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에 뛰어들다
시작은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힘들었지, 하며 천장에 한숨을 뱉었던 어느 새벽. 글을 쓴 적이 없던 낯선 곳에 갑자기 나의 문을 열어 흔적을 남겼다. 오히려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 툭, 꺼낼 수 있는 고민처럼. 요지는 오래전부터 취미로 두었던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25살에 들어와 34살이 된 공무원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싶습니다,였다.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미친 짓이라는 날 선 댓글부터, 불합리한 일들을 요구하는 조직이라면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까지. 무려 80개가 넘는 댓글. 읽고 또 읽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새 고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견고한 똬리를 틀고 있었다. 먹고사니즘은 중요한 문제지만 행복도 잡고 싶은 욕심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직업은 웃는 척, 일 잘하는 로봇인 척, 하는 인형탈이었다. 인형을 둘러메고 척만 멋지게 잘하면, 가끔 칭찬을 들으며 커리어우먼 행세(?)도 할 수 있고 사람들의 부러움도 받는 직업일 테지만 명백하게도 난 행복하지 않았다. 가끔은 눈물로 만들어진 감정의 저수지에 나를 집어 담갔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세상을 구경하며 사무실 풍경을 잊기도 했고 누구나 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고 채찍질도 했다. 점점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 보기 좋아하는 꽃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꽃은 피었지만 나는 병들고 있었다. 분명히 깨닫는 건 이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 예의는 다른 사람에게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켜야 한다는 것.
퇴사를 준비하며 해야 될 게 뭘까. 내 인생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순 없기에, 곰곰이 생각했다. 연금 수령 가능한 시기를 꼼꼼히 계산하기? 퇴직금 가능 여부? 매월 지출되는 고정 생활비 지불 방법? 똑부러진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에 대해 아는 것이었다.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상사가, 혹은 부모님이 좋아하는 얼굴의 또 다른 나, 내가 만들어낸 웃고 있는 그 얼굴을 버려야 한다. 억지웃음을 버리고, 행복한 척을 접고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배부른 자아를 굶겨 내 영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샅샅이 찾는 거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행복감이 타인의 회의적인 시각으로부터, 혹은 가벼워진 주머니로부터도 견고한 벽처럼 나를 탄탄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안정적인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이라는 것은 새롭든 지겹든 간에 똑같이 견뎌야 하는 지점이 있고 새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걸 갈고닦을 인고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투여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출처는 반드시 나여야 한다. 이건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처럼 로맨스 같지만 스릴러일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표지와 주관적인 의미의 나, 그 둘을 모두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유형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가, 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뭘 할 때 진심으로 웃는지를 찾는 거다.
글을 쓰게 된 것도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이다. 누군가 이 여행에 동참해주면 좋겠고, 이 글들이 지도에 있는 수많은 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