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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파리 한복판에서 만난 작은 지구

19세기 온실 속 세계여행, Grandes Serres 이야기

by Selly 정

파리 한복판의 작은 지구 - Grandes Serres 이야기

어제 오후, 파리 5구의 Jardin des Plantes를 찾았다. 17세기부터 이어져온 이 유서 깊은 식물원은 내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다. 약 20헥타르의 넓은 부지에 프랑스식 정원, 장미 정원, 그리고 국립자연사박물관까지... 언제 와도 새로운 발견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다른 목적지가 있었다. 바로 *Grandes Serres*, 그 유명한 대온실들이었다. 파리 도심 속에서 세계 각지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는 그 특별한 공간 말이다.

온실 입구에 서자마자 나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유리벽 너머로 비치는 초록빛이 마치 다른 세계로의 입구처럼 보였달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파리에 있지 않았다.



열대우림 속으로의 시간여행

첫 번째 온실, *열대우림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얼굴에 닿은 것은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였다. 마치 아마존의 심장부에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거대한 바나나나무가 천장까지 뻗어 올라가 있고, 그 사이사이로 무화과나무의 넓은 잎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온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이었다. 물소리가 잎사귀들 사이로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자연의 BGM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나는 한참을 그 개울가에 서서 물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고, 오직 물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고사리들이 만들어낸 초록 터널을 지나며 나는 어린 시절 읽었던 모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곳곳에 숨어있는 난초들! 보라색, 하얀색, 노란색...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그 꽃들을 발견할 때마다 작은 보물을 찾은 듯한 기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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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침묵과 생명력

두 번째 온실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사막 및 건조지 온실*에 들어서자 아까까지의 촉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이곳에서 나는 생명의 끈질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키 큰 선인장들이 마치 사막의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었고, 다육식물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모양으로 생존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온 거대한 용설란, 남아프리카의 기묘한 모양의 다육식물들, 호주 사막의 독특한 관목들... 이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바오밥나무를 닮은 작은 나무였다. 뚱뚱한 줄기에 물을 저장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의 의지가 느껴졌다.



지구 끝 섬의 비밀

*뉴칼레도니아 온실*은 가장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식물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나는 지구의 다양성에 대해 새삼 경탄하게 되었다.

이곳의 식물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외계에서 온 것 같은 기묘한 잎사귀들, 상상할 수 없는 색깔의 꽃들... 자연이 얼마나 창의적인 예술가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4억 년의 시간을 거슬러

마지막 온실, *식물 진화 온실*에서 나는 시간여행자가 되었다. 4억 3천만 년 전 최초로 육지에 발을 디딘 식물부터 지금까지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원시적인 이끼류부터 시작해서 양치류, 겉씨식물, 그리고 현재의 속씨식물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식물들이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어 마치 지구 역사의 교과서를 걷는 느낌이었다.

특히 고사리류 섹션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공룡시대를 살아낸 그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Grandes Serres 의 내부



작은 지구, 큰 감동

Grandes Serres에서의 1시간 20분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파리 한복판에서 지구 전체를 여행한 듯한 느낌이었다. 각 온실을 나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연의 다양성, 생명의 끈질김,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파리에 머물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Grandes Serres를 방문해보길 권한다. 특히 봄이나 가을이면 더욱 좋겠지만 언제나 방문해도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는 공간이 될 것이다.

어제 오후의 그 경험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일상에 지칠 때면, 언제든 그 유리문을 열고 작은 지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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