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5%의 덫, 2부

2부 1장-2: 15층, 그 집

by Selly 정

로비는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이 5미터는 넘어 보였다. 슈퍼마켓의 형광등 천장과는 달랐다. 여기는 높고, 하얗고, 조용했다. 대리석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딱, 딱, 소리가 났다. 슈퍼마켓의 리놀륨 바닥에서는 나지 않는 소리. 단단하고 차가운 소리. 경자의 구두 굽이 로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자기가 내는 소리인데도 남의 것 같았다.

벽면의 큰 거울에 경자가 비쳤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 의식적으로 어깨를 폈다. 펴지지 않았다. 거울 속의 여자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우편함이 한쪽 벽면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101, 102... 1501, 1502, 1503... 금속 문짝들이 하나도 찌그러지지 않은 채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동네 우체통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먼지 한 톨 없었다.

"이쪽입니다."

조영달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버튼을 누르자 '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먼저 타세요."

손으로 문을 잡으며 비켜섰다. 경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소 같은 냄새가 났다. 새 건물 특유의, 기름과 금속이 섞인 냄새. 세 면이 거울이었다. 앞에도 경자, 옆에도 경자, 뒤에도 경자. 화장한 얼굴이 여러 개로 비쳤다. 눈을 내리깔았다.

조영달이 15를 눌렀다. 빨간 불.

문이 닫히고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웅. 몸이 살짝 가라앉는 느낌. 위로 끌려 올라가는 느낌. 경자는 가방 끈을 두 손으로 잡았다.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층수가 바뀌었다. 5층. 8층. 10층. 빨간 숫자가 바뀔 때마다 귀가 먹먹해졌다.

"15층이면 전망이 꽤 나옵니다."

조영달의 목소리가 좁은 상자 안에서 울렸다. 경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말라 있었다.

14층.

그리고 15층.

딩.

문이 열리자 복도의 공기가 밀려왔다. 로비보다 서늘했다. 형광등 불빛이 하얗고 차가웠다. 긴 복도. 양쪽으로 회색 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호텔 복도 같으면서도, 병원 복도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바닥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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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호. 회색 철문. 번호키.

조영달이 초인종을 눌렀다. 띠리링.

안에서 사각사각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문이 열렸다.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30대 초반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에 회색 맨투맨, 검은 레깅스. 집에서 편하게 입는 차림이었지만 빨래 냄새가 좋았다. 섬유유연제. 꽃 향. 수진이도 이 냄새를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며 웃었다. 수진이 또래로 보였다. 이 나이에 서울에서 혼자, 이런 집에서 산다. 경자는 자기도 모르게 이 여자의 월급이 궁금해졌다.

"연락드렸던 조영달입니다. 이쪽이 대구에서 오신 사모님이세요."

"아, 네! 어서 오세요! 들어오세요."

문이 활짝 열렸다. 현관은 한 평도 안 되었다. 왼쪽에 신발장, 오른쪽에 전신 거울. 바닥에 운동화 한 켤레와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 집 현관은 수진이 신발이 세 켤레째 뒹굴고 있는데. 경자는 구두를 벗으며 무의식적으로 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실내화를 신었다. 발밑이 부드러웠다. 나무 바닥의 온기가 올라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방이 나타났다.

8평.

이 한 단어가 주는 인상과,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달랐다. 작았다. 분명히 작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왼쪽 벽면을 따라 싱크대, 2구 인덕션, 작은 냉장고. 인덕션 위에 기름 튄 자국 하나 없었다. 화장실 옆 틈새에 드럼세탁기가 빌트인으로 들어가 있었다. 칼로 잰 듯한 공간 활용.

오른쪽에는 붙박이 옷장과 싱글 침대. 하얀 이불이 주름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경자네 방의 이불은 아침마다 대충 접어 구석에 밀어둔다. 여기는 달랐다. 침대 옆 작은 책상 위에 노트북이 닫혀 있었고, 머그컵 하나가 코스터 위에 올려져 있었다. 벽에 걸린 작은 TV.

혼자 사는 사람의 방. 하지만 혼자라서 어지러운 게 아니라, 혼자라서 완벽하게 정돈된 방. 이 여자는 자기 삶을 제 손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경자는 그것이 부러웠다. 작은 방이지만 온전히 자기 것인 공간.

그리고 정면에, 창문이 있었다.

거의 벽 한 면을 차지하는 큰 창.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바닥에 빛의 사각형이 놓여 있었다. 공기 중에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경자는 자석에 끌리듯 걸어갔다. 창 앞에 섰다. 밖을 내다봤다.

15층.

발아래로 건물들의 지붕이 빼곡했다. 도로 위의 차들이 장난감처럼 작았다. 사람들은 점이었다. 대구의 단독주택 마당에서는 맞은편 집 지붕밖에 안 보였다. 여기는 세상이 발밑에 있었다.

그리고 멀리. 아주 멀리.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지는 것이 보였다.

강이었다.

한강이었다.

사진에서 봤을 때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진짠지 아닌지도 몰랐던 선. 하지만 지금, 15층 창문 앞에서 보는 한강은 폭이 있었다. 살아 있었다. 수면 위에서 빛이 부서지며 작은 조각들을 뿌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이 일렁이는 것이 여기서도 보였다.

경자의 손이 유리에 닿았다. 차가웠다. 손가락 끝에서 유리의 냉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참으려 했다. 참아지지 않았다.

열두 해.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유니폼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바코드를 찍었다. 삑. 삑. 삑. 하루에 몇 백 번.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결리고 다리가 부었다. 그렇게 12년을 보낸 사람이 지금 15층 창문 앞에 서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서울이 발밑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전망 좋죠?"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자는 재빨리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여자가 옆으로 다가와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저기 보이는 게 한강이에요. 15층이라 이 정도로 보이는 거예요. 날씨 좋은 날엔 더 선명하고요."

"와..."

경자는 그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는 이 집 정말 좋아요."

여자의 얼굴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조영달이 물었다. 자연스럽게. 마치 호기심에서 묻는 것처럼.

"살면서 제일 만족하는 게 뭐예요?"

"일단 위치요. 영등포구청역이 걸어서 5분이에요. 빨리 걸으면 3분도 안 걸려요."

경자의 체크리스트에 있던 항목이었다. '역까지 거리 — 도보 시간.' 마음속으로 체크.

"주변에 편의점, 마트, 은행, 병원... 웬만한 건 다 걸어서 갈 수 있어요."

체크. 체크. 체크.

"그리고 밤에 안전해요. 저도 여자 혼자 사는데, 여기 큰길이라 밤에도 사람이 많아요. 가로등도 밝고요."

여자는 계속 말했다. 물꼬가 터진 것처럼.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말투 하나하나에 묻어 있었다. 경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노트를 꺼내지 않았다. 꺼낼 필요가 없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12년 동안 손님들의 장바구니를 보며 익힌 감이, 지금 이 동네는 괜찮다고, 사람이 빠질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영달은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창가에 기대서 있었다. 세입자가 직접 하는 말이 중개인의 백 마디보다 효과적이라는 걸,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 경자의 눈이 반짝일 때마다, 조영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화장실도 한번 보세요."

조영달이 부드럽게 말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변기, 세면대, 샤워부스. 하얀 타일. 곰팡이 자국 없었다. 경자네 집 화장실은 타일 사이가 까맣게 변한 지 오래다. 여기는 줄눈까지 하얬다. 거울이 빈틈없이 닦여 있었고, 배수구에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살짝 틀어봤다. 물이 세게 나왔다. 수압도 좋았다.

"관리 정말 잘 하셨네요."

경자가 진심으로 말했다.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경자는 남의 집 청소 상태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30년 살림을 해온 사람이었다. 이 화장실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여자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경자는 방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창문 앞에 섰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아니,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아까 본 것이 진짜인지.

진짜였다. 한강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경자의 어깨를 비췄다. 등이 따뜻해졌다. 우리 집은 남향이 아니라 겨울이면 거실이 늘 어둡다. 여기는 빛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떠세요?"

조영달이 물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좋아요..."

경자의 목소리가 작았다. 작아서 더 진짜 같았다.

"정말... 좋아요..."

조영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살짝.

"그럼 아래 사무실에서 자세한 이야기 나누시죠."

경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창문을 떠나면 다시 못 올 것 같았다.

그때 경자가 여자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 계속 사실 건가요?"

순간, 여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환했던 얼굴에 그늘이 지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경자는 봤다. 30년 살림으로 단련된 눈이었다.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눈.

"아... 사실은... 제가 몇 개월 후에 이사를 가야 해서요..."

'이사를 간다고?'

"회사 때문에..."

여자가 말을 이으려는데, 조영달이 끼어들었다.

"그 부분은 사무실에서 제가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일단 이쪽으로요."

자연스러웠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경자는 그 말에 실린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불편한 이야기는 이 공간에 남기지 않는 것. 경자가 한강뷰의 감동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세입자 교체라는 현실은 사무실로 미루는 것.

경자는 마지막으로 창밖을 봤다. 한강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빛이었다.

'이 집은... 내 것이 될 거야.'

이미 결정했다. 아니, 보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이었다. 온몸으로 느끼는 확신.

세 사람이 현관으로 나왔다. 신발을 신었다.

경자가 여자를 보며 말했다.

"아가씨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사는 세입자 만나기 쉽지 않은데. 정말 아쉽네요."

여자가 수줍게 웃었다.

"아니에요. 저보다 더 좋은 분 만나실 거예요."

조영달이 여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금 같은 토요일에 시간 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가 문 앞에서 깊이 인사했다. 문이 닫혔다.

복도. 형광등 불빛. 두 사람의 발소리.

경자의 몸은 복도를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저 방 안에 있었다. 창문 앞에. 빛이 바닥에 사각형을 만들던 그 자리에.

엘리베이터가 왔다. 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15층. 14층. 13층.

거울에 비친 경자의 얼굴이 올라올 때와 달랐다. 아까는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지금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1층. 문이 열렸다. 로비.

조영달이 말했다.

"사무실이 길 건너에 있어요. 거기서 조건이랑 절차, 천천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네."

경자는 따라 걸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후 햇살이 여전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조영달이 반 발짝 앞서 걸었다. 등이 넓었다. 여유로웠다. 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자는 알지 못했다. 이 사람이 걷는 속도도, 말하는 타이밍도, 끊는 순간도, 모두 계산된 것이라는 걸. 한강이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경자는 이미 이 사람의 시간표 위에 올라가 있었다.

다음 화: 4장 3화 — 사무실에서, 달콤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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