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 그늘이 그렇게 큰 건지 몰랐어..."
신랑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화를 했고 알게 되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꾹 참고 있었던 것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항상 임계점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
" 누군가의 그늘이 된다는 건 내 생명을 투자해야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이 죽음을 향하는 과정이고
지금도 나의 수명은 줄어들고 있지만
누군가의 그늘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생명을 투자해야 한다.
자식의 입장이었을 때는 그 그늘이 그렇게 큰 것인지 몰랐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내 한 몸도 건사하지 못했던 내가
누군가를 건사한다는 것이 큰 희생이 따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희생을
그늘이 되어주는 일을 하기 싫다고 한다.
삶은 너무나 각박하고 사람 간의 교류도 정도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현실이라고 한다.
내 몸을 다 주고 나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그늘이 되어주는 일이라고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이렇게 대를 이어왔고
나도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 먹고 산다는 게 뭔지.."
이 말을 듣고 자라왔지만
이 말을 내가 할 줄이야...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부모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은 내 입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원망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지는 않는다.
나의 사명처럼
나의 숙명처럼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끔은 복받치게 눈물이 차올라도
답답함에 가슴을 치게 되더라도
자식이 주는 잠깐의 기쁨에 웃음 짓게 된다.
부모가 되어서 갑자기 인생이
확 무거워진 것은 아니다.
인생은 원래 무거웠다.
원래 무거운데 더 무거워져서
너무 버거운 것이다.
누군가는 책임감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인생 살아가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수고와 사랑과 희생 피땀이 들어가는 것은
틀림없다.
나의 그늘 속에 사는 아이도
무조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민과 고통 속에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겠지.
요즘은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삶에 대한 무게도 무게지만
감정도 몸도 다 낡아버려서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감정들이 너무 생소해진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고 좋아했던 순수했던 마음
천진난만했던 발걸음
내가 걸어 다녔던 동네
느꼈던 감정들이 그립다.
예전에 울 엄마가 그 말을 하셨다.
" 옛날에는 찐빵도 도넛도 이런 맛이 아니었어.
진짜 맛있었는데 맛이 변했어 그 맛이 아니아. "
배고팠던 시절 먹을 것이 별로 없었을 때는
그 찐빵이 정말 맛있었을 것 같다.
엄마도 나이가 들면서 먹을 것들이 흔해지니
그만큼의 맛이 안 났던 거 아닐까.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 미용실 1층 작은 동네빵집 베이비슈 빵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 맛이 안 난다.
그 좋던 친구들도 다 사라지고 거의 남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그늘 속에서 많은 행복을 누렸음에 틀림없다.
이제는 내가 그 행복을 내 자식한테 돌려줘야 하는 입장이다.
그때는 그 그늘이 완벽하지 않다고
매일 투덜거리고
매일 짜증 냈지만
얼마나 고되게 그 그늘을 만들어주셨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요즘은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는 옛 방식도 아니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철학이 지배적이다.
하루를 버틴다는 부담스러움도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는
우울함도 바뀌는 건 없겠지만
조금 더 즐겁게 가볍게 단순하게
생각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잠깐의 틈이라도 사랑한다 말하고
더 열심히 사랑해서 최고의 그늘이 아니라도
최선의 그늘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도 얼굴 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틈새는
한번 더 안아주고 사랑해 줄 틈새는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