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많은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면 친구가 된다. 절친과의 이별은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말한다. 친구를 자신과 혼동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잘 이해할 때 친구로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의견차이가 있는 사람과는 어떻게 친구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재산이 200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의 부자다. 그런데도 한동안 스페이스X 공장이 있는 텍사스의 방 3칸짜리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를 위해 실리콘밸리에 갈 때는 호텔이 아닌 구글CEO인 래리 페이지의 집에 머물곤 했다. 밤새 피자를 먹으며 프로그래밍과 인류의 미래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한 토론하는 사이였다. 단순한 친구관계를 넘어 동반자와 같았다.
머스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하여 빌 게이츠가 설립한 기빙 플레지(Giving Plage)에 가입하여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머스크는 인류를 위해 화성을 개척하는 것이 가치있는 목표이며 혁신이고 자선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는 다르다. 인류의 미래가치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혁신하는 것이 자선이라고 정의한다. TED인터뷰에서 자신이 사고로 죽게 되면 자신의 재산을 머스크에게 주겠다는 말한다. 이처럼 둘은 절친이었다.
그런데 페이지와 머스크는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페이지는 인간의 지능과 의식을 가진 수퍼AI가 인류에게 무수한 편익을 제공으로 믿고 개발을 서두른다. 반면 머스크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을 시 인간이 지적으로 우월한 인공지능에게 대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위험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페이지는 머스크를 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하고, 머스크는 페이지가 ‘디지털 신’을 만들려 한다고 비난한다.
머스크는 구글이 슈퍼AI 개발을 위해 딥마인드를 인수하고자 할 때 크게 반발하였다. 그리고 구글-딥마인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2015년 샘 알트만과 협력하여 비영리조직인 OpenAI를 설립했다. 문제는 머스크가 구글의 AI최고 전문가인 일리야 수츠케버를 몰래 영입했다는 것이다. 페이지는 크게 분노하였다. 그렇게 절친은 우정의 문을 닫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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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기업 마이크로소프(MS)는 학교 친구인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Allen)이 공동창업한 회사이다. 둘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고등학교 시절 이미 선생님을 능가였으며 프로그래밍을 통해 용돈을 벌어 영화를 보며 청춘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1975년 워싱톤주립대를 다니던 앨런은 하버드 학생인 빌을 찾아가 전자전문잡지에 실린 초기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8800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의미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앨런과 공동 창업했다. 창업 5년 만에 자신들이 개발한 운영체계인 MS-DOS를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제조사인 IBM에 납품한 데 이어, 1985년 윈도우를 출시함으로써 컴퓨터 운영체계의 최강자가 되었다.
둘의 성격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게이츠는 논쟁적이고 계산적인 반면, 앨런은 온화하지만 괴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둘은 모두 프로그래밍에 참여했지만 앨런의 기여도가 더 컸다. 하지만 게이츠는 노골적으로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갔고, 앨런은 이를 묵인했다. 게이츠가 변호사 아버지와 은행가 어머니의 인맥을 활용하여 IBM납품과 같은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한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MS의 수익모델인 ‘컴퓨터 1대당 1개 소프트웨어 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앨런의 아이디어였다.
앨런은 자신을 ‘아이디어 맨’ 그리고 게이츠를 ‘타고난 사업가’로 평가했다. 앨런은 자신의 프로그래밍 성과가 게이츠의 비즈니스 성과에 가려지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아이디어는 대부분 자신의 것이며 ‘게이츠는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고 혹평했다.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에 걸렸을 때도 게이츠는 지분을 늘리는 데만 골몰했다고 비난했다. 나중에 게이츠가 앨런에게 사과했지만 앨런은 ‘불행하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는 말을 남기고 1983년 MS를 떠났다.
앨런가 MS를 사직한 또 다른 이유는 림프종이었다. 사직의 계기가 된 림프종은 방사선 치료로 완치되었으나 2009년 다른 유형의 림프종이 발생하여 다시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2018년 재발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림프종이 재발하였을 때 게이츠는 앨런에게 연락하여 모든 것을 털어놓고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앨런은 사직이후 2000년까지 이사회 멤버로 MS에 애정을 보였다. 게이츠와 앨런은 회사운영에 있어 반목도 있었지만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앨런은 게이츠의 과도한 밀어붙이기식 경영에 반감을 가졌지만 문제해결능력은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게이츠는 말한다. “내 기억과 앨런의 것은 많이 다르지만 나는 우리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의 공헌에 감사한다. 앨런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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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 주고 슬픔은 반으로 줄여준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가진 것과 같다. 오랜 친구는 내 모습의 거울이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이해할 것으로 생각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던진다. 나중에 미안하단 말로 눈에 보이는 상처를 덮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할 수 없다. 게이츠의 사과는 앨런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없앨 수 없다.
학교 다닐 때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덩치도 비슷하여 거의 하루 종일 붙어 다닐 만큼 가까웠다. 누가 봐도 절친이었다. 어느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말다툼이 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그러다 말았을 텐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절친은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모욕을 주는 말을 시작했고 싸움으로 이어졌다. 가까웠던 만큼 서로가 알고 있는 가장 민감한 부분을 공격했다. 나는 그 모욕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도 그랬겠지. 절친(切親)의 어원은 ‘고통을 덜어주는 친구’인데 그땐 그렇지 못했다. 절친에게 받은 상처는 더 아프고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