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파리 유학생, 늦어도 괜찮아 시리즈~

엄마는 진짜 내 엄마 맞아?

by Selly 정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다. 마치 흑백사진에 색이 입혀지듯,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나중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기억. 나에게 그날의 기차 안이 그렇다.


일 년 반쯤 전의 일이다.

베르사이유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김치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프랑스 주부들에게 한국의 김치를 알려주는 작은 행사. 나는 한국어 교사로서 그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불어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다. 김치의 맛을 설명하고, 재료의 이름을 알려주고, "손가락으로 한두 꼬집"이라는 미묘한 표현을 불어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단어를 아무리 뒤적여 봐도, 불어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그래서 딸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한국어로 말하면 바로바로 불어로 통역해 달라고.

부탁이라기보다는, 돌이켜 보면 협박에 가까웠다. 며칠 전부터 "꼭 와야 해", "네가 안 오면 엄마 어떡해"라며 딸을 달래고 얼르고, 거의 끌다시피 데려갔다.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던 딸의 표정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읽지 못했다. 아니, 읽으려 하지 않았다.


수업 날이 왔다.

김치 재료를 테이블 위에 하나씩 펼쳐놓았다. 배추, 무, 고춧가루, 멸치 액젓, 마늘, 생강, 쪽파. 빨갛고 하얀 것들이 나란히 줄지어 놓이자, 프랑스 주부들이 하나둘 교실로 들어왔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그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교실 한쪽에서 한글학교 협회장님도 수업을 지켜보고 계셨다.

나는 딸을 믿고 한국어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배추를 소금에 절여야 해요. 소금은 이 정도 양이면 되고요, 배추 잎 사이사이에 골고루 뿌려주세요."

딸을 돌아보았다. 통역을 기다렸다. 그런데 딸의 입에서 불어가 나오지 않았다. 멸치 액젓을 불어로 뭐라 해야 하는지, 고춧가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손가락으로 한두 꼬집"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딸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치 재료에 관한 용어들을 미처 공부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

수업은 진행되어야 하고, 프랑스 주부들은 기다리고 있고, 딸의 통역은 나오지 않고. 결국 나는 서툰 불어와 손짓을 섞어가며 직접 설명하기 시작했다. 협회장님도 상황을 눈치채시고 가까이 다가오셔서 유창한 불어로 통역을 해주셨다. 나와 협회장님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며 수업을 이끌어 갔다.

그 사이, 딸은 내 옆에 서 있었다.

어정쩡하게. 간간이 한마디씩 끼어들 뿐, 통역사로서 온 자신의 역할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는 그때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만 안도했을 뿐, 내 옆에 서 있는 딸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단 한 번도 살피지 않았다.


수업이 끝났다.

프랑스 주부들은 각자의 김치를 봉지에 담아 환하게 웃으며 돌아갔다. 교실을 정리하고, 협회장님이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뿌듯했다. 수업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이 몸을 감쌌다.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돌아가기 위해 딸과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입을 열었다.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는 왜 항상 내 심정을 모르는 거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왜 항상 남의 편만 들어."

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차 안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딸은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울면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는 정말 아는 거야?" "왜 나를 데려와서 창피하게 만든 거야?" "협회장님이 나와서 통역할 때, 엄마는 내 입장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같이 웃으면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잖아."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내가 언제 남의 편을 들었단 말인가.

그 순간,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언제 남의 편이었어? 네가 통역을 제대로 못하니까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나도 창피했어. 왜 그렇게 준비를 안 해온 거야?"

딸에 대한 답답함과 실망,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자존심이 깎인 것에 대한 분노까지, 나는 가감 없이 딸에게 쏟아부었다. 딸은 더 크게 울었다. 기차 창밖으로 베르사이유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갔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딸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했다.

"엄마는 진짜 내 엄마 맞아?"


그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 그저 딸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감정적이라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옳고 그름을 설명했다. 세상의 규칙을 알려주었다. 네가 통역사로 왔으면 통역을 잘 했어야지, 준비를 했어야지, 이건 네 잘못이야. 나는 가르치려 했고, 설득하려 했고, 판단하려 했다.

딸은 그날 밤, 자기 방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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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한 달, 두 달, 반년. 그 사이 나는 책을 읽었다.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육아에 대해, 관계에 대해, 말하기에 대해 배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국 작가의 책 한 구절이 눈에 멈추었다.

'남의 고통과 어려움을 대신할 수 없듯이, 위로도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타인은 다만 그것을 도울 뿐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기차 안에서 울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 년 반 전의 그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제야 보였다.

딸도 창피했던 것이다. 통역사로 왔는데 통역을 제대로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교실 안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했던 그 시간이, 딸에게는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까. 엄마와 협회장님이 자연스럽게 수업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신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 그런 딸의 마음을 엄마인 나는 한 번도 헤아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딸의 상처 위에 소금을 뿌렸다.

"네가 통역을 못하니까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이 말이 딸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이미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딸에게, 엄마마저 "네가 부족해서 내가 창피했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내 편이 없다고 느꼈을 딸의 그 외로움이,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에야 가슴을 찌른다.


나는 그때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딸이 울며 "엄마는 내 심정을 모른다"고 했을 때, "그래, 네가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고개만 끄덕이면 되었다. "나는 네 편이야"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진심을 담아 물어봐 주면 되었다. 그리고 딸이 속마음을 다 쏟아낼 때까지, 가만히, 조용히 들어주면 되었다.

그것이 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고, 질문하고, 들어주는 것.

딸의 고통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다. 딸의 상처를 내가 치유해 줄 수도 없다. 딸은 결국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엄마인 나는 그저 그것을 도울 뿐이다. 그런데 나는 도움은커녕, 딸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50대가 되어서야 배우고 있다.

얼굴에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나고, 기미와 검버섯이 나이 듦을 알려주듯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세월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겉모습만 어른인 채로, 속은 여전히 자존심에 휘둘리고, 옳고 그름에 집착하고, 상대의 마음보다 내 체면을 먼저 챙기는 사람. 그것이 그날 기차 안의 나였다.

엄마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니다. 엄마도 연약한 인간이다. 자존심이 상하면 눈이 멀고, 창피하면 방어적이 되고, 화가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상처를 주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

하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다.


요즘 나는 말하기를 조금씩 줄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말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 앎이 잔소리가 되고, 조언이 훈계가 되고, 걱정이 간섭이 되는 순간, 사랑은 상처로 바뀐다. 이 또한 슬픈 일이다.

흰머리와 새치들이, 기미와 검버섯들이 나의 나이 듦을 증명해 주듯이,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연습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 설득하려 하지 않는 것. 판단하려 하지 않는 것.

먼저 듣는 것. 끝까지 듣는 것. 그리고 "그랬구나"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50대에 내가 배우고 있는, 가장 어려운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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