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2024년 봄, 파리의 거리에 연둣빛이 스며들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6월까지 이사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집주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재혼과 함께 찾아온 네 명의 아이들, 그리고 새로운 시작. 지금 살고 있는 두 집을 하나로 합쳐 가족 모두를 품을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임대 계약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3년 넘게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던 집주인. 파리라는 도시에서, 그것도 이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월세 동결이라니.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이죠. 축하드려요."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은 담담했지만, 가슴 한편에선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집주인은 꼼꼼했다. 6월 공사 시작, 7월 마무리, 8월 입주, 9월 새 학기. 마치 정교한 퍼즐처럼 모든 일정이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3월에서 5월 사이에 집을 구하세요. 올림픽이 시작되면..."
그의 말은 마침표를 찍지 않았지만, 뜻은 명확했다. 파리 올림픽. 전 세계가 이 도시로 몰려들 그 시간이 다가오면, 집값은 치솟고, 경쟁은 치열해질 터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하지만 파리는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었다.
괜찮아 보이는 매물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 본 집은 내일이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고, 연락조차 닿지 않는 집주인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사 준비 때문에 인테리어 업자들과 함께 방문해도 될까요?"
처음엔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믿었다. 서둘러 집안을 정돈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며, 은근한 자부심마저 느꼈다.
'한국 사람은 이렇게 깔끔하게 산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런데 두 번째 방문이 왔고, 세 번째가 왔다. 네 번째를 넘어서자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해졌다.
똑같은 공간을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측정했다. 긴 줄자가 벽을 타고 늘어지고, 노트에 뭔가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것이 점차 불편함으로, 그리고 급기야 짜증으로 변해갔다.
'대체 왜 이렇게 자주 오는 거지?'
프랑스어로 오가는 그들의 대화가 귀를 스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 사이로, 내 공간이 해부되고 분석되는 느낌.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 건, 프랑스 사람들이야말로 사생활을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내 사생활은 이토록 쉽게 허물어지는 걸까.
일곱 번째 방문이 있던 날, 더 이상 집을 정리하지 않았다.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 아무렇게나 놓인 책들, 침대 위에 주름진 이불.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보시라고.'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여전히 줄자를 들고, 여전히 프랑스어로 속삭이며, 여전히 내 공간을 가로질렀다.
만능 열쇠. 그 두 단어가 주는 무력감이란.
"내일 오후 3시에 방문하겠습니다. 댁에 안 계셔도 괜찮아요."
문자 메시지를 읽으며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절할 권리조차 없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던 집주인. 파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건 네잎클로버를 발견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엔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다.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라는 말을 건넬 정도였다. 하지만 여섯 번, 일곱 번을 넘어서면서 그 여유는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집주인도 눈치챘던 모양이다.
방문 전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내일 방문해도 괜찮으실까요?" 하고 묻는, 예전보다 조심스러운 말투. 그리고 방문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쩌면 그들도 불편했을지 모른다. 타인의 공간에 반복해서 침입해야 하는 상황이. 하지만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 새로운 가족, 9월 학기에 맞춰야 하는 일정.
그 모든 걸 이해했다. 머리로는.
하지만 가슴은 조금 달랐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누가 올까' 하는 긴장감. 저녁이면 '내일은 또 누가 올까' 하는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랭해지는 태도를 억지로 누르며,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려 애썼다. 관계란 건 참 이상하다. 깨지기는 한순간이지만, 쌓아 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늘도 집을 보러 갔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첫 번째보다 조금 더 꼼꼼히 살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 부엌 싱크대의 높이, 욕실 타일의 색깔까지.
완벽한 집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괜찮은' 집은 있을 거라고, 여전히 믿는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건 매일 작은 협상을 하며 사는 일이다. 월세와 집주인과, 이웃과 소음과, 좁은 계단과 느린 엘리베이터와. 그 모든 것과 타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새로운 집을 찾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도 50대에 시작한 파리 유학이 주는 또 하나의 과제일지 모른다.
젊었다면 화를 냈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삶은 늘 그렇게 흘러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창밖으로 파리의 지붕들이 보인다. 저 지붕 어딘가에 내가 머물 새로운 공간이 있을 것이다.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 찾아갈 것이다.
희망을 품은 채.
다음 에피소드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