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들의 집

카몬도 박물관에서

by Selly 정

비가 내리던 날, 몽소 공원(Parc Monceau) 근처를 걷다가 어느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니심 드 카몬도 박물관(Musée Nissim de Camondo). 간판은 '박물관'이라 적혀 있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알았다.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라는 것을.

현관에 들어서자 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전시를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 매일 아침 이 계단을 오르내렸고, 저 창가에 앉아 신문을 읽었을 것이다. 부엌의 커다란 화덕 앞에서 요리사가 분주히 움직였을 테고, 식당에서는 은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image.png?type=w773 박물관 외관


벽에 걸린 소피 제네비에브(Sophie Geneviève)의 초상화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18세기 귀부인의 우아한 미소. 이 그림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식당으로 가는 복도에서 작은 세면대를 발견했다. 식사 전 손을 씻던 곳이란다. 박물관 안내서에는 '18세기 양식의 세면대'라고 적혀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누군가의 일상이 보였다. 거창한 예술품보다 이런 사소한 흔적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다.

카몬도(Camondo) 가문은 베니스(Venise)에서 건너온 세파르디 유대인이었다. 19세기 파리(Paris)에 정착해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돈으로 18세기 프랑스 예술품을 모았다. 이 저택의 주인 모이즈 드 카몬도(Moïse de Camondo) 백작은 컬렉터였다. 그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가구와 도자기, 태피스트리가 지금 이 집을 채우고 있다.

그에게는 니심(Nissim)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니심은 조종사로 참전했다. 스물다섯, 하늘에서 전사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이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프랑스에 기증하며 단 하나를 부탁했다. 아들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니심 드 카몬도 박물관(Musée Nissim de Camondo).

박물관 이름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애도였다.


image.png?type=w773 거실 또는 응접실 내부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이즈 백작에게는 딸 베아트리스(Béatrice)가 있었다. 베아트리스와 그녀의 두 자녀—카몬도 가문의 마지막 후손들—는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끌려갔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프랑스를 사랑했던 가문, 프랑스 문화를 지키려 전 재산을 바친 가문이 그렇게 사라졌다. 서재에 놓인 책들, 부인의 침실에 걸린 커튼, 응접실의 안락의자. 주인 잃은 물건들만 백 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슷한 시대를 산 또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자크 두셋(Jacques Doucet).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 파리 최고의 쿠튀리에였던 그는 패션만큼이나 예술에 열정적이었다. 피카소(Picasso)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처음 산 사람. 브라크(Braque)와 모딜리아니(Modigliani)를 후원한 사람. 그가 모은 컬렉션은 지금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두셋과 카몬도.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고 지키려 했던 두 사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그 시절의 파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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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또는 부엌의 화덕


박물관을 나서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걸으며 생각했다. 에펠탑(Tour Eiffel) 앞에서 사진 찍는 것만이 파리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사라진 사람들의 집을 걸으며 그들이 남긴 침묵을 듣는 것. 그것도 여행이다.

카몬도 박물관의 방들은 고요했다. 백 년 전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서도 아무 소리 없이 적막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남았는데 사람은 모두 떠났다. 그 부재가,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젖은 돌바닥을 걸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빗속에 서 있는 저택이 작아지고 있었다.


Musée Nissim de Camondo 63 Rue de Monceau, 75008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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