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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나는 매일 산책합니다 1

이야기 1: 아들을 보내는 마음

by Selly 정


파리의 6월은 참 변덕스럽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오늘은 햇살이 따갑도록 내리쬐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산책을 떠나고 싶어진다. 걸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날.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면, 언제나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들에게서 받은 문자 때문이었다.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엄마, 상견례 장소 미리 정해놓을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 부모님이 그쪽에서 며칠 머물 계획이시래요."

처음엔 '굳이 그렇게까지?' 싶었다. 6월 중순에 알려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들의 설명을 듣고, 남편과 상의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며칠 머물 계획이라면 미리 알아두는 게 좋겠구나.'

그래서 언니에게 부탁했다. "언니, 빨리 좋은 장소 알아봐줘. 그분들이 이곳에서 며칠 머물 계획인가봐."

언니는 이틀 만에 세 곳을 추천해줬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가장 괜찮은 곳을 선택했다. 장차 사돈이 될 분들이 섭섭해하지 않을 만한 코스로. 아들에게 상세한 내용을 보내며 검토해달라고 했다.

"괜찮은 것 같아요. 좋아요."

아들의 답장을 받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비용은 좀 들겠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일 상견례만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어제, 아들의 문자가 왔다.

"예약 됐죠? 음식 어떤 코스 생각하시나요. 후기 보니 굳이 비싼 코스 안 해도 될 것 같던데... 런치코스도 있던데, 런치 섞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쪽에서 D코스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데, 혹시 변경 가능한가요?"

문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확 끓어올랐다. 뭐랄까,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그보다는... 내 아들이 벌써 '그쪽' 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슬펐다.

나도 감정적인 문자를 보냈다.

'나 조금 기분이 안 좋다. 그분들 때문이 아니라, 네가 벌써 그쪽 말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정말 아들은 장가가면 그쪽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말이 맞나 보구나. 이미 정해진 거고 바꿀 수 없어. 돈도 보냈어...'

길게 쓴 문자를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너무 감정적이었나? 얼른 지우고 좋은 말만 남겨뒀다.

몇 시간 후 아들의 답장: "넵 알겠습니다. 휘둘린 건 아니고, 비용 절감 차원에서 생각한 거죠."

메마르고 퉁명스러운 답장이었다. 내가 지운 문자까지 다 읽었구나. 아들도 기분이 상했겠지.


그래서 오늘, 나는 방센느 공원으로 향했다.

신발끈을 동여매며 중얼거렸다. "걸어야겠다. 산책을 해야겠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어폰을 끼고.

"왜? 무슨 일 있어?"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거리 한복판인데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큰 애가 점점... 내 말보다 여자친구 말을 더 듣는 것 같아. 왜 이렇게 슬프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나..."

남편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어떻게 해, 이제 아들을 떠나보낸다고 생각해야지. 부모와 자식은 1촌이지만 부부는 0촌이잖아."

전형적인 T유형답게 침착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아들이 잘못했네. 내가 나중에 전화해볼게. 아들도 배워가는 과정이겠지."

남편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이 조금 위로가 됐다.


방센느 공원에서의 깨달음

공원을 빙글빙글 돌면서 생각했다. 아들 입장, 장차 며느리가 될 사람의 입장, 그리고 나의 입장을.

1만 보가 넘는 걸음을 걸으며, 호수에서 헤엄치는 새들을 보고, 우아한 자태의 백조와 새끼들을 바라보며 자문했다.

'현명한 부모는 어떻게 하는 걸까?'

시원한 그늘 아래 초록색 벤치에 앉아 수첩에 적었다.

'장가보낸다. 자녀는 잠시 내 집에 온 손님이다. 손님이기에 잘 대접한 후, 때가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이다. 손님이 갈 때 잘 배웅하고, 나중에 놀러오라고 하면 된다.'

이 말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만약 아들이 캥거루처럼 계속 부모 품에만 있겠다고 한다면 그게 더 끔찍하지 않을까?

어떤 분이 말한 게 생각났다. "내 아들이 며느리 될 사람을 데려온다면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출 거야!"

그렇다. 예쁘고 착하고 능력까지 있는 며느리를 데려온다는데,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울증은 무슨 우울증! 빈집증후군?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마음의 평정을 찾다

점차 마음의 응어리가 사라져갔다. 가슴 한가운데 꾹 맺혔던 것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시원한 저녁바람에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무겁고 처졌던 발걸음은 어느새 가볍고 산뜻한 리듬으로 바뀌었다.

우울함으로 바라볼 때는 우중충했던 자연이, 긍정으로 시각을 전환한 후에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걸어가는 사람들, 런닝하는 사람들, 벤치에서 독서하는 사람들,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까지... 모든 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황혼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집으로 향했다. 다짐했다.

'집에 가서 긍정적인 문자를 보내야지. 아들이 전혀 기분 상하지 않을, 이모티콘과 함께하는 따뜻한 문자를.'


집에 도착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들의 문자가 와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긴 문자와 함께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라는 말이.

나는 이런저런 말 대신 깔끔하게 답했다.

"좋아요, 당신이 최고예요 �"

엄마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고맙다는 마음을 담은 이모티콘이었다.


새로운 다짐

이제 나도 서서히 변해야겠다. 다 큰 아들에게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 연습, 양보하는 연습, 성인이 된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엄마로.

손님으로 대하고, 손님이기에 예의와 매너를 가지고 대하는 태도. 부모와는 1촌이지만 부부는 0촌 관계인 것처럼, 부모보다는 배우자의 말에 더 귀 기울이는 것이 옳다는 걸 받아들여야겠다.

이건 '쿨한 시어머니'가 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매일 연습하면 피아노 실력이 늘듯이, 자꾸 그런 마음을 갖고자 연습하면 분명 그런 엄마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들아, 너의 결혼을 정말로 축하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도 방센느 공원은 내게 답을 주었다. 걸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걷는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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