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자크와의 만남, 문학의 여정

비 오는 날의 발자크 탐방기

by Selly 정


12월 21일, 오늘은 프랑스의 유명한 고전 작가 발자크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촉촉하게 내리며,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습니다.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가, 또 갑자기 그쳤다가, 마치 날씨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하루였습니다. "이런 날씨에 누가 발자크의 집을 방문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고, 그 궁금증이 더욱 나를 자극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불어를 선택 과목으로 공부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등 2학년 때 처음 접한 불어는 마치 숨겨진 보물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불어를 가르친 선생님은 조금 엉뚱한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가끔 놀림을 당하시기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는 불어라는 언어에 푹 빠졌습니다. 영어와 불어, 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저는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자랑했죠. 말하기나 듣기는 신경 쓰지 않던 시절, 오직 읽기와 문법만으로도 즐거움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불문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프랑스 작가들은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그리고 오늘 방문한 발자크였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저는 불어와 프랑스 문학에 푹 빠져 살았던 것 같아요. 프랑스를 동경하며, 그곳의 작가들의 글을 읽고 생각하며 경탄하곤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며 불어와 프랑스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학원 강사로 일하며, 불어 교사라는 꿈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다른 꿈과 비전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대학 4학년 때는 프랑스 유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타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막상 가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아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당시 전 세계가 시끄러웠던 탓에, 프랑스도 위험한 상황이라 유학을 가면 안 되겠다는 핑계를 대며, 비자까지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30년이 흐른 뒤, 지금 유학생으로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책에서만 읽었던 작가의 집, 발자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빅토르 위고의 집에 방문했었고, 에밀 졸라의 집은 파리 외곽에 있어서 다음에 가기로 했습니다.


발자크 집에 도착하니, 역시나 아무도 없이 조용했습니다. "이런 날씨에 누가 발자크 집에 오겠어?"라며 매표소 안으로 들어갔죠. 박물관 티켓은 9유로였고, 생각보다 가격이 좀 비싼 편이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며 우산을 바쳐들고 발자크 집을 향해 아래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계단에서 바라본 발자크 집은 넉넉한 정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정원은 겨울이라서 퇴색하고 낡고 앙상한 갖가지 나무들과 다양한 시든 꽃들로 가득 차 있었고, 멀리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어 놀라움을 더했습니다. “발자크는 이런 크고 넓은 정원을 가졌구나!” 하고 감탄하며, 작가들이 대개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오래전 방문했던 빅토르 위고의 집도 마찬가지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었지요. 작가들은 깊은 사색을 통해 영감을 얻어야 하기에, 이러한 정원이 꼭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록색 지붕을 가진 발자크 집은 세련되면서도 소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발자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발자크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저처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사람만 알겠거니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아뿔싸,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 내부로 들어왔고, 제가 출입구를 향해 나아갈 즈음에도 가족 단위, 연인 단위로 많은 분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발자크가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걸출한 작가라는 것을 깨닫게 된 하루였습니다.


발자크의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집이었고, 여러 개의 방과 아담한 부엌, 그리고 발자크가 아마도 글을 집필했던 작은 서재가 있었습니다. 다른 많은 화가나 빅토르 위고처럼 3층까지 있거나 넓은 거실을 가진 화려한 집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발자크의 집은 곧 박물관이었습니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발자크 작가라는 이름만 기억속에 간직한 채 ,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의 사진과 석고상, 초상화를 보며 묘한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발자크라는 작가가 제 뇌리에 깊이 새겨진 존재가 된 이유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고, 그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왜 그의 이름이 평범한 한 소녀의 기억 속에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던 그 시절, 문학소녀가 과연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 그리고 파리에, 발자크의 집을 방문할 것이라고 작가는 단 1초라도 생각했을까요?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30년이 넘은 후에 파리에 아줌마 유학생으로 오게 될 거라는 꿈을 한 번이라도 꾸었을까요? 전혀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학 4학년 때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파리의 유학생이 되어 불어와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으니, 인생은 우리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주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한 섭리가 존재하는 걸까요?


발자크의 집과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살던 소박한 집을 둘러본 후 다시 정원을 돌아보았습니다. 정원에서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저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걸으며, 그때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던 젊은 문학도가 이제는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며 인생을 배우는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라움과 뭉클한 감동 속에 한동안 깊이 잠겼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보이는 모든 풍경과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마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20241221_150108.jpg
20241221_150917.jpg
20241221_150911.jpg
발자크와 그의 작품들
20241221_154522.jpg
20241221_154531.jpg
발자크의 서재와 그의 뮤즈
발자크 박물관의 내부 모습




발자크(Honoré de Balzac에 대해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프랑스 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그의 작품은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과 살아가는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발자크의 삶

발자크는 1799년 프랑스의 투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자랐지만,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파리로 이주한 후에는 법학과 문학을 공부했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그는 문학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고, 그 속에서 그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게 됩니다.


문학의 특징

발자크의 문학은 사실적인 묘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립니다. 그의 인물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그들의 갈등과 욕망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발자크는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을 비판하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는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고뇌를 세심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이 그들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작품 세계

발자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은 아버지의 희생과 두 딸의 이기심을 통해 사랑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고리오 영감의 애끓는 사랑과 그에 대한 딸들의 무관심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또한, "잃어버린 환상"(Illusions Perdues)에서는 젊은 작가가 문학과 현실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삶에서 겪는 좌절과 성장을 다루며,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줍니다.

발자크의 "인간의 비극"(La Comédie Humaine) 시리즈는 그의 문학 세계를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그들의 삶을 폭넓게 묘사합니다. 마치 한 편의 큰 그림처럼, 그의 소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자크의 유산

발자크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닙니다. 그는 현대 소설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레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많은 문학 거장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며, 그의 깊은 통찰력은 변함없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발자크의 문학은 우리에게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정을 함께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낯선 땅에서의 정착과 한국어 교사로 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