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보낸 저녁의 완벽한 하루
부산행 기차에서 내린 우리 가족의 발걸음은 어느새 광안리 해수욕장을 향해 있었다.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예약해준 숙소 창가에서 바라본 첫 풍경은 그야말로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위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있는 광안대교가 마치 거대한 하프처럼 하늘과 바다를 이어주고 있었다.
"엄마, 배고프지 않으세요?"
아이들의 다정한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여행의 설렘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고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은 바로 조개구이예요!"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좋아요'가 가장 많은 맛집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저 멀리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려오는 전망 좋은 그 맛집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천장 곳곳에 매달린 커다란 화기통들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고, 갓 구워진 해산물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창가 자리를 선택했다. 광안리 해수욕장의 황홀한 풍경을 한 눈에 담고 싶었으니까.
"모듬 조개구이로 주문하겠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나누기에 가장 푸짐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경험할 수 있는 메뉴였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싱싱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산더미 같은 조개들과 해산물들이 푸릇푸릇한 싱싱함이 무지개 빛처럼 피어오르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렇게 드시면 되세요."
친절한 직원의 세심한 안내를 받으며 하나씩 맛보기 시작한 조개구이는 정말이지 이 세상 음식이 아니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조개의 쫄깃함과 바다의 진한 짠맛이 혀끝에서 춤을 추었다.
내륙 지방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내륙에서 살아온 나에게 이런 신선한 해산물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경험이었다.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해도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원 없이 바다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니.
'정말... 정말 맛있다.'
연신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사 뒤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뜨거운 감사의 물결이 밀려왔다.
'애들아, 고맙다. 정말... 정말 고맙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이들. 자립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 하나로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해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내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오늘 엄마를 이런 특별한 곳까지 데려와 난생처음 맛보는 진미를 선사해주었으니, 어미의 마음이 어찌 벅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싱싱한 해산물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눈으로는 광활하게 펼쳐진 광안리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사장과 저 멀리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거대한 광안대교를 바라보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배가 부르도록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맛본 후, 우리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거닐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매직아워에 바라본 광안대교는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다.
'우와∼!'
다양한 색상의 LED 조명이 교량 전체를 감싸며 환상적인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불꽃', '날개', '광안' 등 다채로운 테마가 10분간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는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장관이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관광객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술 쇼,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와 춤, 행인들과 함께하는 즉석 합창까지... 가는 곳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머물며 그들의 열정적인 공연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고운 모래사장을 거닐 때마다 이 소중한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각자 손에 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광안대교의 황홀한 불꽃쇼와 버스킹의 감미로운 선율을 들으며 보낸 부산의 첫 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엄마, 저기서 게임 한 번 해보실래요?"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제안에 우리는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락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도전한 엽총 쏘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겨우 한 발만 명중시켰을 뿐이었는데, 역시 군대를 다녀온 아들들은 백발백중의 실력을 자랑했다.
"헉, 딸도 잘 하네!"
놀랍게도 처음 해보는 딸아이도 아빠를 닮은 운동 신경 덕분인지 90% 이상을 명중시키며 연신 즐거워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네 컷 사진 찍을까요?"
이런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 속 우리 가족의 표정들은 지금 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운 우리만의 걸작이었다.
그렇게 광안리 해수욕장의 마법 같은 밤을 실컷 만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광안대교의 불꽃쇼를 밤늦게까지 감상하며, 오늘 하루가 꿈만 같았다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은 단순히 낯선 곳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건네준 이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는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서로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리고 그런 사랑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가족 부산 여행이야기는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