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 제발 !- 파리 지하철에서 목격한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하여
지금은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제, 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목격했다. 50년 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눈으로, 바로 내 옆에서. 영화도 아니고 뉴스도 아닌, 살아 있는 현실 속에서.
파리 지하철 8호선, 콩코드역.
나와 딸은 8호선 지하철에 올라탔다. 막 탔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차에 문제가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방송이었다. 그 짧은 몇 분 사이에, 나는 이 가슴 아픈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다.
맞은편 플랫폼에 동양인 여성이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기보다는 거의 90도, 아니 그 이상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앞뒤로 흔들면서.
처음에 나는 생각했다. 저 여자, 뭐 하고 있는 걸까? 술에 취한 건가? 마약을 한 건가? 아무도 그녀 곁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별생각 없이 그녀의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 여자는 한 번 허리를 펴더니, 멀리 기차가 오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꺾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배를 만지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술도 취하고, 배도 아프고, 그래서 저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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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맞은편에서 지하철이 다가왔다.
파리 지하철은 앞부분이 파란색이다. 그 파란색이 내 시야에 들어오려는 찰나, 갑자기 그 여자가 몸을 날렸다. 아주 날렵하게. 한 마리의 새처럼. 작은 고양이가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렸다가 튀어 오르듯이, 기차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바로 그 순간에 맞춰서.
휙.
정말 말 그대로, '휙'하고 몸을 날렸다. 그렇게 연약하고 가녀려 보이던 여자에게서 어디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몸짓으로. 마치 철저하게 시간을 계산한 사람처럼,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에 정확히 맞춰서.
기차와 부딪히는 소리. '찍'하는 둔탁한 충격음. 기차는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한참을 앞으로 밀려간 뒤에야 멈췄다.
그 순간, 어디선가 여자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아—' 하는 소리.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악!' 하며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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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기차가 급정거하는 '찌이익' 소리,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탄성을 들으며 내게로 왔다.
"엄마, 무슨 일이야?"
내가 탄 지하철에서도 방송이 나왔다. 이 기차는 더 이상 운행할 수 없으니 다른 기차로 갈아타라는 안내였다. 양쪽 기차 모두 멈추고, 모든 승객이 내리고, 모든 칸의 문이 닫혔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나처럼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변에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느라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정신없이 딸에게 방금 목격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딸은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어떡해. 악몽에 시달리면 어떡하지. 우리 엄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도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읽었던 소설 속 한 장면처럼만 느껴질 뿐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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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자꾸 그 여성이 떠올랐다.
왜 자살을 했을까?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주 작고 마른 여성. 검은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고개를 90도 이상 숙인 채 좌우로, 앞뒤로 몸을 흔들던 여성. 실연당했나? 인종차별을 당했나? 성폭행을 당했나? 왕따를 당했나? 직장을 잃었나?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어쩌다가, 대체 어쩌다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듣는다. 돈과 명예가 다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그럴 때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깊이 생각하면, 오죽했으면, 얼마나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많았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는가 하는 공감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내 눈으로, 가까이서, 바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목격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삶의 끈을 놓아버린, 이름 모를 여성. 한동안 멍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행히 딸이 곁에 있어서, 계속 말을 걸어주었고, 나도 그 이야기를 계속 꺼내놓았더니, 충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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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자살'이라는 사건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살하지 말라고,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고, 소망을 품고, 살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래도 '죽자'가 아니라 '살자'로 바꾸자고. '자살(自殺)'이 아니라 '자활(自活)'로 가자고.
물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내 처지를 알아?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봤어? 당신이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알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아니 나도 힘들 때가 정말 많다. 살아내기 위해서 나도 끊임없이 내 내면의 어둠의 소리와 싸우고 있다. 인간이기에 좌절, 절망, 열등감, 자학을 왜 못 느끼겠는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는, 인생의 진정한 맛을 모른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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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삶이 맛있다"라고.
파인 다이닝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집에서 흔하게 끓여 먹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의 맛은 삶에도 있지 않을까? 내게 주어진 소중한 24시간, 하루, 그리고 몇 십 년이라는 세월. 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물이란 말인가.
이런 말이 있다.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하루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군가에게, 병실 침대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누군가에게, 오늘 이 하루는 간절히 바라던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물을 너무 쉽게,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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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거의 매일 듣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까?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누군가와 대화하며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닐까.
들으면 내 문제 같고, 내 고민 같고, 내 해답을 찾는 것 같아서 남녀노소 모두가 시청한다. 그만큼 모든 사람이 삶을 고민하고 있고,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뜻 아닐까. 아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는 없다.
김창옥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사랑받아도 모자라요." — 김창옥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해답을 잘 모른다. 다만, 나는 내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내 삶을 소중하다고 여기며, 늘 내 자신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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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한 생명체로 태어났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우리 한국어에는 '죽다' 대신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곳이 천국이든, 다음 생이든.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에, 나를 가치 있게 여기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 나태주, 「풀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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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사처럼 강연할 수 없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이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의 삶은 소중합니다. 가치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멋진 삶을 만들고자 작은 노력이라도 매일 하면서 살아갑시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이 아주 많을지라도, 당신의 생명은, 당신의 삶은 가치 있고 소중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 있는 동안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든— 아름답게, 예쁘게, 사랑스럽게 가꾸어 갑시다.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을, 나를 기쁘게 하는 곳으로,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곳으로 만들어 갑시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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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지금, 힘드신 분이 계신다면
극단적 시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그 문제를 해결할 수많은 방법이 떠올랐다"고.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참고: 정신건강 피어 인사이트, mentalhealthkorea.org)
김창옥 강사는 말한다. "감정은 눌러두면 병이 됩니다. 말해줘야 해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지금의 나, 괜찮은 사람입니다."
힘든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사계절이 돌듯, 삶에도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온다. 지금 힘드신 분이 있다면, 부디 혼자 견디지 마시길. 가까운 사람에게 한마디만 꺼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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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삶을 스스로 끊어버린 이름 모를 동양인 여성을 애도하며,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살아주세요. 제발.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댓글에 삶에 대한 한마디를 남겨주세요.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그 댓글을 보면서 작은 위로라도, 작은 희망이라도 갖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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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 윤동주(1917~1945), 「서시」 — 일제강점기 한국의 시인. 어둠 속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노래한 시.
•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 독일의 대문호. 고통을 겪어본 자만이 삶의 참맛을 안다는 메시지.
• 나태주(1945~ ), 「풀꽃 3」 — 대한민국 국민 시인.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대표 시.
• 김창옥 — 대한민국 대표 소통 강사. 자기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강연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하루이다" — 자살 예방 캠페인에서 널리 인용되는 명언.
• 자살 생존자 증언 — 정신건강 피어 인사이트(mentalhealthkorea.org)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