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투자라는 이름의 꿈
천장의 물자국을 봤다.
작년 겨울, 비가 샌 자리였다.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면서 벌써 몇 달째. 물자국은 지도처럼 보였다. 해안선 같기도 하고 강줄기 같기도 했다. 서경자는 침대에 누워 그 모양을 따라갔다.
휴대폰을 봤다. 새벽 세 시.
옆에서 남편 김정수가 자고 있었다. 깊은 숨소리. 규칙적인 호흡. 이십 년 넘게 외국계 회사 다니면서도 이렇게 자는 사람이었다. 내일 출근하고 월급 받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경자는 달랐다.
요즘 잠이 안 왔다. 밤이 되면 숫자가 보였다. 월급, 생활비, 등록금, 노후 자금. 그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돌고 돌았다.
일어났다.
거실로 나갔다. 창문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은은한 주황빛. 밖은 고요했다. 새벽 세 시면 다들 자고 있었다.
소파에 앉았다. 낡은 소파였다. 십여 년 넘게 앉은 자리라 푹 꺼져 있었다. 등받이 쿠션도 딱딱했고 팔걸이 천은 닳아서 실밥이 보였다. 하지만 깨끗했다. 경자가 매주 먼지를 털고 커버를 빨았다. 낡았어도 지저분하지 않게. 그게 경자의 방식이었다.
거실 벽시계가 똑딱거렸다. 딸 수진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산 시계.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조용한 새벽에는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창밖을 봤다.
작은 마당이 보였다. 삼십 년 가까이 산 집이었다. 결혼 후 십 년 만에 겨우 장만한 집이었다. 시댁에서 살다가, 좁은 상하방을 전전하다가,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이 집을 샀었다.
대구 남구의 오래된 동네.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요즘 신축 빌라들이 하나둘 들어서지만 경자네 집은 그대로였다.
벽돌집이었다. 빨간 벽돌이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다. 지붕도 낡았다. 비 오면 샜다. 하지만 벽돌 하나하나를 경자가 닦았다. 봄마다 고압 세척기를 빌려서. 지붕은 어쩔 수 없었지만 벽만큼은 깨끗하게 유지했다.
마당도 작았다. 평 남짓. 거기에 장독대 몇 개 놓고 고추 몇 포기 심었다. 작년에는 상추도 심었는데 잘 안 자랐다. 그래도 경자는 마당 한쪽을 정리해서 작은 화분들을 놓았다. 봉선화, 맨드라미. 돈 안 드는 꽃들. 씨앗 뿌리면 자라는 것들.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세 명. 큰아들 민준이, 둘째 민수, 막내딸 수진이. 좁은 방 두 개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한 방에서 셋이 잤다. 커서는 아들 둘이 한 방, 딸이 한 방.
지금은 아들 둘 다 독립했다. 서울에서 직장 다녔다. 수진이만 남았다. 고등학생이었다.
집은 낡았다. 삼십 년이 넘었으니 낡을 수밖에. 화장실 타일도 깨졌고 부엌 씽크대도 녹슬었다. 보일러는 십여 년 됐다. 겨울만 되면 걱정이었다. 언제 고장 날지.
고칠 돈이 없었다.
하지만 더럽지는 않았다. 경자는 매일 청소했다. 낡은 타일이라도 깨끗하게. 녹슨 씽크대라도 반짝이게.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 집을 살 수는 없어도 깨끗하게는 살 수 있었다.
TV 리모컨을 집었다. 켰다.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뉴스 채널이었다. 새벽 재방송.
"코로나19 확진자가 또다시 급증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됩니다."
앵커가 말했다.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확진자 수. 빨간 선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거리 인터뷰였다. 육십대쯤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식당 주인이었다.
"사십 년 넘게 가게 했는데 이제 접어야 될 것 같아요. 거리두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요."
다음 인터뷰. 이십대 여자였다. 카페 알바생이었다.
"가게 문 닫아서 저도 일 못 해요. 알바비로 학비 냈는데 이제 어떡하죠."
또 다른 인터뷰. 삼십대 남자였다.
"무급휴직 당했어요. 한 달에 백만 원 지원해준다는데 그걸로 뭐 해요. 애 둘 키우는데."
경자는 화면을 봤다.
이천이십 년 가을이었다. 코로나가 터진 지 반년 넘게 지났다. 세상이 달라졌다. 마스크, 거리두기, 폐업. 뉴스에서 매일 나왔다.
대구가 제일 심했다. 코로나 첫 대규모 확산지였다. 이천이십 년 봄, 대구가 뉴스에 나왔다. 확진자가 폭증했다. 병원이 부족했다. 사람들이 죽었다. 대구 전체가 멈췄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게 바뀌기 시작한 건.
동네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치킨집, 카페, 옷가게. 임대 표지판이 붙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그게 다였다.
화면 속에서 또 다른 뉴스가 나왔다.
"급여 삭감과 무급휴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타격이 큽니다."
그래프가 떴다. '2020년 가계 소득 감소율'. 빨간 막대가 내려갔다.
경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편 월급도 삭감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삼백만 원 가까이 받았는데 올해 들어 이백오십으로 줄었다. 외국계 건설자재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코로나로 건설 현장이 멈췄다. 자재가 안 팔렸다. 회사는 직원들 월급을 이십 퍼센트 깎았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그저 회사 다니고 월급 받고. 삭감된 것도 그냥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지 뭐." 그게 다였다.
경자 월급도 마찬가지였다. 슈퍼마켓 근무시간이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시간이 단축됐다. 손님도 줄었다. 원래 백오십만 원 정도 받았는데 지금은 백이십. 삼십만 원이 줄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둘이 합쳐 한 달에 삼백칠십.
코로나 전에는 사백오십이었다. 팔십만 원이 줄었다.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 딸 수진이 학원비 조금 더 보내주고, 경조사비 내고, 여름에 선풍기 대신 에어컨 켜고.
이제는 다 아껴야 했다.
채널을 돌렸다.
경제 방송이었다.
"개미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입니다."
앵커가 설명했다.
"코로나로 주가가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에서 주식하면 된다는 분위기입니다."
화면에 증권가 풍경이 나왔다. 사람들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 든 사람도 있었다.
인터뷰가 나왔다. 삼십대 남자였다.
"회사 다녀봤자 월급 얼마 안 되잖아요. 주식으로 한 달에 몇백씩 버는 사람도 있대요. 저도 해봐야죠."
다음 인터뷰. 칠십대 할아버지였다.
"연금으로는 못 살아요. 주식이라도 해야죠. 손주 용돈이라도 줘야 하는데."
또 다른 인터뷰. 이십대 여자였다.
"취업이 안 되니까... 주식이라도 하면 돈 벌 수 있잖아요."
경자는 그 얼굴들을 봤다. 다들 비슷했다. 조급한 눈빛.
화면 속 전문가가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삼사십대뿐 아니라 오십대, 육십대, 심지어 칠십대까지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경자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올해 초였다.
슈퍼마켓 동료 미숙이가 말했다.
"언니, 주식 해요?"
"아니, 나는 그런 거 모르는데."
"저 요즘 하는데 돈 벌어요. 백만 원 넘게 벌었어요."
"진짜?"
"네. 집에서 휴대폰으로 하면 돼요. 요즘 다들 해요."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검색했다. '주식 투자 방법'. 영상을 봤다. 블로그를 읽었다. 어렵지 않아 보였다. 계좌 만들고 돈 넣고 주식 사면 됐다.
며칠 고민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백만 원만 넣었다. 조심스럽게. 삼성전자를 샀다. 며칠 후 십만 원 올랐다. 팔았다. 십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슈퍼마켓에서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만 원도 안 되는데. 주식은 며칠 만에 십만 원.
더 넣었다. 이백만 원. 삼백만 원. 계속 올랐다. 이십만 원, 삼십만 원. 통장 잔고가 늘었다.
주변 사람들도 다 했다. 미숙이뿐 아니라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생도 했다. "저 어제 오십만 원 벌었어요." 젊은 애들이 그렇게 말했다.
뉴스에서도 나왔다. '동학개미'. 외국인과 기관이 팔 때 개인이 샀다. 애국심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를 살린다고 했다.
경자는 계속 넣었다.
오백만 원. 천만 원. 천오백만 원.
십여 년 넘게 슈퍼마켓에서 모은 돈이었다. 전업주부 때 알뜰하게 모은 돈도 있었다. 장 볼 때 천 원이라도 아끼고 옷도 안 사고 외식도 안 하고. 명절에 시댁 갈 때도 선물 싸게 사고. 이 집 보일러 고장 나도 참고 견디고. 겨울에 내복 겹쳐 입고. 여름에 선풍기만 틀고. 그렇게 모았다.
다 합쳐 삼천만 원 정도 있었다. 이천만 원 가까이를 주식에 넣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통장 잔고가 이천이백, 이천삼백, 이천오백. 계속 올랐다.
그런데.
지난여름부터였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십만 원씩. 이십만 원씩. 처음엔 곧 오르겠지 했다. 기다렸다. 그런데 계속 떨어졌다.
이천삼백, 이천, 천팔백, 천오백.
손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못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를 거야.'
'지금 팔면 손해야.'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
계속 기다렸다.
천이백, 천, 팔백.
결국 남은 건 오백만 원 정도였다.
천오백만 원 넘게 날렸다.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보다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울음이 나왔다. 소리 없이. 남편이 깰까봐.
십여 년.
십여 년 넘게 모은 돈.
하루 여덟 시간씩 서서 일하고. 손님들 짜증 받아가며. 무거운 물건 나르고. 명절에도 나가고. 아플 때도 참고. 이 낡은 집에서 보일러 고장 나도 참고. 겨울에 내복 겹쳐 입고. 여름에 선풍기만 틀고. 마당에 꽃 심어가며 위안 삼고. 그렇게 모은 돈.
다 날렸다.
그날 이후 다짐했다. 다시는 투자 안 한다고. 주식 같은 거 안 한다고.
계좌를 닫았다. 남은 오백만 원을 빼서 저축 통장에 넣었다. 원래 있던 저축 오백만 원과 합쳐서 천만 원.
그게 전부였다.
삼천만 원이 천만 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