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난다.

by 피오

월요일 12시 종로 3가 맥도날드.

볼일이 있어 종로 3가에 잠깐 들른 김에, 햄버거나 하나 먹을 요량으로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앉아서 햄버거를 먹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자리가 금방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리의 절반은 커피 한 잔을 시켜서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리고 살고 있을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그분들의 얼굴을 할퀴고 간 세월의 흔적과, 왠지 모를 서글픈 눈을 통해서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분들은 6.25. 전쟁에 참가하셨던 호국 영웅일 수도 있고, 8명의 아이들을 장성할 때까지 잘 키운 위대한 부모님일 수도 있으리라.

다만, 소싯적 위대한 업적은 이제 도서관 구석의 오래된 책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고,

혼자서 위대했던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며 매일 책에 쌓인 먼지를 털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삶이라는 게 이승이라는 테마파크에 놀러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저승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먼저 티켓을 끊고 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즐기고 때가 되면 퇴장해야만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불변의 사실이고,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그리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다 어느 순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곤 한다.

아마 사람들이 죽음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나이 들고 병든 모습을, 그리고 죽음 뒤에 있을 공허하고 허무한 상태를 떠올리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 11월. 조그마할 때 데리고 온 우리 집 고양이가 갑자기 고양이별로 떠났다.

그렇게 허망하게 그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살아서 이곳에 남은 나는 추억을 반추하며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와 슬픔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빠르게 다가올 줄 몰랐다.


나도 죽음이 두렵다. 가끔 사랑하는 존재들이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내가 먼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젠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도, 그리고 나도 언젠간 이승이라는 테마파크를 떠나야 할 것이다.

독감이 유행하면 예방접종을 하듯, 경제가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금을 사모으듯

우리는 100%의 확률로 일어날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


언젠가 있을 나의 죽음을 대비해 하루하루 낭비하지 않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죽음 앞에선 그 어떤 문제도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 일상의 사소한 일로 시기 질투하고 분노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언젠가 있을 사랑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대비해, 그들을 나와 같이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또 표현해야 한다.

꿈속에서 만났던 존재들을 깨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죽음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이 귀가가 아니듯, 삶의 목적이 죽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다시 일상을 향해 돌아갈 생각을 하면 순간순간이 더 재밌고 애틋하듯이,

우리도 죽음을 생각할 때 이 삶을 더 행복하게 즐기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귀천이라는 시에서 말하듯 인생은 잠깐 나온 소풍이다.

모두들 본인들만의 소풍을 행복하게 즐기다 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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