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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나는 매일 산책합니다 5

사돈의 마음, 그리고 바다가 전해준 선물

by Selly 정

"띠리리링~" 핸드폰 전화벨 소리가 오후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우체국 택배입니다!"

"네? 택배라고요? 저는 우체국 택배를 주문한 적 없는데요?"

"***씨 아닌가요? 부산에서 ***님으로부터 택배가 왔습니다. 보기에 해산물 같은데, 모르시나요?"

그제야 뇌리를 스치는 기억 하나. "어머나... 네, 알아요. 저 지금 집에 없으니, 대문 앞에 놓아두실래요?"

전화를 끊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그분이?

1주일 전, 예비 사돈어른께서 해산물을 좋아하는 언니에게 꽃게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중히, 그러나 조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돈을 주고 직접 거래로 주문해서 먹는다면 괜찮지만, 선물로 받기에는 아직 마음이 무거웠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한 후에 마음 편하게 직접 거래식으로 주문해서 먹겠어요."

언니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집 주소를 달라는 말씀을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한사코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이러저러하게 내 집 주소를 알아서 예비 장모님께 알려드렸다. 나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택배가 올 거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주소를 드리지 않았으니 '해산물 택배는 보내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와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어머나, 세상에!"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싱싱한 꽃게들이 얼음에 푹 잠겨서 그 거대함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투명하게 빛나는 새우들과 노란빛 비늘이 반짝이는 생선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내 생애 처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그것도 이토록 싱싱한 꽃게들을 마주하는 일이라니. 꽃게들의 집게발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마냥 보여서 , 마치 바다가 직접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가슴 속에서 뒤엉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전화를 드리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감사하다는 문자만 보냈다. 하지만 입이 쫙 벌어질 정도로 크고 싱싱한 꽃게와 생선, 그리고 새우를 보고 있으니 뭐라 표현할 어휘와 문장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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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언니! 빨리 집으로 와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내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던 모양이다. 언니도 덩달아 놀라서 ' 왜, 무슨일이야.'하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언니도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고 택배 상자를 본 순간, 언니도 나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나, 어머나... 이게 뭐야?"

그 크기와 양에 놀란 언니는 입을 쩍 벌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어머나, 미안하고 감사해서 어쩌지? 정말 손이 크시네!"

상견례에서 해산물을 좋아한다는 말은 했지만, 대화가 잘 통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뿐인데, 이렇게 자신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이런 선물을 보내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해서 어쩌냐!"

언니의 연발하는 탄성 속에는 감격과 고마움이 가득 배어있었다. 그리고 기쁘게, 즐겁게, 매우 감격에 겨운 행복감을 가득 안고 무거운 꽃게 택배와 생선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행복한 웃음과 표정을 가득 담고 돌아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 또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언니가 가자마자 얼른 사돈어른께 진심 어린 감사 문자를 보냈다. 어떻게 감사 인사를 써야 할지 몰랐다. 그냥 내 진심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자를 작성했다.

의외로 간단한 문자가 되어버렸다. 이러쿵저러쿵 할 말은 많았으나, 막상 쓰려고 하니 좋은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극히 짧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정말 잘 먹겠습니다! 언니가 너무나 좋아하네요!'라는 문장만 써서 보냈다.

아! 이제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걸 그랬나. 그렇다면 정말 흡족할 만한 문자를 보냈을 텐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진심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돈관계. 아들과 딸로 인해 맺어지는 인연. 어떤 면에서는 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참으로 조심스러운 관계이다. 아들과 딸에 의해서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것이 사돈이 아닌가.

친구나 가족처럼 편안하게 말을 내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나 예의바르게만 대한다면 조금은 거리감이 더 생길 것 같은 애매한, 조금은 불편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인생이라는 수레바퀴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친한 관계, 가까운 관계, 어색한 관계, 조금은 불편한 관계, 그리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관계등 다양한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러한 각양 각색의 관계 중에 '사돈 관계'도 포함되지 않을까?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며느리와 사위' 관계가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에 의해 형성된다. 나는 그중에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꺼려한다는 바로 그 '시어머니'가 된다.


내 결혼 생활에서 시어머니는 참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셨다. 나는 지금도 내 시어머니 같은 좋은 분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시어머니는 한 번도 내게 싫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으셨다. 늘 내 편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애쓰신 분이셨다.

본인이 몸이 아파 늘 병원에 계셔야만 하셨는데도, 한 번도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한 며느리를 탓하지 않으셨다. 나 같으면 한 번쯤 불평할 수도 있는 상황들이 많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시댁 식구들 또한 언제나 내 편에서 이해하고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내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도 내 시댁에 대해서 나쁘게 평하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서로가 자주 왕래하는 일은 없었으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좋은 감정을 가지고 평생을 사셨다.

그렇게 원만하게, 서로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사돈 관계를 맺고 살았기에 나 또한 처음 맞이하는 사돈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좋은 며느리를 얻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이왕이면 좋은 분들을 사돈으로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친구처럼, 가까운 이웃처럼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지라도 내 시댁과 친정처럼 서로 좋은 인상을 가진 채로 편안한 관계를 맺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돈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속담으로 남겨두었다.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사돈 사이처럼 예의와 거리감이 필요한 관계에서, 너무 가까이 지내면 불편하거나 탈이 생길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받아먹기에 옹색한 것은 사돈네 밥상이다" 사돈집에서는 조심스럽고 불편해 마음 편히 행동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비유한다.

"사돈 모시듯 한다" 매우 정중하게, 조심스럽게 대우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사돈 관계에 얽힌 민담도 있다.

*백일홍의 전설 : 시집간 딸의 집에 친정 아버지가 들렀다가 부엌에서 반찬을 슬쩍 먹다가 사돈에게 들키는 이야기다. 그러나 딸이 재치 있게 "친정아버지가 딸의 집 부엌에 와서 반찬을 잡수시면 그 딸은 잘 산다고 합니다"라고 말해 체면을 세워준다. 사돈 간의 어색하지만 정이 느껴지는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러한 속담과 민담들은 한국 사회에서 사돈 관계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합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사돈 관계는 조심스럽고 불편한 동시에, 예를 갖춰야 하는 사이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현실에서 너무 밀착되면 자식들의 결혼생활에 혹여나 영향이 갈까 걱정하여 형식적 거리감이 권장되는 관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동맹관계와 정을 트는 계기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닌가? 온갖 예의와 격식을 차리고 마주하는 사돈 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 같은 관계를 맺고 지내는 사돈관계도 심심찮게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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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사돈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니,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과 부담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것 같다. 완벽한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 서로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사돈과의 관계에서 '행복한 적정선의 거리감'이야말로 서로를 위한 최고의 배려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뒷간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는 옛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 부담스럽고, 너무 멀면 서운하다. 그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한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사돈과 내가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혼한 자녀들이 편안하게 양가 부모를 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이런 방향으로 사돈 관계를 이어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존중과 예의를 기본으로 하되, 과도한 친밀감은 강요하지 않기

자녀 부부의 결정과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기

필요할 때만 적절히 연락하고 만나는 관계 유지하기

명절이나 경조사에서 양가 공평하게 시간 분배하기

갈등이 생겼을 때 감정적 대응보다 차분한 대화로 해결하기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기

완벽한 가족보다는 '편안한 이웃' 같은 관계 지향하기

결국 사돈 관계는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사돈과의 관계에서 부담감을 내려놓고, 서로가 편안한 방식으로 꾸준히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예비 사돈어른께서 보내주신 싱싱한 해산물 택배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고, 앞으로 맺어갈 관계에 대한 좋은 징조처럼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사돈 관계도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며 천천히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완벽함보다는 진정성을, 가까움보다는 편안함을,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정성을 나누며 말이다.


혹시 지금 사돈 관계로 인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것만은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관계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때로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어색함과 불편함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비록 서툴고 어색할지라도 그 진심은 반드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진심들이 모여 언젠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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