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딸의 응원
금요일 저녁.
집.
식탁에 수진이가 앉아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인 막내딸.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 타이핑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타닥.
리듬감 있는 소리.
"수진아, 뭐 해?"
"과제 하고 있어요. 엄마, 저녁 먹었어요?"
"응, 먹었어."
경자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목이 말랐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시원했다.
수진이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를 쳐다봤다.
안경을 쓴 얼굴. 경자를 닮았다. 똑같은 눈매.
경자도 젊었을 때 안경을 썼었다. 지금은 돋보기안경만 쓰지만.
"엄마."
"응?"
"오빠들한테 들었어요."
경자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식탁 위에.
물컵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
톡.
'또 오빠들이다.'
"뭘?"
"부동산 투자하신다면서요?"
"..."
경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딸에게까지 알려졌구나. 집안 식구들이 다 아는구나.'
수진이는 의자를 경자 쪽으로 돌렸다.
바퀴 달린 의자.
삐걱.
"엄마, 괜찮으세요?"
수진이가 물었다.
"오빠들 말 들어보니까 되게 걱정하던데..."
"걱정 안 해도 돼."
경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엄마가 알아서 해."
"엄마..."
수진이는 잠시 망설였다.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신중한 표정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수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동산이 뭔지도 잘 모르고... 경제 그런 것도 어려워서..."
"응."
"근데 오빠들이 그렇게 걱정하는 거 보면..."
수진이가 말을 멈췄다.
"어려운 일인가 봐요."
"어려운 거 아니야."
경자는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정말 어렵지 않은 걸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걸까?'
"엄마."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자에게 다가왔다.
엄마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부드러웠다.
이십 대 초반의 손. 아직 세상의 거친 일을 겪지 않은 손.
"저는 엄마가 하시는 일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수진이가 말했다.
"근데..."
잠시 멈췄다.
"엄마가 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
"엄마가 더 잘 아실 거예요. 저보다, 오빠들보다."
그 말에 경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코끝이 찡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내가 더 잘 알까? 정말?'
사실 경자는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지도 몰랐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세미나도 다녔지만, 그게 진짜 아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숫자는 계산했다. 대출, 이자, 월 상환액. 전부 계산했다.
하지만 삶은 숫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경자도 알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 계획에 없던 일들. 그런 것들이 인생을 바꾼다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딸 앞에서 그 두려움을 보일 수 없었다. 엄마니까. 딸이 믿고 있으니까.
"고마워, 수진아."
경자는 딸을 안았다.
따뜻했다.
딸의 체온. 딸의 향기.
샴푸 냄새가 났다. 복숭아 향.
그 온기가 경자의 불안을 조금 덜어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가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불안한지. 매일 밤 잠 못 이루는지.
그저 엄마를 믿는다. 맹목적으로.
그 믿음이 고마우면서도 무거웠다.
'내가 실패하면... 이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지?'
경자는 딸을 더 꽉 안았다.
"근데 엄마."
수진이가 경자의 품에서 말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응."
"오빠들 말처럼... 위험한 건 조심하시고요."
"응, 알았어."
경자는 딸의 등을 토닥였다.
작은 등. 가늘었다.
'이 아이가 대학 다니는 동안, 그리고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할 때...'
경자는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오빠들처럼 고생하지 않게.'
수진이는 부동산을 잘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갭 투자가 뭔지, 전세가 뭔지, 월세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경제학과도 아니고 경영학과도 아닌 문과 학생.
그저 엄마가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할 뿐이었다.
엄마가 어떻게든 잘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했다.
엄마를 믿었다.
그 믿음이 경자에게는 부담이기도 했다.
동시에 힘이 되기도 했다.
딸을 놓아주고, 경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았다.
창밖을 봤다.
밤이었다.
골목길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주황빛.
이웃집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노란빛.
저마다의 집. 저마다의 가족. 저마다의 삶.
모두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고, 돌아와서 잠들고. 그렇게 하루하루.
경자도 그랬다. 십이 년을.
내일은 다를까?
경자는 숨을 들이켰다.
'내일.'
'토요일.'
'오후 2시.'
손이 떨렸다.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둘 다였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끝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내일 그 집을 보고 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좋은 쪽으로일까, 나쁜 쪽으로일까.
경자는 몰랐다.
그저 손만 떨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