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Why) 살아야하는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그, 이후

by 피오

주말 오전, 느긋하게 한 주를 돌아볼 겸 지난 한 주의 피로도 풀어볼 겸

목욕탕으로 향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20대 이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20대 이후에는 숙취에 시달리며 혼자서 목욕탕을 줄곧 다니곤 한다.


그러다보니, 따뜻한 탕 안에 몸을 녹이러 들어가면

1년 전, 5년 전, 10년 전, 20년 전에 당시에 탕에 들어가며 하고 있던 고민들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마치 예전에 맡았던 향을 오랜만에 맡으면 그 당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듯 말이다.


20대 초반,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과연 취직을 한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20대 후반, 무언가가 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했다.

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해답을 찾아 헤맸다.


그 무렵부터 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부터 아르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까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저마다의 해답을 내 놓았다.


나는 그 훌륭한 사상가들 덕분에 그들의 생각을 조금씩 빌려,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방향성을 갖출 순 있었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철학은 여행에서 길을 잃었을 때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여행은 왜 가야하는가?

이 질문은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했어야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던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부처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쇼펜하우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원한 공허인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살아간다고 한다.


내 삶의 이유라는 것은, 나의 실존과 맞물려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해답을 찾지 못하면 나의 존재가 부정되고야 말 것이고, 그것은 딱히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이유를 쉽게 외부의 존재에서 찾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부모는 아이들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지 않는가.


철학자들은 위대한 사상을 위해, 음악가들은 음악을 위해서 살았을 것이다.(아마도)

그렇다면 부모도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어떤 삶의 이유를 가져야할 것인가?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살다 죽을 것인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오는 것에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아갈 것인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부모라도 되야하는 것일까?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따르면,

어쩌면 지금의 삶이 단 하나의 변동도 없이 무한히 반복될 수도 있다.

다시 살아도 똑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을 이끌어갈 동력은 무엇일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통과 행복의 끝이 서로 맞물려 있듯이, 고민과 해답도 서로 맞물려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메멘토 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