월 29일 금융위에서는 (3)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단 한숨은 돌렸다고 총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일찍 나온 한국은행의 본 자료에서도 어느 정도는 한숨을 돌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CP, 공사 CP, 증권사 CP의 경우 금리 급등세가 잠잠해진 상태입니다. 아주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으나 금리 상승세가 떨어졌다는 것은 매수 수요가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각종 CP의 만기 도래 일정도 '22년 12월을 피크로 하여 '23년 1분기가 지나면 상반기가 지나면 조금 안도의 숨을 쉬어도 될 정도입니다.  


- 앞에서 레고랜드 사태가 트리거가 되었다고 적은 바가 있습니다. 이 사태 이후 엉덩이가 무거운 정부 및 한국은행이 움직였고,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던 한전은 한전채 금리를 갑자기 조정하면서 (그래도 5.99%는 너무 티 나잖아요) 속도 조절에 나섰습니다. 설마 이것이 모 정치인의 big-picture는 아니었겠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응... 이건 아닐 거야 아마도)

- 물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버티는 PF-ABCP 발행금리는 아직 문제입니다. 그래서 금융위원회도 PF협의체를 통해 '23년도 계속 관리를 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일단 부동산경기 둔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의 부동산금융과 관련되어서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문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중소 건설사들은 도산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본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이미 언급했듯이, system risk로 번지지 않는 수준에서만 관리가 들어갈 가능성이 크겠지요. 즉 중견, 대기업 건설사로 불이 번지는 것은 막겠지만 그 이하는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습니다.)



3. 시사점 : 긴축을 하면서 돈을 푼다고? R**

(이 내용은 쉽지 않은 내용이라 업라이즈 이효석 이사님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원래부터 있었던 개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레고랜드 사태 이후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개념인데요. 아래는 10월 초 Bloomberg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R*를 중립금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중립금리가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상태가 긴축입니다. 현재 미국은 R*가 0%대가 되는 수준의 기준금리를 5%~5.5%로 보고 있지요.

- 원칙적으로 제대로 된 긴축 상태라면 R* 까지는 긴축정책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R**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R**는 financial stability 즉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되는 금리 수준입니다. 즉 긴축을 하는데 금융시장이 엄청나게 흔들려버리면 실물시장의 인플레고 뭐고 간에 system 붕괴를 막기 위해 긴축을 중단하든, 다른 방식으로 돈을 풀든 수를 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이 R**가 R*보다 낮은 곳이 다수입니다. 아직 긴축이 종료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기침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지난 '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실물시장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커졌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정부나 중앙은행이 인플레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전면적인 금융정책의 전환(ex. 양적완화나 금리인하 등)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사례에서 보듯 긴급한 상황에서 국지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우선 발동하겠지요.


-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실물시장에 돈을 푸는 것과, 금융시장에 돈을 푸는 것이 점점 괴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취한 '국지적인' 조치가 대략 130~150조원 규모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패와 비리의 사례로 공격받았던 각종 국가적 사업보다 월등하게 규모가 큽니다. 금융시장에서 '전면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자금 규모가 될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장차 긍정적인 결과로 올지 부정적인 결과로 올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테크 시장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은 분명하게 인지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어쩌면 비대해진 금융 시장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실물 시장에 남아있더라도 금융 시장을 살리기 위해 그쪽으로는 돈을 풀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중앙은행이 2%라는 모호한 인플레이션 목표 자체를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이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계속 반복해서 너무 지겨운 말이 될 수도 있지만, R*와 R**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금융안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이번 글은 이 정도로 끝내고, 다음은 당분간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부동산 금융'에 대하여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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