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2. 집으로 돌아온 밤
문이 열렸다.
거실에 TV만 켜져 있었다.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화면의 파란 빛이 거실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막내딸 수진이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경자를 봤다. 얼굴에 노트북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응, 수진아."
신발을 벗었다. 코트를 걸었다. 가방을 내려놓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아빠는?"
"벌써 주무세요."
경자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엄마, 어디 갔다 오셨어요?"
수진이 노트북을 접으며 물었다. 경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응... 사실 서울 갔다 왔어. 집 하나 봤어."
"집이요? 무슨 집?"
"오피스텔. 아주 좋더라."
경자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기차 안에서 노트에 적었던 장점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강이 보이는 것, 역세권인 것, 깨끗한 것. 말을 하는 동안 피로가 잠시 잊혔다.
"그런 곳에 작은 오피라도 하나 있으면... 엄마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
잠시 멈췄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민준이는 양재 전세 보증금이 부족하다 하고, 민수는 분당 월세가 부담스럽다 하더라."
경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애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줘야 하는데..."
침묵이 흘렀다.
"엄마..."
"응?"
"그럼 엄마는 그 집 정말 하고 싶으세요?"
수진이 엄마를 봤다. 걱정과 궁금함이 섞인 눈빛이었다.
경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다. 그런데 돈이 많이 필요해. 삼천칠백 정도."
"아..."
수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진아, 그런데 말이야."
"응?"
"전세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나중에 월세로 전환해서 2년마다 5%씩 올린다면... 대충 얼마나 될까?"
수진이 핸드폰을 꺼냈다. 계산기 앱을 열었다. 아까까지 노트북을 하던 손가락이 이번에는 계산기 위를 움직였다. 똑. 똑.
"보증금 1억 9천에... 월세로 전환하면..."
똑. 똑. 똑.
"한 달에 70에서 80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걸 5%씩 올리면... 2년 후엔 75, 4년 후엔 80..."
경자는 수진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는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틀리지 않을까 불안한데, 이 아이는 거침이 없었다.
"8년 후면 한 달에 90만 원 정도요."
90만 원.
경자의 등이 소파에서 떨어졌다.
"90이면... 나쁘지 않은 거 아니야?"
"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수진은 그렇게 말했다. 스무 살의 계산이었다. 보증금 1억 9천을 월세로 전환하면 70~80만 원, 거기서 5%씩 올리면 8년 뒤에 90만 원. 깔끔한 숫자. 단순한 산수.
하지만 경자도 수진도 몰랐다. 5%가 2년에 한 번 올릴 수 있는 상한선이라는 것을.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때 보증금이 먼저 줄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계산이 실제로는 한 달에 3만 9천 원이라는 숫자로 돌아온다는 것을.
그건 아직 아무도 몰랐다.
"고마워. 넌 이제 들어가서 쉬어."
"엄마도 푹 쉬세요."
수진이 노트북을 안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깍.
거실에 경자만 남았다.
TV를 껐다. 조용해졌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거렸다.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9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출 이자를 내고도 남는 돈. 남편 월급에 보탬이 되는 돈.
벽시계를 봤다. 밤 11시.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정이 지났다. 새벽 1시. 2시.
일어나 안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남편이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침대 한쪽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남편은 일찍 나갔다. 등산 간다고 했다. 현관에서 등산화 끈을 묶으며 경자를 한번 봤다. 뭔가 묻고 싶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경자도 말하지 않았다. 대문이 닫혔다.
경자는 밀린 집안일을 했다. 빨래를 돌렸다. 걸었다. 설거지를 했다. 화장실을 닦았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은 생각을 안 해도 됐다. 하지만 손이 멈추면 머릿속에 숫자가 돌아왔다. 90만 원. 3,700만 원. 5%.
점심을 대충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유튜브를 열었다.
'부동산 투자 성공 전략' '주택임대사업자 완벽 가이드' '오피스텔 투자 수익률 분석'
구독한 채널들이었다. 한 영상, 두 영상, 세 영상. 영상 속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수도권 오피스텔은 무조건 오릅니다.' '임대사업자 등록하면 세금 혜택이 엄청납니다.' 경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한 영상이 끝나면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없음. 조영달이 말했다. 매도인과 통화한 뒤 일주일 안에 연락을 주겠다고. 아직 이틀밖에 안 됐다. 하지만 핸드폰을 내려놓은 뒤에도 자꾸 화면을 들여다봤다.
해가 기울었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본 걸까. 허리가 뻣뻣했다.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현관문이 열렸다. 남편이 돌아왔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 있었다. 등산 갔다 오면 늘 그랬다. 막걸리를 한잔 했나. "밥 먹었어?" "응." 그게 전부였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간 뒤, 경자는 노트북을 덮었다. 하루 종일 봤다. 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옆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부동산 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었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문장들이 보였다. '수도권 오피스텔 투자의 핵심은 입지다.' '월세 수익률 4% 이상이면 안정적이다.'
경자는 그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다시 읽었다. 입지. 수익률. 안정적.
조영달도 같은 말을 했다. 유튜브도 같은 말을 했다. 책도 같은 말을 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남편만 다른 말을 할까.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이 어둡게 보였다. 한강뷰. 역세권. 수익률 4%. 숫자들과 단어들이 천장 위를 떠다녔다.
경자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 슈퍼마켓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하루를 보낸 뒤에도, 이 숫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