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나를 붙잡은 날
비가 내리는 파리의 오후, 생미셸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창가에 앉아 카페 크렘을 시키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펜을 들었지만 첫 줄이 나오지 않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유튜브를 뒤적이다 배우이자 작가인 차인표 씨의 인터뷰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관련 영상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4권의 소설을 쓰는 데 10년. 그는 결코 우연히 작가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매일 일기를 쓰고, 친구들과 손 편지를 주고받았다. 글은 그에게 평생의 습관이었고, 그 습관이 작가를 만들었다.
나는 어떤가.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겨우 1년 남짓. 그 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글쟁이라 믿었다. 주변에서 "맛깔나게 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은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하자, 그 자신감은 조용히 무너졌다. 문해력, 어휘력, 문장력. 부족한 것들이 한꺼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부족함을 알게 된 후로, 오히려 글이 더 좋아졌다.
글을 쓰면 사람들의 마음이 읽힌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가족 여행 중 매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아이들에 대한 내 복잡한 감정을 영영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단순한 '좋다, 싫다'가 아니라, 그 안에 겹겹이 쌓인 진짜 마음을 글이 꺼내주었다.
옛말에 '문은 무보다 강하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문제에 나오는 문장일 뿐이었는데,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무게가 가슴에 닿는다. 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꾼 것은 칼이 아니라 붓이었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것도 결국 글이었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차인표 작가도 소설을 위해 몇 달간 세상과 단절해야 했고, 고명환 작가도 섬에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했다. 글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요구한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달콤한 열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카페를 나서며 생각했다. 50대, 파리에서 시작한 글쓰기.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사실은 가장 좋은 때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