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바대학 졸업생들과의 산행 이야기
튀니지에서 보낸 4년 반, 즉 54개월의 시간 동안 간직하게 된 추억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 있다면, 바로 학생들과 함께했던 여행 이야기일 것입니다. 마누바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튀니지는 4-5월의 날씨가 일 년 중 가장 맑고 온화하여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3년간 한국어를 가르쳐온 3학년 학생들이 5월 말에 드디어 졸업을 앞두고 있었죠. 낯선 북아프리카 땅에 첫발을 내딛고 한국어 교사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을 때 만난 이 학생들은 특별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3년을 함께했으니, 얼마나 깊은 정이 들었겠습니까? 처음 마주한 학생들, 처음 시작한 강사 활동이었기에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했던 그 순간들. 그렇게 첫 출발선에서 만난 학생들이 어느새 졸업을 앞둔 3학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어 선생님과의 작별을 앞두고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던 학생들은 어느 날 저에게 '패키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패키지 여행이요? 어디로 가고 싶은데요? 좋은 장소가 있나요?" 제가 묻자, 학생들은 '아인드리함'이라는 산을 추천했습니다. 투니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을 그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곳에서 눈을 볼 수 있다고요?" "네!" 학생들은 마치 합창단처럼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는 눈을 보기가 너무 어려워요. 투니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요. 하지만 아인드리함에 가면 산꼭대기에 쌓인 눈을 멀리서 볼 수 있고, 더 높이 올라가면 가까이서 눈도 보고, 심지어 만져볼 수도 있어요. 선생님, 우리 아인드리함에 가요!" 학생들의 간절한 눈빛에서 그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남학생들은 자유롭게 튀니지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지만, 여학생들은 부모의 허락 없이는 외박은커녕 투니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근교나 지방으로의 여행조차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함께하는 공식 패키지 여행이라면 부모님들이 허락해 줄 거라고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책임 하에, 학교의 승인을 받고, 다른 여행 그룹과 함께한다면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죠.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이미 23살에 가까운 여학생들이 부모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지방 여행조차 할 수 없다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학생들의 간절한 바람과 애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 역시 '아인드리함'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요. 그렇게 우리는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니, 3학년 졸업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죠. 1, 2학년 학생들에게도 소식을 전해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만의 여행이 아닌 공식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학생들에게 먼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인문대학 교처장의 승인도 얻자고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은 기쁨에 겨워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산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눈을 보고 싶어도, 만지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산행과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특별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고, 그 모습을 보며 제 가슴은 뭉클해졌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며 희망을 품게 된 그들이 이번에는 선생님과의 동행으로 부모님의 허락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토록 보고 싶던 하얀 눈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넘쳐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저도 활짝 웃으며 힘차게 외쳤습니다. "오예! 산에 갑시다. 여행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