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서 마주한 6년 전의 나
2018년 가을, 파리에 처음 발을 디딘 나는 그야말로 '시골 쥐'였다. 튀니지에서 온 나에게 파리는 영화 속에서나 보던 도시였고,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 당시 나는 두 달간의 짧은 파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이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잘못 탄 덕분에(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운명이었나?)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이렇게 크고 화려한 식물원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튀니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규모와 아름다움이었으니까.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넋을 잃었다.
"이런 곳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정원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꽃들이 제각각의 색깔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빨간 장미, 노란 국화, 보라빛 라벤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꽃들이 가을햇살 아래 자신만의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들은 마치 하늘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단정하게 서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 고귀해 보였다.
정원을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건물들마저 작은 궁전처럼 보였고, 마치 베르사유의 한 조각을 파리 한복판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넋을 잃고 정원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정원을 한참 둘러보다가 온실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온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파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브라질 아마존 정글로 떨어진 기분이었달까?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고, 이름 모를 열대 식물들이 온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습도가 높아진 공기 속에서 이국적인 식물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바오밥나무처럼 생긴 거대한 나무부터 선인장 정원, 그리고 정말 아마존에서 온 듯한 열대 식물들까지...
"여기가 정말 파리 맞나?"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새소리까지 들려왔다. 온실 안에는 작은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식물원 곳곳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정말 정글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시골에서 처음 도시로 나온 아이처럼, 경이로움과 놀라움에 빠져 한참을 헤맸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magical했다. 그런 기억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 그날의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며 온실을 거닐던 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그 후로 파리에서 지내는 두 달 동안 나는 이곳을 몇 차례 더 찾았다. 갈 때마다 이곳은 '나만의 비밀 정원'이 되어주었다. 정원을 거닐 때면 마치 행복한 왕비가 된 기분이었다. 시인이 된 것처럼 사색에 잠기고,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충만했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평온함에 사로잡혀 시간을 보내는 이 경험은 언제나 특별했다. 파리에서의 첫 경험들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어려웠지만, 이곳만큼은 완전한 휴식이자 위안이었다. 마치 파리지앵 여인이 된 것처럼 우아하게 산책을 즐기며, 내 마음속에 평화로운 시간들을 쌓아갔다.
그렇게 기억 속에 깊이 새긴 채 한국으로 돌아갔고,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2024년 가을, 나는 다시 파리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유학생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이었고, 동시에 여행 에세이 작가로서 파리의 이야기들을 기록해야 하는 책임감도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식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겨울의 정원은 또 어떤 색깔을 입고 있을까? 궁금했다.
지하철 6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도착한 식물원은... 어? 뭔가 달랐다.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공룡들과 코끼리, 각종 동물 형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잘못 온 건 아닌가? 어린이 동산에 온 건 아닌가?"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이곳은 분명 내가 기억하는 그 식물원이었다. 겨울을 앞두고 꽃들이 자리를 비운 정원에,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되던 동물 형상들이 새로운 볼거리로 정원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동물 모형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였고,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들과 만날 수 있는 작은 동물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함께 즐기기 좋은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부모와 아이들이 즐겁게 산책을 즐길 수 있게 세심하게 배려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이제 단순한 식물원을 넘어서 온 가족이 함께 자연을 배우고 즐기는 교육 공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식물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내부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파리의 가을 바람이 제법 차가워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이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서관 안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공부에 열중하며, 어르신들은 조용히 독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차가운 파리의 겨울 바람을 피해 잠시 몸을 녹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파리지앵들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삶의 공간'이라는 것을. 관광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편안한 쉼터 같은 곳이었다.
도서관에서의 평온을 만끽하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와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단풍이 든 길을 걸었다.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마치 진짜 파리지앵 여인이 된 기분이었다. 6년 전처럼 다시 그 특별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 식물원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봄이면 봄대로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화사함이 있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무성한 녹음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가을이면 가을대로 단풍과 낙엽이 만들어내는 깊은 정취가 있고, 겨울에는 또 어떤 고요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눈이 소복이 덮인 겨울의 정원을 상상해보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얼마나 낭만적일까?
특히 파리를 여행하기에는 5월과 6월의 봄이 정말 최고다. 파리의 5월은 그야말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꽃들이 제일 화려하게 피어나는 시기이면서, 날씨도 따뜻하고 화창하다. 그때 파리에 오게 된다면 이곳 식물원에서 계절의 매력을 만끽해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파리 식물원, 프랑스어로 Le Jardin des Plantes는 단순한 식물원이 아니다. 1626년에 설립되어 17세기 초 루이 13세의 명으로 조성된 이곳은 과거 왕의 약초 정원이었다. 거의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이자, 과학과 역사가 녹아있는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은 시민들과 학자들이 자연을 배우고 연구하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았다. 약 28헥타르(약 280,000㎡)의 넓은 면적에 장미 정원, 알파인 정원, 수목원 등 다양한 테마의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대형 온실은 정말 볼거리다. 다양한 열대 및 아열대 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바오밥나무부터 각종 선인장, 그리고 정말 브라질 아마존에서 온 듯한 열대 식물들까지... 파리에서 이런 이국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자연사박물관도 함께 있어서 희귀한 화석부터 공룡 골격, 다양한 동물 표본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웅장한 공간이다.
지금은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여행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고, 때로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외로움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곳 식물원은 나에게 소중한 쉼터가 되어준다.
6년 전 첫 만남 때처럼,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마음이 지쳐갈 때마다, 나는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기록해서, 언젠가는 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파리에서의 삶은 매일이 새로운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모아서, 파리의 진짜 매력을 전하고 싶다. 관광 가이드북에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을 말이다.
파리 식물원 (Jardin des Plantes) 완전 가이드
� 위치: 57 Rue Cuvier, 75005 Paris
� 교통: 지하철 5호선 Gare d'Austerlitz 역, 7호선 Pont Neuf 역
⏰ 운영시간: 매일 7:30-20:00 (겨울철 단축 운영)
� 입장료: 정원은 무료, 온실 및 박물관 별도 요금
� 베스트 시즌: 5-6월 (꽃들이 가장 화려한 시기)
���� 추천 포인트: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최적, 도서관 휴식 공간 있음
� 여행 팁: 온실은 별도 입장료가 있으니 미리 확인하세요.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겨울에는 동물 조형물 전시가 특별한 볼거리입니다.
'파리 일기'는 파리에서의 일상과 여행, 그리고 삶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연재 에세이입니다. 파리 유학생이자 여행 에세이 작가인 제가 직접 경험한 파리의 모습들을 매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관광 가이드북에서는 알 수 없는, 실제 파리 생활자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