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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월세 집 구하기의 현실 Episode 2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집 구하기라는 미로 속으로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는데, 발걸음만 제자리를 맴돌았다.

매일 아침, 노트북을 펼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SeLoger, Leboncoin, Orpi, 프랑스존... 손가락은 화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지만,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 집은 어떨까?"

클릭.

"아, 벌써 계약됐네."

한숨.

"여긴?"

클릭.

"월세가... 말도 안 돼."

또 한숨.

파리라는 도시가 거대한 체스판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기민하게 말을 움직여 체크메이트를 외치는데, 어떤 이는 폰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바로 나처럼.

집주인은 여전히 인테리어 업자들과 함께 찾아왔다. 2주에 한 번씩, 어김없이. 줄자가 벽을 타고 늘어지는 소리, 프랑스어로 오가는 낮은 대화, 그리고 점점 좁아지는 숨통.

'빨리 나가야 하는데...'

조바심은 독버섯처럼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 그리고 딸에게 건넨 부탁

그러던 중, 한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엄마, 걱정 마. 내가 집 보러 다닐게."

인턴 과정을 마친 딸이 시간적 여유를 내어 대신 발품을 팔아주겠다고 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파리의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집주인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이 날아들었다.

"제가 보증인이 되어드릴게요."

문자 메시지를 읽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프랑스에서 보증인이 된다는 것. 그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만약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못하면,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 게다가 아무나 보증인이 될 수 없다. 안정적인 직업, 최소 월 5,000유로 이상의 수입,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격이 필요했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도 선뜻 보증을 서주지 않는 나라. 하물며 외국인에게?

'3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신뢰구나.'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동시에 무게가 실렸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확했다. 빨리 이사를 가달라는 것. 그래야 6월에 시작해서 7월에 끝낼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

이해했다. 충분히.

하지만 파리는 여전히 냉정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가고

3월.

"이 집 괜찮은데?"

4월.

"아, 이미 다른 사람이..."

5월.

"가격이 너무..."

시간은 물처럼 빠져나갔다. 손으로 움켜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너무 비싸거나, 너무 멀거나, 너무 좁거나. 조건에 맞는 집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괜찮다 싶으면 이미 계약이 끝난 후였고, 연락이 닿으면 터무니없는 조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6월 중순.

딸에게 문자가 왔다.

집주인으로부터였다.


차가운 문자 메시지 한 통

"우리는 6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7월에 끝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사를 가지 않으셔서 모든 일정이 늦어지고 있어요. 8월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빨리 결정해주셔야 합니다."

문자를 읽는 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떨렸다.

"엄마, 집주인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딸도, 나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

물론 계약상으론 9월까지 시간이 있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란 법으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3년간 월세 동결.'

그 네 글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빚진 것도 아닌데, 빚진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마지막 희망, 중개사 JouJon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3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준 중개사 JouJon.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현재 상황이 이렇습니다. 원하는 조건은 이렇고, 예산은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마음이 많이 조급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그리고 기다림.

30분이 지났을까.

띵-

"물론입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답장을 읽는 순간, 목이 메었다. 희망이라는 게 이렇게 작은 문장 하나에서 피어오를 수 있다니.


세 개의 열쇠, 세 개의 가능성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중개사 JouJon으로부터 두 곳, 그리고 프랑스존 사이트에서 발견한 한국인 중개사의 집 한 곳. 총 세 개의 가능성이 손에 쥐어졌다.

딸이 움직였다.

첫 번째 집. 16구.

"스튜디오인데... 너무 좁아. 그리고 낡았어, 엄마."

딸의 목소리에 실망이 묻어났다.

두 번째 집. 12구.

"1,400유로. 조건은 괜찮은데, 가격이..."

세 번째 집. 역시 12구.

"전기 난방이래. 겨울에 전기세 폭탄 맞을 수도 있어."

셋 다 완벽하지 않았다.

16구의 집은 1층에 위치해 있었다. 1,400유로. 비쌌지만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전기 난방 집에 대해선 중개사에게 물었다.

"겨울철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까요? 그리고 월세 조정 가능할까요?"

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20251021_151653_7.jpg 프랑스 부동산 중개 사무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창밖으로 파리의 하늘이 보인다.

회색빛 구름이 천천히 흘러간다. 마치 시간처럼.

완벽한 집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괜찮은' 집은 분명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손에 쥔 세 개의 열쇠. 그중 하나가 새로운 문을 열어줄까. 아니면 또 다른 열쇠가 나타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50대 중반, 파리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 그건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르는 일이다. 언어와 싸우고, 시스템과 싸우고, 때론 나 자신과도 싸운다.

하지만 그 싸움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작은 문자 메시지 하나에서, 딸의 목소리에서, 중개사의 답장에서.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 찾아갈 것이다.

파리 어딘가에 있을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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