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파리의 좁은 원룸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50대 중반의 유학생입니다. 오늘은 제 가슴속 깊이 새겨진, 아직도 가끔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바로 부동산 투자 실패담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될 수도 있는 이 이야기. 하지만 저는 이 경험이 제 인생의 가장 값진 선생님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2022년 봄, 파리는 온통 연분홍빛 벚꽃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하지만 제 마음은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릴 여유가 없었죠.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어느 날, 마치 운명처럼 부동산 유튜브 영상 하나를 클릭했어요.
그날부터 제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와, 이렇게 하면 노후가 보장되는 거구나!"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저는 부동산 투자라는 새로운 세계에 푹 빠져들었어요. 유튜브는 물론이고, e-book 플랫폼에서 관련 서적을 마구잡이로 다운받아 읽었죠. 새벽 2시, 3시까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여보, 불 좀 꺼요.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미안, 미안! 이 부분만 읽고 잘게."
하지만 '이 부분'은 끝이 없었어요. 마치 끝없이 펼쳐지는 보물지도를 본 것처럼, 한 페이지가 끝나면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아실, 호갱노노, 네이버 부동산... 이 웹사이트들은 제 북마크 바의 단골 손님이 되었어요. 파리와 서울의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간 오전에 매물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려고 새벽같이 일어나기도 했죠. 남편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강남, 송파, 서초... 이 지역 이름들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저는 마치 장군이 전쟁 지도를 들여다보듯 서울 지도를 분석했어요. 가격 그래프는 제 눈에 황금빛 곡선으로 보였고, 매 순간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죠.
"이건 기회야. 절대 놓치면 안 돼."
제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월급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순간, 제 심장은 마치 올림픽 육상 선수처럼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죠.
"드디어! 드디어 기회가 왔어!"
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애교를 부리며 남편에게 다가갔어요.
"여보, 정말 고생 많았어. 당신은 우리 가족의 영웅이야!"
남편은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지만, 저는 이미 머릿속으로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그날 밤, 잠은 안중에도 없었죠. 노트북을 펼쳐놓고 매물 검색에 몰두했어요. 커피를 연거푸 세 잔이나 마시며,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을 샅샅이 뒤졌죠.
한국에 계신 부동산 중개사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띵동!"
메시지가 올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마치 첫사랑에게 받는 연애편지 같았죠.
"이 매물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사진 좀 더 보내주세요!"
그렇게 제가 신뢰하던 아주버님께 매수 대리인을 부탁드렸고, 드디어 첫 번째 매물을 계약하게 되었어요.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던 그날, 저는 파리의 작은 방에서 혼자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어요.
"야호! 나도 이제 부동산 투자자야!"
남편도 처음으로 제 선택을 인정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의 눈빛에서 신뢰가 보였고, 그 신뢰는 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죠.
"당신, 생각보다 똑똑한데?"
그 한마디가 제게는 세상 어떤 칭찬보다 달콤했어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게 참 무서운 거더라고요. 마치 바닥 없는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첫 번째 성공은 저를 더 큰 욕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어요.
"한 번 더 하면 어때? 이번에도 성공할 거야!"
악마의 속삭임 같은 그 생각이 제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죠.
오피스텔. 그 단어가 제 눈에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어요. 유튜브에서 본 영상들이 하나둘 떠올랐죠.
"적은 돈으로 큰 수익! 오피스텔이 답이다!"
저는 미친 듯이 오피스텔 관련 자료를 찾아 읽었어요. 강의도 듣고, 카페에도 가입하고, 심지어 유료 컨설팅까지 받았죠. 제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제 확신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2022년 7월, 저는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어요. 파리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설렘과 긴장으로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들이 마치 솜사탕처럼 보였고, 그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이번엔 대박이야. 꼭 대박 날 거야."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어요.
서울 거리를 누비며 오피스텔을 임장하던 그때, 이미 부동산 시장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마치 가을 끝자락의 낙엽처럼, 매물들의 가격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죠.
"괜찮아, 곧 회복될 거야."
저는 계속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아니, 믿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임차인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하루, 이틀, 일주일...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고, 잔금 날짜는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어요. 제 손은 떨렸고,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죠.
가족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저는 처음으로 손을 벌렸어요.
"미안해, 조금만 빌려줄 수 있을까?"
그 말을 꺼내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몰라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자존심을 삼키며, 저는 고개를 숙였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어요. 아무도 그런 큰돈을 빌려줄 수 없었어요. 당연한 일이었죠.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결국 계약은 무산되었고, 계약금은 그냥 날아가버렸어요. 통장에서 사라진 그 숫자들을 보며, 저는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선 나무처럼, 저는 텅 빈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죠.
남편의 전화를 받던 순간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당신 때문에! 다 당신 때문이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칼날 같았어요. 제 심장을 깊숙이 찌르는 것 같았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변명할 말도, 위로받을 자격도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날 밤, 저는 한강을 따라 걸었어요.
서울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제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죠.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요. 밤바람이 제 뺨을 스치며 지나갔고,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어요.
"나는 왜 이렇게 멍청했을까?"
수없이 그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졌어요.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죠.
파리로 돌아온 후,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공부도, 글쓰기도, 심지어 밥 먹는 것조차 힘들었죠. 거울 속의 제 모습은 초췌했고, 눈가의 주름은 더 깊어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깨닫기 시작했어요.
실패는 끝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 아픔이, 이 후회가, 이 좌절감이 결국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걸요.
무지에서 비롯된 과욕. 그것이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어요. 책으로만, 영상으로만 본 지식이 전부가 아니었던 거죠. 현장의 온도, 사람들의 심리, 시장의 흐름... 이 모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경험해야 했는데, 저는 너무 성급했어요.
지금 이 글을 쓰며, 창밖의 파리 하늘을 바라봅니다. 회색빛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비치고 있어요. 마치 제 마음속에도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지만 무모하지도 마세요.
욕심은 독약이 될 수 있지만, 배움의 열정은 날개가 될 수 있어요.
천천히, 신중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세요.
저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더 현명하게, 더 신중하게요. 이번 실패가 제게 준 교훈은 어떤 성공보다도 값진 것이었으니까요.
여러분도 저의 이야기에서 작은 위안이라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때로는 넘어지지만,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용기잖아요.
50대 중반, 파리의 유학생. 아직 늦지 않았다고, 저는 제 자신에게 속삭입니다.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엔 제대로."
여러분의 인생도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하길,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배움을 찾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파리의 작은 방에서, 따뜻한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