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은 대추와 인형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신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제삿날로, 새벽부터 일어나신 엄마는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음식을 만든다. 길고 하얀 면 앞치마는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언제나 그 옷을 걸치고 계셨다.
엄마는 커다란 사과와 배, 맛있어 보이는 떡과 각종 부침개를 준비한다.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무침에서 나오는 고소한 향기는 내 배를 꼬르륵거리게 할 만큼 유혹적이다. 하루 종일 지지고 볶는 음식 냄새는 집 전체를 구수함으로 가득 채우고, 이웃들은 오늘 이 집에 무슨 날인가 궁금해한다.
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로, 우리 집에서는 넘쳐나는 음식이 차려진다. 과일은 크고 신선하며, 이날은 온갖 과일을 실컷 먹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유독 이날을 좋아했다. 제사라는 슬픈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에게는 오히려 행복한 날로 다가왔다.
7월 4일 저녁, 푸짐한 임금님의 수라상 부럽지 않는 제사상이 한밤중에 차려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다 써본다. 12시 땡!에 맞춰 제사음식이 치러지고, 말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만의 제사 의식을 치른 후, 거의 새벽 1시에 가까워서 제사상에서 음식들이 하나씩 내려간다. 할아버지 사진을 앞에 두고 온 가족이 모여 한밤중 식사를 나눈다.
무거운 눈꺼풀 속에서도 엄마의 수고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참으로 맛있고 행복하다. 매일 제사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빌고 싶을 정도다.
이때마다 엄마는 특별한 음식을 내게 주신다. 설탕이 살짝 묻어 있는 빨갛고 토실한 대추다. 오직 나에게만 엄마는 이 대추를 주신다. 언제부터 대추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엄마가 유독 나에게만 주셨는지 그 기억은 없다. 필자는 7형제 중 다섯째로, 엄마가 다른 형제들에게 대추를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제사날이든, 추석이든, 설날이든 대추가 상에 오르는 날에는 항상 설탕에 조려진 빨간 대추가 필자의 차지가 되었다. 엄마는 그 대추를 필자의 앞에 가져다 놓으셨고,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정씨 집안의 하나의 가풍처럼 대추는 막내딸의 것이 되었고, 그 딸은 엄마가 주는 설탕조림 대추를 귀한 선물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맛있게 먹곤 했다.
시골 집 앞 마당에는 가지들이 휘어지도록 대추가 열린 나무가 있었다. 크고 윤기 나는 토실한 대추들이 매년 열리곤 했다. 대추가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할 때부터 나무에 손을 뻗어 폴짝거리며 대추 하나를 따서 미리 맛보았다. 떫은 맛이 나는 대추는 입밖으로 퉤퉤 뱉어냈다. 언제쯤 대추가 익을까?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휘어진 나무들 사이에서 작고 단단한 빨간 열매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 익은 대추들이 온통 그 나무에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날부터 대추 서리가 시작된다. 손이 닿는 곳마다 빨갛고 초록, 노랑이 섞인 대추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엄마의 호통소리가 들릴 때마다 잠깐 숨죽이던 서리짓도 다시 슬금슬금 깨어나, 손에 이르는 대추는 모조리 먹어치운다.
이럴 때부터였을까?
엄마는 알았을까? 내가 대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7남매 중에서 유독 저 가녀린 아이가 대추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채셨을까? 그래서 나에게만 대추를 주신 걸까? 제사 음식을 정신없이 준비하는 바쁜 손길 속에서도, 부엌을 기웃거리는 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부엌으로 데려가신 엄마는 내 입속에 대추 한 알을 넣어주신다. 입을 오물거리며 행복감으로 웃고 있는 딸아이에게 또 하나 대추를 손에 쥐어주고는 얼른 부엌에서 나가라고 나무란다. 보물 하나 찾은 듯이 대추 한 알을 손에 쥔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즐거워한다.
엄마의 대추 사랑은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해외 생활 중 명절에 한국에 들릴 때마다 계속되었다. 먹고 남은 대추는 다른 명절 음식과 함께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 주셨다. 해외 생활로 할아버지 제사날에 참석하지 못한 날을 제외한 모든 명절에 빠지지 않는 차례상 음식 중 하나가 된 그 대추는 항상 내 몫이 되어 명절의 남은 음식과 함께 내 냉장고 한켠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대추는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 표현이었다. 엄마가 치매가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부모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고 사는 것이 아마도 더 자연스러운 시대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부모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길렀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가 되고,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하나둘씩 제 짝을 찾아갈 나이가 되어가니 나는 점점 철이 들어간다. 부모의 마음을 해가 갈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사랑한다는 고백 대신, 엄마는 막내 딸이 좋아하는 대추를 챙겨주심으로써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대추 한 알!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대추 또 한 알!은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알지?’
“이 대추 가져가서 냉장고에 넣고 먹어!”는 ‘엄마는 너를 사랑해!’라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나는 엄마가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사랑을 안다. 그리고 느낀다. 부모와 자식 간에 굳이 말로서 ‘사랑한다’고 고백할 필요는 없다. 말없이 건네주는 부모의 챙김이 곧 ‘사랑해’라는 고백이니까.
이제 더 이상 대추를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다. 엄마는 집에 계시지 않고, 시골 집에도 계시지 않다. 대퇴부를 다치신 이후에 엄마는 지금 방문 예약을 해야만 하는 장소에 계신다. 전화도 할 수 없다. 엄마는 정신이 흐려진 이후에도 막내딸을 알아보신다. 그리고 항상 같은 말을 하신다. “미국에서 언제 왔어?”
엄마에게 나는 저 멀리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토록 사랑받는 딸이 그녀의 노년에라도 남들에게 으스대며 자랑할 수 있는 효녀 딸이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해외 생활 속에서도 대추를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다행히도 대추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파리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대추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비록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흰 설탕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대추는 아닐지라도, 짙붉게 익은 대추를 사서 오독오독 씹는 순간, 잊지 못할 옛 추억들이 마음속에 피어오른다.
대추를 대충 뭉툭하게 썰어서 생강과 함께 오랫동안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여 차로 마신다. 엄마의 사랑을 마신다. 달달한 향기가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엄마의 사랑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오늘 대추차가 몹시 그립다. 엄마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오늘은 대추를 사러 가야겠다. 딸에게 엄마인 나를 추억할 수 있는 ‘대추’를 하나 만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대추차를 마시며 느꼈던 따뜻한 감정이 딸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득,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여행지에서 사준 예쁜 인형이 떠오른다. 그 인형은 3개의 나라를 거쳐 이사하는 동안에도 그녀가 소중히 간직한 특별한 존재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위로와 기쁨을 나누며, 우리 가족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대추가 엄마의 사랑을 상징하듯, 이 인형도 딸에게 나의 애정을 전달하는 특별한 것이기를 바란다.
이렇게 대추와 인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따뜻한 기억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