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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사의 튀니지 이야기 8

튀니지에서 한복 입고 추석맞이: 문화 교류와 따뜻한 추억

by Selly 정



특별한 날을 위한 준비


튀니지의 뜨거운 햇살이 교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날,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와글와글 울려 퍼졌다. 한국의 추석 명절을 맞아 한복을 입어볼 거라는 소식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몇 주 전부터 공지했던 특별한 날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한국의 명절 음식을 맛보고, 고운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을 사진에 담을 거라는 말에 학생들은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기대감이 교실 안에 소복소복 쌓여갔다. 이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한복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 한국 음식을 요리하는 일까지,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대사관에 연락해 학교 수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한복 대여 가능 여부를 꼼꼼히 체크했다. 최대한 많은 한복을 확보해야 했다. 튀니지에 거주하는 교민들 중 한복을 소지한 이가 거의 없었고, 교실에 비치된 한복도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용 다섯 벌, 남성용 한 벌. 이것으로는 도저히 부족했다. 평소 결석이 잦던 학생들도 이날만큼은 꼭 참석할 터였다.



한복과 한국 문화 체험


며칠 전부터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고 동료 한국어 선생님에게도 문의를 한다. 다행히 대사관에 비치된 한복이 여러 벌 있다는 소식에 한숨을 돌린다. 이제 음식 준비로 마음이 분주해진다. 국물 있는 음식은 배제하고, 학생들에게 친숙할 만한 메뉴를 고민한다. 딸의 도움을 받아 김밥, 잡채, 새 김치, 그리고 호박, 당근, 감자를 넣은 부침개를 정성스레 만든다. 송편과 떡은 구할 수 없어 아쉽지만, 튀니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수업 시간, 추석의 의미와 유래, 전통 놀이, 음식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학생들의 관심이 한복에 쏠려 있음을 알면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다행히 학생들도 진지한 눈빛으로 귀 기울여 준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수업 시간이 다르기에, 일주일에 세 번 이 모든 준비를 반복한다. 한복 입어보기도 각 학년별로 진행하느라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낸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빛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발견할 때마다, 이 모든 수고가 값진 것임을 느낀다. 학생들의 설렘 가득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히잡을 쓴 얼굴에 화려한 화장을 하고 온 학생들과 히잡을 쓰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이슬람 국가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한복을 입는 순간,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옷고름을 매어주고 머리를 땋아주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여학생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한복을 입히고 머리를 매만진다.


히잡을 쓴 채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어색하지 않고 아름답다. 꽃신, 비녀, 노리개, 조바위, 첩지, 귀주머니 등 한복의 장신구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달아준다.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 인사법을 가르친다. 외국 학생들에게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의 명절 예법을 소개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여학생들이 한복 치마를 양쪽으로 잡고 천천히 앉아 절하는 모습, 다시 일어나 양손을 모아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드디어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교실을 나선다. 대학 캠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지나가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미소가 그들을 향한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한국어 교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책임감이 가슴 속에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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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나누기와 소중한 추억 만들기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인사법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은 후, 책상 위에 음식들을 펼쳐놓는다. 한국 음식에 대해 설명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학생들도 각자 집에서 가져온 튀니지 음식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쿠스쿠스 (Couscous, 튀니지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보통 고기, 야채, 소스와 함께 제공된다), 브릭 (Brik, 얇은 반죽에 다양한 재료(주로 계란, 감자, 허브 등)를 넣고 튀긴 음식), 하리사 (Harissa,매운 고추 소스로,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다),메카위 (Mhadjeb, 밀가루 반죽에 채소나 고기를 넣고 구운 전통적인 팬케이크),타진 (Tajine,고기, 야채, 향신료를 조리해 만든 전통 스튜로, 오븐에서 구워진 형태)을 가져온다. 먹고 남을 정도로 풍성하게 가져왔다. 튀니지 음식은 한국 사람의 입맛에 도 대체적으로 잘 맞는다. 특히 쿠스쿠스는 파리에서도 여전히 생각나고 먹고 싶은 음식이다. 학생들이 가져온 음식중에 처음에 낯설게 느껴졌던 음식은 튀니지 전통 수프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이는 '하리라'(Harira,주로 토마토, 렌즈콩, 병아리콩, 고기(주로 양고기나 소고기), 향신료(커민, 고수 등)가 들어간다)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권유로 시도해보니 의외로 맛있어 놀란다. 빵에 찍어 먹으며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 나의 이런 모습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다양한 튀니지 전통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 바클라바 (Baklava,얇은 반죽(필로 도우) 사이에 견과류와 꿀 시럽을 넣어 만든 달콤한 간식),마크루드 (Makroud,세몰리나 반죽을 사용해 견과류(대개 아몬드나 피스타치오)를 넣고 튀긴 후 꿀에 담가 만든 디저트), 부르끄 (Borghul,세몰리나와 설탕, 향신료를 섞어 만든 후 구워서 만든 전통 과자)등을 가져온다.

음식을 나누며 학생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든다. 그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교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렇게 한국 전통 명절 체험 수업은 끝을 맺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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