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5%의 덫

2. 큰아들의 전화

by Selly 정

이틀 후, 목요일 저녁.

경자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7시가 넘어 있었다.

10월의 저녁은 빨리 어두워졌다. 골목길 가로등이 벌써 켜져 있었다. 하늘. 이미 깜깜했다.

대문을 열고 작은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이 어둑했다. 불이 꺼져 있었다.

남편은 아직 퇴근 전이었다. 딸 수진이는 방에 있었다. 방문 틈새로 노란 불빛이 새어나왔다.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수진아, 있어?"

"네, 엄마!"

밝은 목소리.

경자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부엌으로 갔다.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빡이다가 켜졌다.

낡은 형광등. 바꿔야 하는데 자꾸 미루고 있었다. 전기세도 요즘 많이 올랐다. 지난달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3만 원이나 더 나왔다.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 불빛. 하얀 빛.

어제 만들어둔 된장찌개가 있었다.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밥을 하려고 쌀통을 열었다. 쌀을 퍼서 씻기 시작했다.

찬물.

손을 담그니 차가웠다. 손이 시렸다.

하루 종일 계산대에 서 있던 다리가 욱신거렸다. 무릎이 아팠다. 허리도 아팠다. 오십대 중반의 몸. 예전 같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큰아들 민준이었다.

서울에서 IT 회사 다니는 아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전화하는 편이었다. 요즘은 바빠서 집에도 못 왔다.

손을 닦았다. 행주로 물기를 닦았다.

"여보세요?"

"엄마, 나 민준이야."

"응, 민준아. 왜? 저녁은 먹었어?"

"응, 먹었어.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또 야근해? 몸 상하겠다."

"괜찮아요."

전화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민준이 뭔가 말하려다 망설이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엄마."

"응?"

"아빠한테 들었어."

경자의 손이 멈췄다.

"요즘 부동산 쪽으로 관심 많으시다면서?"

쌀 씻던 손. 찬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물방울이 싱크대에 떨어졌다.

똑.

똑.

똑.

'남편이 아들에게 말했구나...'

마음이 복잡했다. 화가 났다. 왜 말했을까.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동시에 이해도 됐다. 남편도 걱정되니까.

"그냥... 좀 알아보는 거야."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들킬 일을 한 것처럼. 왜 이렇게 떨리는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 지금 투자하시려는 거예요?"

"아니, 그냥 알아만 보는 거라니까."

"엄마..."

민준의 목소리가 한숨처럼 나왔다.

길고 깊은 한숨.

전화 너머로 들렸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민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회사 선배들한테 대충 들었는데요."

대충.

민준은 IT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선배들 이야기를 듣는 정도였다.

"요즘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별로 안 좋대요. 그렇게 들었어요."

"무슨 소리야? 집값 계속 오르잖아."

"그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민준은 확신이 없었다. 뉴스에서 본 것, 선배들에게 대충 들은 것을 이어붙이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엄청 올랐는데, 올해 들어서... 좀 떨어진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경자는 쌀 씻던 손을 멈췄다.

물기를 닦았다. 행주로.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더 가까이 댔다.

"우리 회사 선배 중에 작년에 집 산 사람 있는데요."

"응."

"지금 되게 후회한대요. 그렇게 들었어요."

"왜?"

"대출 이자가... 뭐라더라... 많이 올랐대요."

민준은 정확한 금액은 몰랐다. 경제 용어도 잘 몰랐다.

"작년에 대출받을 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뉴스에서 뭐 빅스텝? 그런 거 한다고... 그래서 금리가 엄청 올랐대요."

민준의 말이 두서가 없었다. 이것저것 섞여 있었다.

"그 선배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출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응."

"지금 갚는 게 엄청 힘들대요."

경자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얼마나?"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민준은 망설였다.

"아마... 월급의 절반 정도? 그렇게 들었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월급의 절반.

그 말이 경자의 가슴에 꽂혔다.

'월급의 절반...'

경자의 월급 120만원의 절반이면 60만원.

'60만원... 내가 계산한 것과 똑같잖아...'

손이 떨렸다. 미세하게.

"그 선배가... 요즘 점심도 도시락 싸오신대요. 커피도 안 드시고... 그러시더라고요."

도시락.

커피도 안 마신다.

경자는 숨을 들이켰다.

"엄마."

민준의 목소리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엄마는... 엄마 월급으로... 그렇게 많이 갚기 힘들지 않을까요?"

경자의 월급은 120만 원.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가 민준이 네가 결혼할 때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목이 메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엄마, 나는 괜찮아요."

민준의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천천히 모을게요."

"..."

"그러니까 위험한 일은 하지 마세요."

민준은 계속 말했다.

"제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배들 보면 요즘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대충 들은 건데..."

"..."

"매달 갚는 돈도... 장난 아닌 것 같고..."

경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엄마, 진짜 걱정돼서 그래요."

"응."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응. 고마워."

"그럼, 몸 조심하세요. 사랑해요."

"응... 너도."

전화를 끊었다.

경자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부엌 창문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골목길 이웃집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낡은 집들의 창문들. 노란 불빛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

경자는 다시 쌀을 씻기 시작했다.

찬물에 손을 담그니 손가락 끝이 저렸다. 시렸다.

하지만 계속 씻었다.

쌀알들이 하얗게 빛났다. 물에 젖어서.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남편 퇴직금도 없고, 내 퇴직금도 얼마 안 되고... 이게 마지막 기회야. 노후를 위해서라도...'

하지만 민준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월급의 절반.'

'도시락 싸온다.'

'커피도 안 마신다.'

그리고 경자가 계산한 숫자.

60만원.

월급 120만원의 절반.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

경자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숫자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60만원. 120만원. 370만원. 210만원.

숫자들이 경자를 조였다.

목을 조이는 것처럼.

숨을 막는 것처럼.

'하지만... 남편이 있잖아.'

경자는 다시 눈을 떴다.

'남편이랑 합치면 370만원...'

쌀을 계속 씻었다.

물이 차가웠다.

손가락이 시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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