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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섬의 노점 서점, 그리고 시간이 선물한 풍경

연재 )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요즘 파리의 날씨는 마치 변덕스러운 연인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아침에 쏟아지던 비가 오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잦아들고, 쌀쌀한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다가도 해가 중천에 뜨면 따스한 온기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또다시 차가운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옷장 앞에 서면 매번 한숨부터 나온다. 가을 재킷을 걸치고 나서면 어느새 몸은 가늘게 떨고 있고, 조금 두툼한 옷을 껴입으면 오후의 햇살 아래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결국 겉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 다니는 내 모습이 꼭 짐꾼 같다.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생미셸 역 사방은 마치 꿀단지에 모여든 개미떼처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문학가들의 발자취가 남은 곳

오늘은 친구와 함께 시테섬 주변의 노점 서점을 찾기로 했다.

지난번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소개하면서 새삼 다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시테섬 주변의 노점 서점들은 세월의 결이 깊이 새겨진 곳이었다. 빅토르 위고, 헤밍웨이, 조이스... 수많은 문학가들이 이곳에서 낡은 책장을 넘기며 영감의 씨앗을 발견했고, 센강변 카페에서 잉크가 번진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겼다는 이야기.

그 시간의 흔적들이 아직도 이 거리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시테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월을 견뎌낸 거목처럼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친구에게 제안했을 때, 그녀는 눈이 반짝이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출발했다. 나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도시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는 것을 창밖으로 지켜봤다. 주택가의 조용한 거리가 점점 활기찬 상업지구로 변해가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장면 전환처럼 느껴졌다.

생미셸 역에서 친구를 만난 후, 우리는 센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물결 위로 햇살이 부서져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

처음엔 서점보다는 관광 상품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엽서들, 에펠탑 모형들, 값싼 유화 복제품들이 좁은 가판대 위에 빼곡히 놓여 있었다. 생미셸 역에서 노트르담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물결치듯 밀려드는 인파로 가득했다. 다양한 언어가 공기 중에 섞여 들렸고, 웃음소리가 종처럼 울려 퍼졌다.

수십 번도 더 봤을 센강변의 풍경인데, 신기하게도 매번 가슴 한켠이 설렌다.

마치 오래된 연인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그 떨림처럼.

파리는 왜 같은 곳을 여러 번 찾아도 늘 첫사랑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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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변과 노트르담 성당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번 센강을 담았다. 카메라 앵글 속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부드럽게 펼쳐졌다.


3유로의 작은 해프닝

그렇게 걷다가 문득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 벽에 가리고 싶은 흠집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3유로에 1장, 2장에 5유로'라고 적힌 노점 앞에 섰다. 파리의 거리 풍경을 담은 프린트 그림이었다. 친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비싸다고 말렸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나는 지갑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그림 한 점 사고 싶었던 마음이 실타래처럼 풀려 내렸다.

친구의 만류를 가볍게 뿌리치고 기분 좋게 그림을 들고 걸었다.

그런데 불과 몇십 미터를 채 가지 않아서였다.

똑같은 그림이 1.5유로에 팔리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친구가 배를 잡고 웃었다. "네가 완전히 '봉' 됐네!"

나도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겨우 몇 발자국 사이에 가격이 이렇게 다를 줄 누가 알았겠나. 환불을 요구하러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잊어버리자. 이런 생각에 붙들려 있으면 나만 손해야. 다음엔 여러 군데 살펴보고 사야지."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허탈 웃음을 가슴에 접어 넣었다.


파리가 주는 위로

시테섬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활기찬 관광객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니, 내 마음도 서서히 밝아졌다.

'이게 파리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에너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멋을 낸 관광객들의 행복한 미소. 이곳에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삶을 대하는 용기가 샘솟고,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친구와 나는 발걸음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파리는 언제 봐도 활기가 넘쳐. 그리고 어디를 봐도 참 아름다워."

"여기서 사는 게 사실 여유롭지는 않지. 한국보다 훨씬 더 팍팍해. 그런데도 파리는 묘한 마력이 있어."

"나는 아직까지는 파리에 살고 싶어. 물론 언젠가는 한국을 그리워하겠지. 그런데 아직은 아니야."

친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리고 너는 음악을 배우는 유학생으로서 매년 비자 때문에 애태우지만... 그래도 우리는 복받은 사람들이야. 누군가는 평생의 소원이 파리를 한 번 방문하는 건데, 우리는 이곳에서 살고 있잖아."

친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맞다. 나는 행운아다.

이 나이에 언어를 공부하고, 비싼 수업료를 내며 피아노를 배우는 유학생으로 살고 있으니까. 높은 물가, 치솟는 월세로 한국보다 몇 배나 팍팍한 삶이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래, 감사하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와 행복으로 맘껏 누리자.'

차가운 강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노트르담, 그리고 손 흔들던 순간

걷다 보니 노트르담이 눈앞에 우뚝 나타났다.

벌써 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세계 문화유산이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 되살려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마치 깨진 그릇을 금으로 이어 붙이듯.

성당 외벽에 새겨진 조각들을 올려다봤다.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해서 목이 아파왔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의 조각마다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다. 돌 속에 새겨진 영혼들이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노트르담 옆으로 센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위로 커다란 유람선이 백조처럼 미끄러져 갔다. 쌀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유람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살짝 쑥스러웠지만, 우리도 손을 들어 그들에게 화답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수줍음을 넘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마치 풍선처럼 몸이 둥실 떠오를 것 같았다.

이런 감동과 기쁨의 순간들이 모여 삶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조금 더 걷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변 카페들도 자리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저 멀리서 붉은 노을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불그스름한 오렌지빛이 센강 위에 번지며, 주변 경치를 한 폭의 낭만주의 그림처럼 물들였다.


고서점 골목에서 마주한 나의 속도

계속 걷자 하나둘 옛 서적을 파는 노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번쯤 들어본 제목들도 있었고, 전혀 알 수 없는 고서들도 보였다.

한 관광객 부부가 책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고서를 파는 노점의 주인은 의외로 젊은 여성이었다. 나는 고서점 주인이라면 으레 나이 든 백발의 신사일 거라 상상했는데, 이 젊은 파리지엔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부부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더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노점 주인과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흥정을 시작했다. 젊은 여성 주인이 영어를 꽤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에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찌감치서 지켜봤다.

우리가 한참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성 주인이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Can I help you?"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No thanks, non merci"라고 영어와 불어를 동시에 내뱉었다. 여기서 살다 보니 기본적인 회화에서는 두 언어가 뒤섞여 튀어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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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변 고서 노점상들


나는 책을 한 권이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읽을 수가 없다. 그냥 장식품에 불과할 뿐. 대학생 딸을 위해 동화책을 사두고 '딸이 안 읽으면 내가라도 읽어야지' 했던 책도 아직 먼지만 쌓여 있다.

불어 실력이 정말 늘지 않는다. 벌써 5년이 넘었는데도 제자리걸음이다. 예전에 살던 13구 집에는 큰 TV가 있어서 요리 프로그램을 거의 매일 틀어놓았다. 불어에 익숙해지려고, 참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나이의 벽일까? 아니면 언어라는 게 원래 그런 걸까?

쉽사리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언어에 재능 있는 사람은 확실히 따로 있다. 이제는 그걸 인정하게 됐다. 똑같은 출발선에 섰어도 어떤 이들은 토끼처럼 빠르게 앞서 나가고, 나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간다.

나는 거북이다.

언어도, 뭔가를 깨닫는 것도, 성과를 내는 것도 언제나 느리다.

그런데 '꾸준함'이라는 장점이 있다. 느리지만 계속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이게 나의 특징이구나, 이제는 받아들이게 됐다.

예전에는 재빠르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다. 그들과 비교하며 자책도 하고, 열등감에 우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바뀌지는 않더라.

오히려 느린 나를 인정하고, 내 속도대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런 긍정의 마음이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 속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남과 비교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50대가 되니 느껴진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신체와 두뇌는 확실히 젊을 때와 다르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 나이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의 나를, 나의 신체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 현재 상태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

그렇지만 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이 선물한 하루

우리는 젊은 여성 주인에게 눈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가자 고서를 파는 상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나이가 지긋한 파리지앵 노인의 가게, 정말 이런 책도 판다 싶을 정도로 낡고 빛바랜 서적들.

이 서적들을 보고 있노라니, 옛 문학가들이 이곳에서 책을 탐구하고, 고서를 사서 센강을 바라보며 독서하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불문학을 전공한 나는 빅토르 위고, 볼테르, 에밀 졸라, 어린왕자의 생텍쥐페리만 떠올렸지만, 내가 모르는 수많은 문학인들이 이곳 시테섬에서 저 웅장한 노트르담을 바라보며, 유유히 흘러가는 센강을 벗 삼아 독서를 했을 것이다.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한국어 책처럼 불어 책을 사전 없이 쭉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쯤 한국어처럼 술술 불어 소설을, 에세이를 읽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오겠지. 그래, 올 거야. 암, 오고말고...'

이런 희망을 품고 우리는 길고 긴 노점 책방 탐방을 마쳤다.

노트르담을 한 바퀴 돌아,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를 바라봤다. 방문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아쉬운 마음에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한없이 노트르담을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다시 생미셸 역으로 향했다.

차가운 몸을 녹일 겸 노천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말차 라테 한 잔과 카푸치노를 마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니, 따스함이 손끝에서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오늘 하루, 파리 유학생활의 한 페이지를 썼다.

나의 하루하루는 매일 소중하다.

왜냐고?

나는 시한부 유학생이니까. 매년 비자, 즉 거주증을 갱신해야 하는 유한한 기간의 삶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특히 나이가 있다 보니, 거주증 갱신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는 잘될까? 이번에는 무사히 거주증이 나올까?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겨 비자가 갱신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이곳에 있는 하루하루가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순간이 된다.

그래서 오늘 친구와 함께 거닐며 바라보고 느꼈던 노점 책방들과 시테섬의 운치 있는 풍경,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는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새겨질 것 같다.

유학생활에서 소중한 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하루였기에.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른다.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날이었다.

그래, 맞다.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아니 바로 우리에게는 결코 소홀히 보낼 수 없는 소중한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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