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감정에 동요되지 마세요
벌써 8년 정도 된 것 같다.
공황장애로 서초구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들은 말이다.
한의학에서는 자율신경실조증이라고 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조절이 제대로 안 되는
나의 이 병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서
응급실에 가면
심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고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호흡곤란이 오는데
죽지는 않는다.
식이장애가 올 때는 밥 한 숟가락만 먹기 힘들다.
체할 것 같고 속이 답답하면서 소화가 안 된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웠을 때
용하다는 한의원이 있어서 6개월 정도 약을 먹었다.
그리고 감정을 다루는 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
심리상담처럼 자세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핵심적인 해결책을 주신듯 하다.
나 같은 외골수들
감정의 동요가 너무나 큰 사람에게는 큰 팁이었다.
어떤 분야든 한번 빠져들면
밤낮이 없고
그 생각 밖에 없고
미친 사람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내 성격이
공황장애라는 극심한 지옥 속에 빠지게 했는지 모른다
흥분상태가 오래되다 보면
호흡이 짧아지는 것처럼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내가 꽂히는 일에 빠져드니까.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모 아니면 도를 좋아하고
중간이 없다
그래서 나의 증상도 극단적으로 왔을 것이다.
감정의 폭이 크다 보니
피로감도 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과 감정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담으려고만 했으니
내 작은 그릇이 터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올인하고
일을 좋아하게 되면 그 일에 올인하게 된다.
그래서 한의사의 말처럼
감정의 폭을 줄여나가고 좀 더 차분하게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조금씩 연습했던 것 같다.
아니 강제로 그렇게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불도저 같은 열정을 낼 만함 힘이 남아있지 않고
열렬히 사랑할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공황장애라는 아픔이 없었다면
또 다른 코너에 나를 몰아넣거나
들이받아서 다른 어딘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10여 년 가까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치고 지칠 만큼 증상은 반복되었다.
그리면서 내가 깎이게 된 건지
힘이 빠진 건지
요즘의 나는 꽤나 미지근해졌다.
너무 기쁜 것도 크게 기쁘게 느껴지지 않고
너무 싫은 것도 노여움의 크기가 예전처럼 크지 않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은 적이 있다.
감기로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오한과 함께 체기가 올라오면서
다리가 힘이 풀렸다.
너무 놀란 직장동료들이 119를 불렀는데
사실 의식을 잃은 건 아니라서
119를 타고 가기 민망하긴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 옆에 앉아있던 직장동료가
"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해. 매일 아프니 남편이 너무 안되었어.
몸이 그래서 밤 일을 어떻게 하겠어. 남편이 힘들겠다. "
라고 한 마디 했다.
" 그러게요. 남편한테 미안하죠."
라고 웃으며 대답하고 집에 오는 길에
자꾸 그 얘기가 떠올랐다.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인데
당시에는 내가 못 알아채고
나중에 좀 찜찜함이 올라온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생각나고
자기 전에도 신경 쓰여 잠도 못 잤을 텐데
기분 나쁜 감정이 크게 나를 요동하지는 않았다.
" 기분이 나쁘네.
다음에 또 그런 말을 하면 정색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남편에게 한 풀이하듯 직장동료 험담을 하고
털어 버렸다.
그리고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일을 크게 부풀려서
분노에 휩싸였을 텐데 내가 조금은 둥글어졌구나
그런데 둥글어지니 권태가 온다.
삶의 있어 크게 기쁜 일도 없고 슬픈 일도 없는데
우울함은 그대로 있어서다.
내려놓음이 삶을 서서히 포기하게 된 것만 같은
이상한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
삶의 에너지가 넘쳐서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는
활력도 있고
생명력도 있었는데..
몸 상태가 그걸 감당하지 못해 병이 났다.
이제는 기본적인 체력도 안되다 보니
남들이 하는 만큼 일하는 것도 버겁다.
거기에 더불어
무너진 몸과 마음을 하나씩 복구하는 것이
지치고 힘이 들고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다.
10여 년을 방황했는데.
이 끝이 오직 죽음일 것 만 같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어쩌면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열정적인 삶의 방식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었을까.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정신없이 몰입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일이
나를 사로잡는 삶의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
그러한 자연의 삶을 지향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내가 지쳐서 권태 온 건지
요양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아직 나만의 기준과 가치관
중심이 단단히 자리잡지 않아서
계속 방황하는 건지도 모른다.
다 내려놓은 건지
삶의 희망을 포기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몸과 마음이 모두 소통이 되어서
막힌 것이 없어야 건강하다는 것
내려놓은 것은 무엇이고
포기한 것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구분하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봐야겠다.
불필요한 부분은 깎여 나가야 하지만
나의 살점까지 깎아서는 안된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어야 하지만
삶의 희망마저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사람은 변화에도 조율이 필요하다
갑자기 변하면 사람이 죽는단다.
결단은 좋지만 극단적으로 변하지는 말자.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