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성과 딸의 마음
남의 고통과 어려움을 대신할 수 없듯이, 위로도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다. 자기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은 다만 그것을 도울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몰랐었다.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첫째, 인정해준다. 당신은 그런 감정을 느낀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는 당신의 그런 감정을 존중한다. 당신은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다.
둘째, 지지해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내가 곁에 있어주겠다.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다.
셋째, 질문한다.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어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알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넷째, 들어준다.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감정을 풀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강원국 작가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중에서
강원국 작가의 '어른답게 말하다'를 읽고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 문장은 아픈 기억을 소환하며, '어른답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나이가 들어도 왜 어른답게, 성숙한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얼굴에 흰머리가 하나둘씩 자라나고, 검버섯이 피고, 잔주름이 늘어가는 모습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는데, 정작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성장과 발전이 없는 것 같다. 겉모습만 어른일 뿐, 내면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인 듯하다.
1년 반이 지났을까? 그 일이 벌써 1년이 넘었다니!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부끄럽고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한글학교에서 김치 만드는 수업이 있는 날, 불어 말하기에 자신감이 없던 나는 딸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한국어로 말하면 바로 불어로 통역해 달라"며 딸에게 협박하듯 부탁했다. 시간이 없다고 거절한 딸을 달래고 설득해 김치 수업 날 함께 데려갔다.
김치 재료를 모두 준비하고, 프랑스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모두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맛있는 한국 김치를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프랑스 주부들이었다.
김치 만드는 수업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딸을 믿고 한국어로 설명을 시작했지만, 딸은 내 속도에 맞춰 불어로 통역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치 재료 중 멸치 액젓, 고추가루, 소금 몇 그램, 손가락으로 한두 꼬집, 생강을 다지다, 마늘은 이 정도 다져야 한다는 용어들은 딸이 미처 공부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딸이 통역을 못하자 점점 답답함이 밀려왔다. 쉬운 프랑스어로 손짓을 해가며 대충 설명을 하였고, 그런 나의 모습과 딸의 진땀 나는 통역을 본 협회장도 가까이 다가와 본인이 불어로 통역해주셨다. 결국 김치 수업의 통역은 나와 협회장이 알아서 하게 되었다.
통역을 위해 따라온 딸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내 곁에 서 있었다. 간간히 어쩌다 한 마디씩 통역을 해야 할 뿐이었다.
김치 수업이 끝나고, 프랑스 주부들은 각자의 몫의 김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실을 깨끗이 정리한 후 협회장은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자, 딸은 울먹이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왜 엄마는 내 심정을 모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왜 항상 남의 편만 드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울먹이는 딸의 모습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언제 남의 편을 들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속사포처럼 딸에게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남의 편이었냐? 너 때문에 얼마나 답답한 줄 아느냐? 그리고 얼마나 챙피했는 줄 아느냐? 왜 이렇게 통역을 못했냐?" 등등, 딸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지만, 딸은 화가 나고 속상한 듯 울면서 하소연을 계속했다.
"엄마는 항상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남의 편만 든다.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엄마는 관심도 없다.
아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는 정말 알아? 왜 나를 데려와서 챙피하게 만들었어?.
" 협회장님이 말할 때 엄마는 내 입장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왜 나를 챙피하게 만들어!."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딸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던진 한 마디는 "엄마는 진짜 내 엄마 맞아?"였다.
그 순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자존심이 상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딸이 우는 이유도, 나에게 화내는 이유도, 딸의 심정도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실적인 상황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설명을 이어갔다.
기차는 빠르게 달리며, 두 사람의 마음은 멀어져만 갔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차는 파리로 향해 계속해서 달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기며 반성하게 되었다.
딸도 그 상황에서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불어 통역사로서 자신이 왔지만, 한 마디씩만 하고 엄마나 다른 분들이 유창하게 통역해버리니, 얼마나 자의식이 강했을까? 그런 딸의 입장과 마음을 엄마는 전혀 헤아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협회장과 짝을 이루어 자신을 폄하하는 말을 하니, 딸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딸이 하소연할 때, 서운한 감정을 쏟아낼 때, "내가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옳고 그름을 설명할 것이 아니라,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나는 네 편이다"라고 지지해주기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챙피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는 말에 "그래겠구나!"라고 인정해주면 되었을 텐데.
울며 하소연할 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가르치려 하고, 설득하려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했던 것이 딸을 더 울부짖게 하고, 나에 대한 분노를 키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딸의 고통과 어려움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고, 위로도 엄마가 대신해줄 수 없다.
딸 자신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딸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타인은 도움을 줄 뿐이다. 엄마는 그저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 당시 딸의 심정과 상황을 인정해주고, 딸의 편이라고 지지해주며, 그 상황에서 어떤 심정이었는지 진심으로 질문하고, 딸이 모든 속마음과 현재의 감정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가만히 들어주었어야 했다. 이것이 어른답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것이 다행스럽다. 말하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앎이 잔소리가 되니, 이 또한 슬픈 일이다.
흰머리와 새치, 기미와 검버섯들이 나의 나이듦을 알려주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