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음악의 성공 치트키는 신나는 박자에 멜랑콜리한 가사를 얹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흥미로운 전략이라 생각했지만, 곱씹다 보니 마음에 걸렸다. 왜 사람들은 이 조합에 쉽게 마음을 열까?
나는 그 이유가 ‘감정 표현의 서툼’에 있다고 생각한다.
슬퍼도 웃어야 한다고 배운 사람들, 정말 기뻐도 마음껏 웃지 못했던 사람들.
‘배려’라는 말을 내세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
이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 때론 무서울 정도로 낯설어진다.
그래서일까, 신나는 리듬 속 멜랑콜리한 노랫말은 그런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마음 깊은 곳, 말하지 못한 감정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학교에서의 나를 돌아본다.
교사인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 감정보다 앞서야 할 ‘관리’의 태도.
그렇게 나는 점점 삐에로가 되어갔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고, 말하고 있어도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아이들과 함께 웃었을 때, 한 아이가 외쳤다.
“야, 선생님 웃었다!!”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평소에도 웃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그날은, 정말 웃겨서 웃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 ‘진짜 웃음’을 알아본 것이다.
학생들은 대단한 것을 발견하면 시키지 않아도 소리친다.
나비가 날아가는 걸 보고 외치고, 죽은 애벌레를 보고 울 수 있는 아이들이다.
그날의 나도, 그런 아이들에게 발견된 ‘무언가’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로 했다.
수업 중엔 여전히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적어도 수업이 끝난 뒤 찾아오는 아이들 앞에서는
'나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교사는 신도, 로봇도 아니다.
아이들은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원한다.
이런 나를 응원해준 건, 동학년 선생님들이었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가면을 벗어도 괜찮은 시간을 함께 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진심은 닿는다. 마음은 연결된다.
군대 선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을 믿지 말고, 믿음을 줘라.”
감정도 마찬가지다.
교사는 먼저 감정을 열고, 따뜻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감정을 편안하게 꺼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