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수 May 07. 2023

록 음악을 통해 체화한 가치, 자유

록커의 술과 사람, 음악 이야기 ⑤

  ‘자유’에 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직선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7년 이후 국민학교에 입학해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민주주의라는 건 사회, 국사 교과서에나 쓰여 있는 단어일 뿐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철지난 유교주의, 군사주의 문화가 기승을 부렸다. 죽어서 손자에게까지 디스를 당하는 전두환도 유화정책으로 교복두발 자율화 조치를 내놓아 80년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적어도 겉으로는 스타일이 자유로운데, 10여 년 뒤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내내 스포츠머리에 칙칙한 교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뿐인가. 교사들로부터 얻어맞고 기합 받는 건 일상이었다. 일상이어서 무덤덤할 정도였다. 웃으며 때리고 웃으며 맞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폭력에 익숙해지니 폭력의 기준 또한 애매해져 폭력이 교사의 개그코드로 둔갑하거나, 맞는 학생들이 교사의 폭력을 ‘사랑의 매’로 받아들이는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 펼쳐지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군사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X세대들이 여태껏 한국에서 보기 힘들던 개성을 드러내며 거리를 활보할 때 나와 내 또래들은 문화지체란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자유’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방종’이나 ‘일탈’을 ‘자유’라고 착각했다. 주변에 진짜 ‘어른’은 찾아보기 힘들고, 법적 ‘성인’들만 넘쳐났다. 성인들은 제멋대로 구는데 학생들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니 자유는 성인들이 누리는 것들에 있다고 판단해 버렸다. 술, 담배, 섹스, 도박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성인들은 청소년기 음주나 흡연이 왜 나쁜지, 욕정 해결만을 위한 섹스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도박이 사람의 판단력을 얼마나 흐리게 하는지를 알아듣게 가르쳐 주기 전에 욕설을 날리고 두들겨 팼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청소년의 음주율과 흡연율은 증가 일로에 있었다. 폭력은 분노를 제어할 줄 모르는 성인들이 당면한 두려움을 잠시 해소하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최근 뇌과학 연구 결과 모든 분노는 두려움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 성인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라고 착각한 행위)를 좀 더 일찍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찾아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내가 그랬다. 어머니가 건강하게 낳아 주었기에 망정이지 중학생 때부터 입에 댄 술담배의 양을 가늠해 보면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할 지경이다. 


  술, 담배에 이어 도박이니 섹스니 하는 다른 잡기에까지 빠져들지 않았던 건 록 음악을 접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게 된 덕분이다. 술담배는 성인들이 하는 걸 나도 한다는 왜곡된 자유의 환각에 불과했지만, 록 음악은 그 자체로 엄청난 쾌감을 선사했다. 좋아하는 멜로디와 리듬을 내 손으로 연주해 나간다는 건 신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드럼의 강렬한 비트와 앰프에서 쏟아지는 음압을 온몸으로 느끼며 밴드 멤버 간에 합을 이루어 나갈 때는 어떤 황홀함마저 물밀 듯이 밀려왔다. 록 음악과 기타 연주에 한참 빠져들었던 고등학생 때는 술담배를 잊을 정도로 기타 연습에 매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의무감에서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타를 잘 치고 싶었고 무대에서 록 음악을 멋지게 연주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나의 자유의지가 온전히 녹아들었던 순간이다. 록 음악이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전복, 모든 압제로부터의 자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라는 인식 따위는 없을 때였다.(그러한 인식 또한 록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중 일부일 뿐이다) 단지 록 음악을 연주하는 그 자체, 그 순간이 내게는 자유였다. 물론 따로 배울 데도 없었고, 일렉트릭 기타 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위 분위기 때문에 방구석에서 책 한두 권에 의지하여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 요새 유튜브만 찾아봐도 레슨 영상이 넘쳐나고 부모들도 아이들이 기타 치는 걸 적극 지원해 주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마따나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개인이 누리고 싶은 것을 기꺼이 누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 때쯤 되니 나도 그 예전 까까머리 학생들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온 힘을 실어 매질을 해 대던 교사들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다행인 건 록 음악을 25년 넘게 해 오며 의식적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유를 체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 과정이 음악을 제외한 그 밖의 삶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폭력과 무분별한 통제가 교육의 수단이 되거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피치 못 하게 거쳐야 할 사전 단계로 인식된다면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세울 수도 없고, 개인이 자유로운 주체로서 온전히 설 수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 호에서 다룬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기치로 내건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록 음악이 히피 문화의 상징이 된 것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록 음악은, 로커들은 그 자체로 자유의 주체일까. 이 주제는 다음 호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

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3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무덤덤해졌다는 건 4·3 앞에서 착각에 불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