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진짜 소중함
버스 문이 닫히자마자 엔진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피곤해 보이던 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산의 정기를 받았는지 모두 눈이 반짝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샘솟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올 때와는 달랐다. 선생님 앞에서 어색해하던 모습도, 눈치 보며 조심스러워하던 부끄러움도 온데간데없었다. 큰 목소리로 떠들고, 오전에 얌전했던 학생까지 일어나 노래하고 춤췄다. 버스는 K-pop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몇 시간만 참으면 된다고, 참자고 되뇌었다. 하지만 통증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글부글 가스가 차올랐다. 배 속에서 요동을 쳤다.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춰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인상이 써지고 웃음기가 사라지자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단체 관광이었다. 개인적인 문제로 버스를 세울 수는 없었다. 곧 설사가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염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굴뚝같은 마음을 억누르고 버텼다.
학생들이 움직였다. 버스 기사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30분 정도만 가면 중간에 쉴 수 있대요. 그때 화장실 가시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여기서는 멈출 수가 없대요."
30분을 버텨보기로 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배는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부글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학생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30분을 버텼다.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하지만 공중화장실 앞에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일분일초가 급한데 어떻게 기다린다는 말인가?
그때 여학생들이 제안했다. "선생님, 저기 산속으로 들어가서 급한 일 처리하는 게 어떨까요? 저희가 망 봐드릴게요."
부끄러웠다. 교사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체면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곧 쏟아질 것 같은 긴급 상황이었다.
세 명의 여학생과 딸이 동행했다. 산속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망을 봐주었다. 염치불구하고 산속에서 일을 처리하려 했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이 탈났던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참았던 탓일까? 막상 큰일을 보려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배만 아프고 시원하게 치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로부터 버스 출발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빨리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지금 괜찮으세요?"
볼일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긴장과 부끄러움 때문인지 더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학생들 때문에 버스 기사와 문제가 생길까 봐 모두 버스로 돌려보냈다. 딸만 곁에 남겨뒀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버스에 학생들이 모두 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 학생들 앞에서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일을 치르지 못하고 쩔쩔맸다. 심지어 딸도 재촉했다.
"엄마, 빨리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안 끝났어요?"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학생들의 간절함과 딸의 재촉 소리를 무시한 채 어느 정도 해결될 때까지 꼼짝하지 못하고 급한 볼일을 치렀다.
몇 분이 흘렀을까? 배가 가라앉았다. 서둘러 일을 끝내고 딸과 함께 산에서 부산하게 내려왔다.
내가 탄 버스만 유일하게 출발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도 내 사정을 학생들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기다려주고 있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행히 버스 기사는 웃으며 맞아주었다. 버스는 바로 붕하고 출발했다.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제 괜찮으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음식 먹고 탈 나셨나 봐요. 저희 때문에 너무 고생하셨어요."
학생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미안해했다. 도리어 내가 미안한데 말이다.
설사 사건 이후 버스 안은 잠잠했다. 학생들도 피곤했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 축 늘어져 주저앉았다. 모든 긴장이 풀렸는지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재차 한 후 창가에 기대어 있다가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튀니스에 도착했다. 처음 관광버스를 탔던 바로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은 각자 짐을 챙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생님,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튀니스에 도착했어요. 이제 더 이상 배 아프지 않으세요?"
학생들은 눈을 뜬 나를 보자마자 염려하는 말을 쏟아냈다. 모든 참가자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걱정하며 한마디씩 건넸다.
잠을 자고 나니, 급하게나마 볼일을 보고 나니 어느새 배가 안정을 찾아갔다. 더 이상 가스로 부글거리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이제는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학생들을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켰다. 나도 하나둘씩 짐을 정리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선생님 덕분에 가까이서 눈도 보고, 폭포도 보고 심지어 눈을 손으로 만져봤어요."
학생들은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여행을 계획하고 여러모로 많이 챙겨준 학생은 끝까지 남아 나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먼저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선생님이 택시 타는 것을 본 후에 갈게요."
직접 택시까지 불러주었다. 그렇게 학생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인드라힘 여행, 이 여행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선명하다. 버스 안에서 K-pop을 노래하고 춤추던 학생들의 웃는 모습들, 눈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학생들, 폭포수로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내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던 따뜻한 손길들.
배 앓이 때문에 산속으로 들어가는 선생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들, 시원하게 펼쳐진 전경 앞에서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웃음꽃을 피우며 먹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염려하며 택시까지 태워서 보내준 따스한 친절함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행복하고 행복하다. 그 일만 생각하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학생들도 그 일을 나처럼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하다. 그러나 제발 그때 나의 부끄러운 일은 잊어주길 바란다. 오직 즐거웠던 일만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학생들아, 너희들 아인드라힘 여행 기억하지? 선생님에 관한 일은 제발 잊어줘. 그리고 좋은 기억만 간직해줘. 알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