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과 함께한 7박 8일의 여행의 의미
큰 아들이 여자친구와 함께 파리에 왔다. 큰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은근히 내비치고 있었다. 어미인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못 들은 척, 전혀 알지 못한 척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원하는 아가씨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내면이 깊고, 지혜롭고, 현명하며 현숙한 여인을 나는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큰 아들의 부인이 될 여자상을 놓고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작년부터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살며,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성품인지, 큰 아들이 왜 그녀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들로부터 속마음을 내비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시각으로 선택한 여성이 과연 누구일까? 제대로 선택을 했을까? 정말 올바른 인성을 가진 여성일까? 온갖 고민과 염려로 마음이 한동안 심란한 시간을 보내었다.
아들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서로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고 했다. 하긴, 나이가 30대인데 결혼을 생각 안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아가씨는 아들보다 연상이다. 지금 시대에 나이는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만약 더 성숙하다면 아들을 알뜰살뜰 잘 섬겨줄 테니 더 좋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다.
큰 아들의 여자친구와 관련해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로서 최선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남편도 나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나름의 논리로 아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들의 마음은 이미 사귀고 있는 아가씨에게 99%까지 채워져 있었다. 나의 말은 별 설득력이나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아들에게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요즘 세상에 부모에게 순종할 자식이 있겠는가?
또한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반대할수록 서로 더 불붙게 되고, 올바른 판단력이 더 흐려질 수 있으니, 본인이 사귀면서 콩깍지가 벗겨지고, 서로가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는 말이 생각났고, 그 말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 뒤에서 묵묵히 기도를 했다. 아가씨든, 아들이든 서로가 현명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서로 객관적인 사실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은 아가씨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12월에 한국에서 아가씨 측 부모님을 찾아뵈었고, 그분들과 필리핀 여행까지 다녀왔다. 아가씨 측에서 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아무 생각도,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냥 담담할 뿐이었다. 아들의 선택에 대해 왈가불가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들의 결혼과 선택에 아무런 권리? 권한? 부모로서 당연시되어야 할 뭔가가 빠진, 전혀 행사할 수도 없는 현실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심정이었다. 결혼해도, 헤어져도 아들이 책임지는 상황으로 만들고 싶었다. 부모의 간섭으로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을 나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담담하고 묵언으로 시간을 보낸 후 25일에 아들과 여자친구는 파리에 왔다. 내 나이가 자녀를 결혼시킬 나이는 되었다고 인정은 하지만, 아들이 막상 결혼한다고 여자친구를 데려오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시어머니가 될 나이가 되었단 말인가? 벌써 그렇게 내가 나이를 먹었나? 물론 나보다 많이 낮은 분들 중에서도 벌써 아들을 장가보낸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오히려 늦은 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 정말 어색했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미국에서 멀리 파리까지 와준 손님으로서도 반갑게 맞이하는 게 상식 아니겠는가? 사람 됨됨이는 천천히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큰 아들과 여자친구 그리고 우리 가족과의 6박 7일의 파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25일,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집에서 간단하게 한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비행시간과 시차 적응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아들이 미리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아들과의 파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25일부터는 딸이 관광 가이드가 되어 우리의 파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콩코드 광장에서 펼쳐진 마르쉐 노엘의 화려한 조명과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내 시선은 환상적인 광경 속에서도 큰 아들의 모습으로 자꾸만 쏠렸다. 아들이 여자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 1년 만에 만난 엄마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괜히 신경이 쓰였다. 콩코드 광장에서 튈르리 공원,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야경까지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아들은 열심히 여자친구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1년 전 파리에 와서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여자친구를 배려하고 섬기고 있었다.
다음날, 26일 아침, 우리는 푹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아들과 여자친구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저녁에는 에펠탑을 방문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계단을 선택한 나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에펠탑 2층까지 올라갔다. 1년 전, 파리에 와서 내 곁에서 엄마를 부추이며 함께 걸어주었던 아들은 이제 여자친구에게로 가버렸다. 에펠탑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 외에는 아들은 줄곧 여자친구와 함께했다. 내 곁에서 점점 멀어지는 아들의 모습에, 모든 시간의 초점이 여자친구에게 맞춰져 있었다. 당연한 모습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서운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둘이서 오붓하게 파리 여행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흐뭇함과 서운함, 씁쓸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27일,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미리 티켓을 예매하지 못해 궁전 내부는 돌아보지 못하고 정원만 프리 트랭을 타고 돌아보기로 했다. 프티 프랭의 인원수가 4명이라서 두 아들과 여자친구만 정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 순간, 1년 전 큰 아들과 나, 그리고 딸과 함께 프띠 트랭을 타고 호호 하하 웃으며 정원 한 바퀴를 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추억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이제는 아들 옆에 언제나 그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이것이 점점 아들과의 이별인가? 정말 아들은 이제 떠나보내야 할 손님이 되었는가? 내게 온 선물 같은 손님이 되어 30년 동안 잘 섬겨주고 돌보아 주었으니, 이제 떠나보내야 할 손님으로서 잘 가도록 ‘안녕’을 빌어주어야 하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불쑥불쑥 내게 찾아왔다.
다음날, 우리는 렌터카를 빌려 파리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몽생미셸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카인 도시에 들러 오래된 성곽을 탐방했다. 29일에는 바토 무시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따라 파리를 구경했다. 날씨가 추워서 차가운 바람을 피해 나는 배 안에 있었다. 아들과 여자친구는 매우 행복한 파리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가방을 하나 메고 열심히 여자친구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시라도 엄마 곁에 머무르지 않고 여자친구 곁에서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 모습이 영 못마땅했다. 꼭 저렇게까지 열심히 아이를 보살피듯 섬겨주어야 하는가? 엄마와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마저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나와는 달랐다. 아들이 가족이 있고, 여자친구는 가족이 없는데, 그럼 그녀는 누가 챙겨주겠는가? 당연히 아들이 챙겨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차 며느리가 될지도 모를 아가씨와 시어머니가 될 나는 서로 나눌 대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둘이서 여행 온 것처럼 그렇게 매시간마다 꼭 붙어 있으니, 내가 아가씨랑 이야기할 틈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아가씨에게도 엄마로서, 또 장차 시어머니가 될 분으로서 할 얘기가 있는데, 그런 눈치도 없이 계속 둘이 여행만 하고 있으니, 은근히 아들에게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파리 여행에서 아들과 여자친구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아들과의 파리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30일이 되자, 큰 아들이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감정도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하나씩 엄마의 생각을 말해야겠다고. 큰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엄마 생각은 이렇다." 그리고 내가 아가씨와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니, 너는 동생들도 챙기고, 동생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눈치껏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내가 여자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30일, 몽마르트르 언덕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거닐고, 노트르담 성당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한 후,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의도적으로 아가씨와 이야기할 상황을 만들었다. 걸으면서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었지만, 큰 아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아들이 여동생을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 그의 시선은 오직 나와 이야기하며 걷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쏠려 있었다. 그 모습은 엄마인 내게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꼭 저렇게 해야 하나?" 아들 마음속에는 여동생도, 엄마도 없단 말인가?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가? 온통 여자친구에게만 마음이 쏠려 있고, 가족은 아들 마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저렇게 엄마를 믿지 못하는가? 엄마가 여자친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여행을 함께 오라는 말도 안 했을 텐데. 벌써부터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팔불출’이 되어버린다면, 장가 간 이후에는 과연 어떻게 되어갈까?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맛있는 프렌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1월 1일에 돌아갈 큰 아들은 31일은 자신들만의 시간을 온전히 갖고 싶다고 했다. 쇼핑도 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밤, 12월 31일 밤에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7박 8일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31일,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 후 저녁 식사를 한식으로 마무리 짓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가는 잠깐 동안 다시 한번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장차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아가씨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함께 차를 마시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지 못해 조금 아쉬운 만남이 되었다. 아들은 무슨 할 얘기가 더 있냐고 했지만, 장차 우리 집안에 낯선 사람이 새 가족으로 들어오는데 어찌 시어머니로서 할 얘기가 없단 말이겠는가?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무조건 응원해 주는 것이 엄마로서의 역할이란 말인가?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아들이 장가를 간다는 것이 이렇게 복잡 미묘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둘이 만나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직 장가가기 전인데, 아직 시집오기 전인데, 아직 둘이 살기 전인데, 당연히 엄마로서 할 얘기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끝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1월 1일, 공항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허기진 아침밥을 햄버거로 때우고, 그들은 나와 동생에게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그리고 ‘미국에 잘 도착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은 1월 2일이다. 어제 아들은 갔고, 나는 그 허전함을 채우고자 영화관을 찾았으나, 영화관마저 1월 1일 신년이라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6일간의 여행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내 마음속에는 이런 외침이 울렸다. ‘자녀는 귀한 손님이다. 손님이기에 정성껏 잘 모시다가, 때가 되면 손님은 갈 때가 온다. 손님이기에 반드시 갈 때가 온다. 그때까지 잘 배웅해 드리면 된다’라는 어느 작가의 문장이 내 뇌리 속에서,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아가씨에 대한 이미지를 떠나서, 나는 엄마로서, 그리고 시어머니가 될 미래의 나로서 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들 옆에 아무도 없을 때의 모습과 1년 후에 장차 아내가 될 여자친구가 있을 때의 아들은 180도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7박 8일 동안 아들은 엄마와 단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았다 내가 의도적으로 만든 시간 외에는 오직 둘만의 여행을 온 것과 같은 시간들을 내 앞에서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마저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여자친구의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엄마인 내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시어머니의 모습일까? 여기에 온 이유는 파리 여행도 목적이겠지만, 엄마와 여자친구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밤을 집에서 한 해를 떠나보내는 송년의 시간으로 보내면서, 그리고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부디 좋은 인연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빌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고 기르는 동안은 더욱더 부모를, 동생들을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가 없겠지만, 나중에 부모가 늙고 본인이 부모의 나이가 되면 그때는 부모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겠지!라는 위로가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리고 감사하기로 결심한 마음이 나를 조금씩 평온하게 했다.
7박 8일간의 큰 아들과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음을 접는 시간으로, 아들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깨달으면서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제는 축복해 줘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나의 삶을 구축해 가야겠다고 더욱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아, 이것이 인생이구나, 이것이 한 인간의 삶의 사이클이구나! 하는 철학 같은 진리도 깨달았다. 동시에 현재 살아계신 부모님의 마음도 예전보다 훨씬 더 깊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정말로 한 인간으로서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나 봅니다. 어른이 되어가고, 성숙한 참된 부모가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때론 손님이고, 때론 부모이며, 그리고 때론 한 가정의 가족구성원이기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