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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이야기 23: 수스에서의 하루(3)

역사와 바다가 만나는 곳, 수스의 매력

by Selly 정

우리는 하루 일정으로 수스 방문을 계획했습니다. 수도 투니스와는 다른 매력을 찾아 리바트(Ribat), 부자파르 해변(Boujaffar Beach), 그리고 그랑 모스크를 둘러보기로 했어요. 커다란 구시가지 메디나와 전통시장 수크는 이미 투니스에서 경험했기에, 이번엔 수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한 유적지와 해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랑 모스크는 비록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외관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어요.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웅장한 건축미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닫힌 문 너머의 세계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종교적 관습을 존중하며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어요.

리바트 역시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탑이나 망루까지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쓰립니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꼭 망루 정상에 올라 수스 시내를 한눈에 담아보고 싶어요. 과거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이 요새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얼마나 장관일까요?



평생 잊지 못할 부자파르 해변

하지만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부자파르 해변이었습니다. 이곳은 한 번 발을 디디면 영원히 잊지 못할 마법 같은 공간이었어요. 사실 저는 한국에서 내륙 지방에 살았기에 바다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성인이 된 후에도 여름휴가라고 해봐야 대개 계곡이나 산속이 전부였죠.

그래서일까요? 부자파르 해변의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 앞에서 저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문학을 전공한 제가 그 광경을 묘사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으니까요. 그저 "와, 세상에,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사만 연달아 내뱉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발가락 사이로,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이란! 마치 갓 구운 카스테라 빵을 밟는 듯한 폭신함이었어요. 모래가 그렇게 곱고 가늘 수가 없었습니다. 하얀빛을 띠는 고운 모래들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감촉은 해변을 거닐며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었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수스( Sousse )의 미식 탐방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지 음식이잖아요? 우리는 수스에서 다양한 튀니지 요리를 맛보았습니다.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해산물 쿠스쿠스, 얇은 밀가루 반죽에 참치와 감자, 달걀을 넣어 바삭하게 튀긴 '브릭', 병아리콩으로 만든 따뜻한 '라블라비' 수프, 그리고 대추야자와 견과류, 꿀을 사용한 달콤한 디저트 '마크루드(Makroud)'까지. 입 안 가득 퍼지는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연은 또 다른 차원의 여행이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제가 한국에서 가져간 맥심 커피 한 잔과 튀니지인들이 즐겨 마시는 민트 티를 곁들였어요. 이렇게 수스의 맛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마지막으로 현지 전통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전통시장은 투니스의 메디나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보기 드문 동양인 관광객이었던 저희를 향해 상인들은 열정적으로 호객행위를 했어요. 지나가는 곳마다 "어디서 왔어요?", "들어와서 구경하세요!"라며 말을 걸어와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물건 가격은 매우 저렴했지만, 딱히 살 것이 없어 그냥 지나치려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고민 끝에 우리는 요리를 위한 도구들, 도마와 다양한 크기의 나무로 만들어진 조리도구들을 구매했습니다. 상인이 아랍어로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을 골랐어요. 가격은 처음에 비싸게 부르더니, 남편이 절반 이하로 흥정하자 순순히 응하더군요. 너무 싸게 사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지만, '이게 적정한 가격이겠지'라고 위안하며 구매를 마쳤습니다.


웃음소리로 가득한 놀이공원과 아쉬운 귀로

시장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놀이공원이었어요. 마치 작은 디즈니랜드 같은 이곳에서 느낀 건, 놀이터는 어디를 가나 경계 없는 행복의 공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미소와 웃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곳, 낯선 이방인에게도 마음을 열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바로 놀이터였어요. 우리도 기분 좋게 현지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아쉽게도 늦은 시간이라 놀이기구는 타보지 못했지만요.

놀이공원을 끝으로 수스에서의 하루 여정은 막을 내렸습니다. 투니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와 딸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집 앞이더군요. 피곤할 텐데도 홀로 운전대를 잡고 안전하게 데려온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습니다. 우리가 단잠에 빠져있는 동안, 그는 피로를 견디며 집까지 차를 몰았으니까요.

수스 여행은 튀니지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추억으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해변의 감촉과 바다의 색, 역사적 건축물의 위엄, 이국적인 음식의 맛, 그리고 현지인들의 친절함까지... 모든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새겨졌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수스를 추천합니다

수스는 튀니지의 다른 지역보다 관광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가격대의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이 여행자의 취향과 예산에 맞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해변 휴양지를 넘어 3,000년이 넘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특별한 도시입니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 황금빛 모래사장,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메디나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수스가 왜 수많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튀니지를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수스를 꼭 한번쯤 들러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당신의 영혼에도 지중해의 따스한 햇살처럼 반짝이는 추억이 새겨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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