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골 고사리 육개장, 평범함 속 특별함
용두암은 기대가 컸던 탓일까, 조금은 덤덤하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 제주도 하면 용두암, 용두암 하면 제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이름. 그래서 기대가 컸던 걸까. 막상 다시 보니 그저 조금 기이하게 생긴 바위 덩어리였다. 용의 머리? 열심히 찾아봐야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형상. 아들과 함께 경사진 계단을 타고 바닷가 근처까지 내려가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허전함이 있었다.
그래도 제주까지 왔으니까. 일단은 최대한 기뻐하자. 행복해 하자. 그런 마음으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주변에서는 중국어가 살라살라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어댔다.
용두암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큰아들 부부를 만나러 향했다. 목적지는 제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우진해장국. 이름은 해장국집이지만, 대표 메뉴는 고사리육개장이다.
식당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서 있었다. 주차장에서, 대기실에서, 카페에서. 다들 손에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몇십 분씩 기다려서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하는 건가?
대기 시간 40분.
나는 지금까지 긴 기다림 끝에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건 내 인생의 원칙에도 없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40분씩 기다려서 먹는다고?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들이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곳이라고.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새며느리가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머니, 오래 기다리셨죠?"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 그 두 글자가 어찌나 낯설고도 달콤하던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구나. 놀랍고 신기했다. 이 아이가 이제 내 식구가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헤매다 겨우 차를 세우고 온 둘째 아들도 합류했다. 우리 다섯은 대기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40분. 생각보다 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채워졌다.
드디어 우리 번호가 불렸다.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 우리가 앉을 자리만 겨우 비어 있었다. 식당은 예상 외로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허름했다. 깔끔하지도 않고, 특색 있는 인테리어도 없고, 눈을 사로잡을 만한 장식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식당일 뿐이었다.
40분이나 기다렸는데 이 정도야?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고사리육개장. 그리고 갓 담근 듯 싱싱한 막김치. 그리고 노릇노릇 고소한 녹두빈대떡. 그게 전부였다. 반찬도 별로 없고, 화려한 구성도 아니었다. 단출했다. 그런데 첫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이건 대체 뭐지?
지금까지 먹어본 육개장과 전혀 달랐다. 빛깔부터 독특했다. 이게 육개장 맞아? 의문이 들 정도로 오묘한 색감. 진한 갈색빛 국물 속에 고사리와 돼지고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푹 끓여져 있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깊고 진한 사골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고사리의 구수함이 그 위에 겹겹이 쌓였다. 걸쭉하면서도 부드럽고, 단순해 보이는데 복잡한 맛. 평범해 보이는데 특별한 맛. 한 번 맛보면 자꾸 또 먹고 싶어지는, 그런 중독성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라고 했다. 4월이면 제주도 온 들판에서 자라나는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함께 넣고 푹 끓여낸, 제주 전통 향토 음식. 경조사 때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정겹고, 어딘가 그리운 맛이었다.
녹두빈대떡은 일품이었다. 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씹을수록 고소함이 진해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다시 먹고 싶은 심정이다. 막김치도 그냥 막김치가 아니었다. 오늘 담근 것처럼 아삭아삭, 싱싱한 맛이 고사리육개장과 환상의 조합을 이뤘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40분씩 기다리는구나.
이제야 이해가 됐다.
"어머니, 이것 한번 드셔보세요."
며느리가 빈대떡 한 조각을 집어 내 앞에 놓아주었다.
"어머니, 국물 괜찮으세요? 더 뜨거운 거 달라고 할까요?" "어머니, 막김치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연신 내 앞에 반찬을 놓아주고, 국그릇을 살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며느리. 어머니, 어머니. 밥 한 숟가락 뜰 때마다, 국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그 달콤한 호칭이 함께 들려왔다.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새 며느리를 맞이하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 이 아이가 내 아들의 평생 짝이 되었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더 맛있었던 걸까.
사랑스러운 새며느리와 함께여서, 다 큰 아들들과 함께여서,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래서 이 평범한 육개장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졌던 걸까.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냥 음식을 나눠 먹는 게 아니구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시간,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거구나.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배도 마음도 가득 차 있었다.
40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기다림마저 여행의 일부였다. 대기실에서 며느리와 나눈 이야기, 주차장을 헤매다 들어온 아들의 지친 얼굴, 드디어 번호가 불렸을 때의 환호. 그 모든 것이 이 한 그릇의 육개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제주도 우진해장국의 고사리육개장.
극히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특별함이 숨어 있는 음식.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진한 맛. 단출해서 더 기억에 남는 맛.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가? 제주공항 근처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진해장국의 고사리육개장을 추천한다.
다만, 기다림에 지치는 성격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길. 40분은 기본, 길면 1시간 이상. 그 기다림이 조금 짜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음식이 나오면 그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어머나, 이런 육개장도 있어요?" "이 빈대떡 진짜 고소한데요?"
당신도 분명 그렇게 말하게 될 테니까.
위치: 제주시 병문천 근처 (제주공항에서 차로 약 10분)
대표 메뉴: 고사리육개장, 녹두빈대떡, 몸국
가격: 고사리육개장 10,000원 / 녹두빈대떡 15,000원
영업시간: 매일 06:00~22:00
대기 시간: 평균 40분~1시간 이상 (예약 불가)
꿀팁: 주차장이 복잡하니 일찍 도착 권장. 건너편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