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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산책합니다 4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라는 역설

by Selly 정

오늘 아침에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르시아 속담 'Hoc quoque transibit'에서 온 이 말은, 솔로몬 왕의 반지에 새겨져 있었다는 전설과 함께 수천 년을 흘러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다. 그 짧은 한 문장 안에는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압축되어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단, 미뤄야 하는 일만 말이다." 그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의아해할 때, 나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간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내일로 미루는 거야."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 마음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를 덮쳐버릴 때, 절망이 칠흑 같은 어둠처럼 우리를 감쌀 때,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를 때 말이다.

인간은 하루에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의 한계치가 있다. 마치 작은 그릇에 물이 넘쳐흐르듯, 우리의 마음도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겸허하게 그 무거운 감정들을 내일로 넘겨야 한다.

한 사람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그 사람의 내면을 말해주듯, 아침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우리의 표정 또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한 단서다. 세수하며 거울 속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어보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격려다. 희망보다 절망이, 기쁨보다 고통이 더 많이 찾아올수록, 그런 자기 긍정의 순간들이 더욱 절실해진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향하듯, 계절이 바뀌어 다시 돌아오듯,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도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기쁘고 좋은 일들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찾아오고, 또 지나가며 그렇게 반복해가는 거대한 리듬과도 같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라는 말처럼, 우리는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은 이런 것이다. 기쁘고 행복한 그 순간에는 최대한 기뻐하며 행복을 온몸으로 누리되, 그것이 지나갈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힘든 순간에는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치미는 분노를 잠시 내일로 미뤄두는 것. 그 무거운 순간들이 물러가기를 조용히 기다려보는 것.

- 라틴어 수업, page 687에서 발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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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두 가지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나는 쓰라린 상처의 기억이고, 또 하나는 달콤한 행복의 순간이다.

2022년, 부동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 해.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부동산으로 한탕을 꿈꾸며너도나도 임대시장에 뛰어들던 시절, 나 역시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으로 갭투자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그 순간은 이미 부동산 열기가 한풀 꺾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28개나 되는 미친 듯한 부동산 규제들이 쏟아져 나오며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할 때였다. 부동산 초보였던 나는 시장을 읽는 안목이 전혀 없었다. 유튜버들마저 "얼른 사라, 지금 사지 않으면 시기를 놓친다"고 부추기던 그 시절, 나는 소위 '끝물'이라는 최악의 타이밍에 갭으로 오피스텔을 덥석 계약해버렸다.

앞이 답답하게 막힌, 위치는 나쁘지 않았으나 앞집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늘 창문을 닫고 살아야 하는 그런 곳. 깊은 고민 없이 충동적으로 계약한 그 선택의 대가는 가혹했다. 계약금 1,***만 원. 매도자가 처음에는 2,***만 원을 달라고 했던 것을 간신히 깎아낸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미 부동산 시장의 '끝물'이었기에 매물들이 봄비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3개월이라는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임차인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전세금을 낮춰도 임차인들은 더 좋은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만 향했다. 앞이 막막하게 답답한 내 계약 물건에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3개월이 훌쩍 지나가도록 임차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매수자 명의가 남편으로 되어 있어서 본인 없이는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매도자에게 눈물로 애원했다. 날짜를 한 달만 더 연기해달라고, 아니면 매수자 명의만이라도 내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날짜 연기도, 명의 변경도 절대 불가하다는 차가운 통보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가계약금 1,***만 원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법무사를, 부동산 변호사를 10군데 이상 찾아다니며 매달려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절반이라도 돌려달라는 간절한 부탁도 무정하게 거절당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1,***만 원이라는 거금을 코 풀듯 가볍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남편과 한 달 넘게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했다. 내 인생은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고,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나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올랐고,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쌓여갔다. 내 얼굴에는 어느새 기미가 덕지덕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절망의 터널 같던 시간들이 흘러, 어느새 2025년이 되었다.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다. 놀랍게도 나는 그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써냈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펜을 들었던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부동산 공부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고, 진정한 신중함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유튜버들의 달콤한 말들도 무조건 믿지 않고 걸러서 들을 줄 아는 판단력도 조금씩 생겨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문장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건이었다.

정말 시간이 약이었다. 솔직하게 나의 잘못과 과도한 욕심을 인정하니, 남편과의 관계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이 해외에 있어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또 다른 한 장면은 따스한 행복으로 물들어 있다. 얼마 전 아들의 상견례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살던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에서, 파리에서 날아와 한국 땅에서 마주한 그 순간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견례를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5박 6일 동안 보석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유명 관광지를 함께 누비며, 하루 세 끼를 나란히 앉아 먹고, 매일매일 이곳저곳을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다니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추억을 담은 사진들을 찍어댔다.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2시간이 넘도록 도란도란 나누던 대화들, 그야말로 금보다 귀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런 추억을 또 언제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아들 결혼 이후에도 이런 가족 여행을 하자며 벌써부터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아마 그때는 겨울이니, 하얀 눈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가족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토록 행복했던 순간들도, 어느새 시간의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지 벌써 2주일이 되어간다. 그 찬란하고 즐거웠던 시간은 이제 사진 속에 간직된 추억이 되어버렸다.


'Hoc quoque transibit' -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끝을 모르는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것. 하지만 기쁘고 좋은 일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웃음과 눈물이 교대로 찾아오고 또 지나가며,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어가는 거대한 선율과 같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는 죽은 자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을 '내일'이었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지나간 것들에 발목 잡히지 말자. 우리조차도 유구한 시간의 강물 속에서 잠깐 머물다 갈 뿐이다.

오늘은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바로 그 '내일'일 것이다. 우리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며칠 전 아침, 눈을 뜨니 카톡으로 '커피 한 잔'이 배달되어 있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 커피와 함께 배달된 작은 메모가 내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다양한 경로로 점점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 시원하고 예쁜 월요일 되세요~"

이 얼마나 소소하지만 큰 행복인가! 내가 활동하는 카페의 도반님이 보내온 커피 쿠폰 선물이었다. 이런 작은 선물 하나가 온 하루를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오늘 하루가 한 장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힘든 일이 찾아와도, 그것 역시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길.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길. 모든 감정에는 때가 있고, 모든 순간에는 의미가 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도,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도, 모두 소중한 인생의 한 페이지다. 절망 속에서도 내일을 기다릴 줄 아는 용기를, 행복 속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지혜를 가지길.

오늘 아침 거울 속의 당신에게 환하게 웃어보자. 그 미소가 바로 당신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격려가 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당신은 남아 있을 것이다. 더 강하고, 더 지혜롭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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