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파리 유학생, 늦어도 괜찮아 시리즈~

'때문에'를 '덕분에'로

by Selly 정

남편은 나를 놀리는 버릇이 있다.

그것도 단둘이 있을 때가 아니라, 꼭 아이들 앞에서. 장난치듯이, 가볍게, 킥킥거리면서.

내가 예전에 했던 말, 실수했던 행동, 부끄러운 기억들을 꺼내놓는다. 아이들이 웃는다. 남편도 웃는다.

웃지 못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몇 번이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내면, 그 반응이 재미있는 건지 더 한다.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가족이 다 모였을 때,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듯이.

결국 나는 카메라를 꺼버린다.

화면이 꺼져도 남편의 말은 꺼지지 않는다. 머릿속에 남는다. 며칠이고 남는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남편에게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는다.

제발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

신혼 초부터 남편에게 했던 말이 있다.

"제발 부정적으로 말하지 마."

남편은 자기는 부정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라고 했다. 자기 시각과 관점을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시각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비관적이었다. 절망적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내 안에 있던 의지가 꺾였다. 소망이 꺾였다. 희망까지 꺾이는 느낌이었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말해."

그 말을 몇십 년 동안 했다.

하품처럼 번지는 것

문제는, 부정적인 말은 전염된다는 거였다.

하품처럼. 누군가 하품을 하면 옆 사람도 하품을 하고, 그 옆 사람도 하품을 한다. 부정적인 말도 그렇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물든다.

남편의 부정적인 말들 속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비관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을 순수하게 보지 못했다. 색안경을 끼고 먼저 의심했다.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예전에 가까운 지인 중에 뒷담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맞장구를 쳤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꺼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이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들이 결국 나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부정적인 말은 내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부메랑이 되어 남편에게 돌아갔다. 내가 쏘아 올린 화살은 결국 가족 전체를 찔렀다.

아, 이거구나

얼마 전, 아들의 여자친구가 파리에 놀러왔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이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말썽은 안 피웠는지. 부모 속은 안 썩였는지.

나는 잠깐 생각했다.

사춘기에 방황 안 하는 아들이 어디 있나. 반항 안 하는 아이가 어디 있나. 그런 건 누구나 겪는 거다. 삶의 과정이고, 성장을 위한 도약일 뿐이다.

나는 아들의 좋은 점을 말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나 잘 버텨왔는지. 지금 얼마나 훌륭한 어른이 되었는지. 진심으로, 하나하나, 말했다.

여자친구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건 그다음이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이 달라졌다. 엄마에게 더 다정해졌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눈빛이 따뜻해졌다.

긍정의 말이 선순환을 만든 것이다.

아, 이거구나. 이렇게 되는 거구나.

칭찬은 사라지고, 지적만 남는다

글쓰기 수업에 '합평'이라는 시간이 있다.

서로의 글을 읽고 장단점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시간이다. 어제가 그 시간이었다. 칭찬도 많이 들었다. 좋은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칭찬은 다 사라지고 지적받은 것만 남아 있었다.

사람은 원래 그런 거라고 한다.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귀가 더 쫑긋 선다고. '부정 편향성'이라고 한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바꿔야 한다. 의도적으로 바꿔야 한다. 안 그러면 본능이 나를 어두운 쪽으로 끌고 간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요즘 읽고 있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꿔보라고.

단어 하나 바꾸는 거다. 그런데 그 단어 하나가 문장 전체를 뒤집는다. 감정을 뒤집는다. 하루를 뒤집는다.

남편 때문에 힘들다 → 남편 덕분에 내가 강해졌다.

해외 생활 때문에 외롭다 → 해외 생활 덕분에 나를 알게 됐다.

늦은 나이 때문에 불안하다 → 늦은 나이 덕분에 간절하다.

같은 사실인데, 말이 달라지면 마음이 달라진다.

나를 놀리지 마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를 놀리는 말, 비하하는 말, 아이들 앞에서 절대 하지 마. 정말 꼭 하고 싶으면, 나한테만. 나랑 둘이 있을 때만."

내가 단호하게 나오니까, 남편이 자제하기 시작했다.

서로 무시하는 말을 안 하니까, 대화가 부드러워졌다. 분위기가 온화해졌다. 아이들도 편해졌다.

늦었다는 건, 아직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아직 멀었다.

나도 모르게 비관적인 말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말이, 깎아내리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고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멈추려고 한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50대에 이걸 배우고 있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몇십 년을 부정적인 말 속에서 살다가 이제야 바꾸려 하니까.

그래도 괜찮다.

늦었다는 건, 아직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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