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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사의 튀니지 이야기 12

튀니지의 대학 축제, 문화의 융합과 소통의 장

by Selly 정

축제 초대와 도착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줍게 다가와 속삭였다. "선생님, 다음 주에 마누바 대학교에서 축제가 열려요. 꼭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튀니지 대학생들의 축제라니! 그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기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튀니지 학생들은 어떻게 대학 생활을 즐길까?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좋아! 꼭 갈게."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다음 주를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참여하고 싶었다.

드디어 축제 당일, 오후 5시가 되어갈 즈음, 학생이 해맑은 얼굴로 나타났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나섰다. 튀니지 사람들과 문화를 접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를 본 학생은 활짝 웃으며 "정말 잘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한국어 교실이 있는 경상대학교 건물을 나와 인문학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늘 익숙했던 한국어 교실, 경상대 건물만 오가던 나에게는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마누바 대학교가 이렇게 컸던가? 내가 사용하는 건물 외에도 학과별로 나뉜 건물들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었다. 학생들의 기숙사가 있는 곳 근처, 드넓은 광장에서 학교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 이름은 '인터내셔널 데이'. 학생들이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저마다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알록달록 화려한 의상들이 눈을 즐겁게 했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발걸음을 들뜨게 했다. 축제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대학 총장을 비롯한 모든 학과장들, 교수들이 참석하여 학생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저 분이 대학 총장님이시고, 저 분은 경상대학 학과장님, 저 분은 인문학과장님이세요."라며 아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비록 직접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튀니지 대학의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몇몇 외국인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이 "한국어 선생님이세요."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더욱 반색하며 양볼에 입을 맞추는 튀니지식 인사로 나를 환영했다. 그리고는 축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명당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마치 내가 갑자기 귀빈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들은 정말 나를 극진한 귀빈처럼 대해 주었다. 대학 총장이나 학과장들이 앉을 법한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 온갖 튀니지 음식과 달콤한 간식들을 산더미처럼 가져다주었다. "튀니지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 맛은 어떠세요? 혹시 좋아하시는 음식이 있으세요?" 끊임없이 질문하며, 불편함은 없는지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나와 함께 온 딸아이에게도 "선생님이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라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감동했다. 이렇게 튀니지 사람들에게, 학생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튀니지에서 한국 사람들은 인기가 좋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고, 한국 사람들을 친근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토록 뜨거운 환대를 받으니 솔직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축제를 즐기러 온 학생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교수들까지, 내 곁에 오면 어김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며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매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악수와 양볼의 키스를 주고받았다.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따뜻한 환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튀니지 사람들의 정(情)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축제의 밤이었다.


20170426_190526.jpg 축제 현장
20170426_191316.jpg 한복입은 학생들
20170426_214608.jpg 태권도 시범
20170426_221541.jpg 학생들과 추억




축제 경험과 한국 문화 소개

학과장의 힘찬 인사말과 함께 '인터내셔널 데이'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행사장은 마치 만화경을 펼쳐놓은 듯 형형색색의 전통 의상과 화려한 튀니지 문양의 장식들로 눈부셨다.

"와아, 정말 대단해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각국의 의상을 차려입은 학생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1년을 준비한 듯 학생들은 자신을 최대한 꾸미고 가꾸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자부심과 설렘이 빛났다.

행사장 한켠에서는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튀니지 전통 음식들이 방문객들을 유혹했다. 맛있는 소리와 함께 음식을 즐기며 축제의 분위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축제의 열기가 고조될 무렵, 무대에 한복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은 여학생들이 등장했다. "한국이에요!" 학생의 외침에 고개를 내밀어 무대를 주시했다. 비록 완벽한 한복은 아니었지만, 튀니지 땅에서 한복 패션쇼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어서 한 무리의 여성 그룹이 무대에 올랐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한국 걸그룹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래와 춤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절로 박수를 치게 되었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태권도 시범. 하얀 도복에 검은 띠를 맨 남녀 학생들의 날렵한 동작에 관중들은 탄성을 질렀다. 격파 소리와 함께 우렁찬 박수가 이어졌다. 태권도의 인기를 실감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솟아올랐다.

축제의 막이 내리자,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줍게 다가왔다. "선생님,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그들의 눈빛에서 설렘이 반짝였다. 기꺼이 응하며 물었다. "이 아름다운 한복은 어디서 구했나요?"

"직접 만들었어요!" 그들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유튜브와 인터넷 자료를 뒤적여가며 손수 만들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퓨전스러운 디자인이었지만, 그 열정만큼은 순수한 한복 못지않았다. 칭찬의 말이 연신 쏟아졌다.

"와, 정말 대단해요! 언제든 한국 문화나 한국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찾아오세요." 그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한복을 입고 한국을 소개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듬뿍 담긴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청했다.

"당연하죠! 제가 오히려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마누바 대학의 국제의 날 축제는 화려한 불꽃놀이로 대미를 장식했다.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축제 이후의 감상과 튀니지에 대한 애정

축제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행사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아쉬움으로 무거웠다. 딸과 함께 노란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밤거리는 한산해 4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튀니지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마누바 대학교의 '인터내셔널 데이'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문화의 융합과 소통의 장이었다. 이국적인 튀니지의 밤하늘 아래, 세계 각국의 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가슴 속에는 튀니지 학생들의 열정과 환대, 그리고 한국 문화의 위상을 확인한 뿌듯함이 가득 채워졌다. 이 특별한 밤의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을 것 같았다.

학생들의 초청으로 참석한 마누바 대학의 축제는 튀니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튀니지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파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 소박하고 순박한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튀니지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이곳에서의 추억들이 반짝였다.

여행은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튀니지에서의 시간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여정이자,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갔다.

"앗쌀라아무알라이쿰"(당신에게 신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이라는 튀니지 인사말처럼, 여행은 우리에게 평화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낯선 땅에서 만난 따뜻한 미소, 서툰 대화 속에서 느낀 진심,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감동.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처음 북아프리카행을 결정했을 때는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 쌓였다. 하지만 튀니지에서의 일상이 쌓여갈수록 그런 염려는 스르륵 녹아내렸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아 친근함마저 느꼈진다.

파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 소박하고 순박한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곳이 바로 튀니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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