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선물한 제주도행 뱃길

완도-제주 실버클라우드호, 그 바다 위의 2시간

by Selly 정

수십 년을 기다린 그 섬, 드디어 다시 간다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광주의 거리를 아들이 운전하는 차가 미끄러지듯 달렸다. 뒷좌석에 앉은 딸과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졸렸다. 하지만 졸음보다 더 강렬한 것이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북받쳐 오르는 설렘. 오늘, 드디어 제주도에 간다.

제주도.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으로 처음 밟았던 그 섬. 천지연 폭포 앞에서 나름 최대한의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교복 위에 걸친 얇은 점퍼, 어설픈 포즈, 그리고 그 뒤로 쏟아져 내리던 폭포수. 그때 나는 열일곱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던 나이.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나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야자수. 난생처음 보는 그 나무가 얼마나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느껴졌던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묘하게 생긴 돌하르방은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물질하는 해녀들의 옷차림은 낯설고도 경이로웠다. 그리고 온 대지를 뒤덮은 유채꽃밭. 노란 물결이 끝없이 출렁이던 그 풍경. 그 모든 것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만큼 제주도는 내게 특별한 곳이었다. 놀랍고, 감격스럽고, 압도적이었던 곳. 그래서 꼭 다시 가고 싶었다. 언젠가 반드시.

하지만 인생은 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먹여 살리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 제주도는 늘 마음에만 있었다. 가야지, 가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경비 때문에, 시간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그렇게 수십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간다.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완도에 도착한 건 7시 30분쯤이었다. 2시간을 내리 달려온 터라 배가 고팠다. 새벽이라 휴게소는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다행히 단 한 번의 화장실 휴식만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지만,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밀려왔다.

우리는 곧장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컵라면, 컵밥, 온갖 종류의 죽.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편의점 음식들이 그날따라 얼마나 맛있던지. 배가 고프니 뭘 먹어도 꿀맛이었다. 후루룩후루룩,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며 우리 셋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새벽부터 달려온 피곤함도, 추운 겨울 아침의 냉기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시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창밖으로 완도항이 보였다. 곧 저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갈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빵빵빵.

출발 신호가 울렸다. 커피잔을 서둘러 비우고 우리는 밖으로 나섰다. 12월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하지만 춥지 않았다. 아니,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설렘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으니까.


KakaoTalk_20251214_094501150_28.jpg 완도항에서 바라본 실버클라우드호 전경


처음 만난 실버클라우드호,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배를 처음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크다. 아니, 크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마어마하다. 거대하다. 압도적이다.

정류장에서 배까지 걸어가는 거리만 해도 상당했다. 걸으면서도 계속 고개를 들어 배를 올려다보았다. 저 안에 자동차를 싣고 간다고? 저 거대한 것이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큰 배를 본 적이 없었다.

난생처음 타보는 카페리. 차를 싣고 가는 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이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에 올랐다.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가 어찌나 반갑던지.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치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었다는 듯, 그렇게 느껴졌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아니, 올라갔다기보다는 올라간 느낌이었다. 배 안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몇 층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위로, 위로, 계속 올라가는 느낌. 그리고 마침내 선실에 들어서는 순간.

와.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넓었다. 훤했다. 깨끗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타이타닉호는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커다랗고 넓따란 선실. 곳곳에 배치된 고급스러운 의자들. 창밖으로 보이는 끝없는 바다. 나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크루즈 여행, 크루즈 여행 하는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배가 이렇게 멋진 거였구나. 배 위에서의 시간이 이렇게 특별할 수 있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진짜 크루즈선은 얼마나 더 크고, 얼마나 더 웅장하고, 얼마나 더 화려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나도 흥분했고, 딸도 흥분했고, 아들도 흥분해 보였다. 우리 셋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매점이 있었다.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작은 식당도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타벅스까지 있었다. 배 안에 스타벅스라니! 실버클라우드호는 결코 작은 배가 아니었다. 갖출 것은 다 갖춘, 제대로 된 배였다.

우리가 예약한 건 일반실이었다. 궁금해서 방을 들여다보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구조로,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고, TV 한 대, 작은 사물함, 문 옆에 신발장이 놓여 있었다. 평범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잠을 자기 위한 공간.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2시간밖에 안 되는 항해인데, 굳이 방에 누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셋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의자가 생각보다 푹신하고 편안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은 의자. 창밖으로는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완벽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갑판 위에서, 바람과 눈물과 함께

딸과 함께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갔다.

바람이 거셌다. 아니, 거세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추웠다. 12월의 바닷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하지만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을, 이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배가 출발했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요동함 없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완도. 점점 작아지는 항구. 희미해지는 건물들.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바다. 수평선 위로 삼각자처럼 뾰족한 섬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사라졌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멀어지는 완도를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배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찍고 또 찍고, 찍어도 찍어도 부족한 것 같아서 또 찍었다.

그러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이 배 위에 서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다 큰 딸과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가는 배 위에 서 있다.

언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나. 어떻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나.

수십 년 전, 수학여행으로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는 상상도 못 했다. 그때는 내가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과 함께 이 섬에 다시 올 거라는 것을. 그것도 아들이 모든 일정을 계획하고, 모든 경비를 부담하는 여행으로.

둘째 아들. 그 아이가 이번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했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배를 탈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아보고 예약했다. 그리고 "엄마, 이번 여행은 제가 쏠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내가 뭘 그렇게 잘했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 키웠다고. 이렇게 효도를 받아도 되는 건가.

제주도 여행. 꼭 가야지, 가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던 여행. 경비 때문에, 시간 때문에, 늘 뒷전으로 밀렸던 여행. 그게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 배 위에 서게 되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이 세상에서 무척이나 행운아구나.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구나.

바람이 눈물을 말려주었다. 아니,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난 거라고 해두자. 너무 기쁘고, 너무 행복하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는 것은 조금 민망하니까.

딸이 내 옆에서 웃었다. "엄마, 머리 완전 엉망이야." "너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서로의 엉망진창인 머리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또 사진을 찍었다.


KakaoTalk_20251218_200004152_18.jpg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각자의 시간, 각자의 추억

갑판에서 충분히 바람을 맞은 후, 다시 선실로 들어왔다. 몸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뜨거웠다.

아랫층 매점에 들러 아들이 좋아할 간식거리를 샀다. 과자 몇 봉지, 음료수 몇 캔.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법이다.

우리 셋은 다시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각자 자신의 노트북을 꺼냈다. 아들은 밀린 업무를 처리했고, 딸은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했고, 나는... 나는 그냥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는 척하면서 아이들을 훔쳐보았다.

다 컸구나.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여주고, 학교 보내고, 숙제 봐주고... 그렇게 정신없이 키웠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어 있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여행을 시켜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다니.

새벽에 일찍 일어난 탓에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면서, 나는 행복한 졸음에 빠져들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배는 여전히 부드럽게 항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니 제주도에 도착해 있었다.


밤바다를 건너 돌아오는 길

제주도에서의 시간은 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완도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오후 7시 30분 출발, 밤바다를 건너는 항해.

같은 실버클라우드호라고 했는데, 아침에 탔던 배와는 달랐다. 크기가 확연히 작았다. 넓은 선실 대신 대부분 객실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밤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할 수 없이 우리도 객실로 들어갔다. 이미 아홉 명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출입구 옆, 신발장 옆, 남은 자리에 우리 셋이 나란히 자리를 폈다. 배가 출렁이기 시작하자 배멀미가 걱정되어 얼른 누웠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틀었다. 책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배의 흔들림이 오히려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부스럭부스럭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짐을 꾸렸다. 맨 나중에 일어나 천천히 방을 나섰다.


안녕, 그리고 다시 만날 때까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차량 선적장으로 내려갔다. 수십 대의 차들이 굵은 쇠사슬에 단단히 묶인 채 점잖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잠든 짐승들처럼, 조용히, 꼼짝 않고.

우리의 흰색 차를 발견했을 때, 왜 그렇게 반갑던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 아니, 나를 기다려준 가족 같았다. 추운 겨울 기온에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 안이 어찌나 반갑던지. 익숙한 냄새, 익숙한 좌석, 익숙한 공간.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직원들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쇠사슬을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 굵고 단단한 사슬들이 하나씩 벗겨졌다. 그리고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배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공룡이 입 안의 장난감들을 하나씩 토해내 주듯이. 한 대, 두 대, 차례차례 기어 나오듯이.

우리 차도 그렇게 배 밖으로 나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배. 수십 년 만에 타본 배.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갈 수 있게 해준 배. 언젠가 크루즈 여행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해준 배.

속으로 말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 행복했어. 잊지 못할 추억이었어. 고마워.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

아이들은 이미 앞을 보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 또 2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가슴이 여전히 충만하게 차 있었다.

제주도행 배 여행. 잠깐이었지만 정말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

언젠가 남편과 함께 다시 이 배를 타고 싶다. 렌트카를 싣고, 천천히, 여유롭게, 제주도로 가는 여행.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더라.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그때에도 그럴 거라고, 나는 믿는다.



� 완도-제주 실버클라우드호 이용 정보

운항 구간: 완도항 ↔ 제주항

소요 시간: 약 2시간

출발지: 한일고속 완도 영업소 (완도여객터미널)

선실 종류: 일반실, 우등실 등 다양 (차량 선적 가능)

선내 시설: 매점, 식당, 스타벅스, 휴게 라운지

예약: 한일고속 홈페이지 또는 전화 예약

팁: 오전 배와 저녁 배의 크기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창가 좌석은 인기가 많으니 일찍 선점하기 갑판에서 사진 찍을 땐 바람이 매우 강하니 겉옷과 머리끈 필수 배멀미가 걱정된다면 미리 멀미약 복용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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