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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져보기

물이 주는 편안함과 기쁨

by Selly 정


맑고 깨끗한 손가락들은 공중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살살살하게 손을 휘젓어서 물기를 공중과 사방으로 퉁겨 내보냅니다. 타월의 보드라운 촉감이 물기를 하나 둘씩 앗아갑니다. 기분좋은 행복감으로 충만한 순간입니다.

물의 흐름을 느끼며 수도꼭지를 틀면, 차가운 물이 손끝에 닿아옵니다. 그 차가움은 손가락 마디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전신으로 퍼져나갑니다. 계속해서 물을 틀어놓으니, 차가운 감각은 점차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겨울의 물은 단순히 시원함을 넘어, 내 몸을 차갑게 감싸옵니다. 얼른 따뜻한 물로 바꾸기 위해 수도꼭지를 돌립니다.

서서히 따뜻한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손은 더 이상 물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점차 세게 흐르는 물의 감촉을 즐기게 됩니다. 미지근하고 따스한 물속에서 손을 뽀드득거리며, 손가락끼리 힘을 주어 끌어안기도 하고, 오른손가락들을 왼손의 엄지와 검지가 만든 작은 구멍에 넣고 둥글둥글 이리저리 굴립니다. 왼손가락들을 오른쪽 엄지와 검지 사이의 구멍에 넣고 요리조리 빙글빙글 돌리며 물과 함께 장난을 칩니다. 물속에서 놀고 있는 손가락들은 점점 맑고 깨끗해지며 윤기가 납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손가락들이 따스한 물속에서 신나게 놀고 나면 맑고 깨끗한 손가락들은 공중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살살살하게 손을 휘젓어서 물기를 공중과 사방으로 퉁겨 내보냅니다. 타월의 보드라운 촉감이 물기를 하나 둘씩 앗아갑니다. 기분좋은 행복감으로 충만한 순간입니다.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렬한 물줄기는 몸의 마디마디의 감각을 깨우고, 아늑함 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하나둘씩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활동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물이 주는 느낌, 쏴아아, 쌔에에, 쓰으윽 물줄기들이 내는 소리는 온몸의 혈과 기관들을 조금씩 꿈틀거리게 하며 춤을 추게 합니다. 몇 십 분 동안 그렇게 따가운 물속에서 나른함과 피곤함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껌벅 껌벅 무거운 눈꺼풀은 어느새 초롱한 눈망울로 바뀌어 있습니다. 정신은 맑아지고, 잠이 올 것 같던 기분은 멀리 달아나버립니다.

저는 유독 물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주저 없이 "사우나에 가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씻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물속에 있는 것, 희미한 안개가 낀 공간에서 살금살금 피부에 닿는 촉촉한 물기의 머무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미지근한 물이 주는 편안함과 물이 만들어내는 피부의 맑고 청명함, 뽀시시함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기분좋은 편안함으로 젖어듭니다.


하지만 이곳 파리에는 한국형 찜질방도 사우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부유한 사람들만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고급스러운 사우나만 존재합니다. 파리에서 오랜 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온천이 있지만, 4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사우나처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낙은 집에서 온수를 위로 틀어놓고 그 아래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물속에 푹 몸을 담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할 수 있는 집과 할 수 없는 집이 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한없이 나오는 구조를 가진 집은 그나마 마음껏 물과 함께 물속에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통을 부엌이나 욕실에 달아놓고, 그 통에 든 물만을 사용해야 하는 주택에서는 그마저도 물이 주는 행복감을 누릴 수 없습니다. 3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물 걱정 없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 걱정 없이 저의 피로를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행복이, 그 유일했던 기쁨이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드럼통 같은 곳에서 뜨겁게 데워진 물이 다 쏟아진 후에는 얼음 같은 차가운 물이 삐질삐질 샤워기를 뚫고 나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움으로 몸의 감각을 굳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얼른 수도꼭지를 잠가버립니다.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드럼통 같은 물통을 바라봅니다. "더 큰 물통으로 바꿀 수 없나요?" 주인에게 물어보았지만, 더 큰 물통은 공장이나 제조업장에만 있지, 이런 주택에는 설치할 수 없다는 아쉬운 소리만 돌아옵니다. 이제는 포기하고 그저 저 작은 물통을 어떻게 잘 가지고 놀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요령 있게, 한국형 사우나 같은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물과 재미있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통이 작아서 더 아까운 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물이 되었습니다. 마음껏, 내 마음대로 틀고, 붓고, 버리고, 흘려내버릴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분 좋게 하는,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지나가는 길마다 피부의 숨결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요상한 존재, 물! 물은 저에게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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