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 나쁨은 잠깐으로 끝났다.

by 최지안

사람 사이 말이나 행동에 굉장히 신경 쓴다.

나 스스로 타인에게 매우 조심하는 스타일이고

기분 나빠지는 포인트도 사소하다.



다행히 오늘의 기분 나쁨은 잠깐으로 끝났다.



" 난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이야. "

평소에 이렇게 생각해 왔다.

오늘 사전을 찾아보니

자신이 이룬 일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란다.



스스로 부딪치는 마음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모습을

일컫는다.



스스로를 미흡하게 생각하고

하찮게 여기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는 나의 권리를 조금 더

주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피해의식까지 느끼다 보니

자격지심과 더불어 남도 나를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느끼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은

언제나 후폭풍처럼 상황이 지나간 다음에 온다.



" 아까 그 말을 했던 건 나를 이미 판단하고

말한 거였잖아. 그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제대로 대처를 못했네."

항상 이렇게 후회한다.



지나고 보니 기분 나쁜 말이었고

나를 무시하는 말이었는데

꼭 그 상황이 지나간 후에 곱씹어야 느껴진다.



밤에 잠이 안 오고 상황만 계속 시뮬레이션으로

돌아간다. 이불킥! 하듯 상상킥! 을 한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할 거라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되뇐다.



자격지심 사전적 의미: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마음.

자격지심이 맞다.



피해의식 사전적 의미:

명예 따위에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나 견해

피해의식이 맞다.



오늘은 집에 손님이 오셨다.

유아 학습기기 체험신청을 했는데

태블릿 pc를 설명해 주실 선생님이 1회

방문을 해주신 것이다.



" 선생님 마스크랑 옷 벗으셔도 돼요"

아이가 먼저 살갑게 다가섰다.



" 어머, 선생님 배려해 주는 거야. 고마워~"

선생님은 마스크와 외투를 벗고

학습기기를 켜셨다. 유아학습기기라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아이는 이내 이것저것

누르면서 곧 잘 따라 했다.



" 저희 학습기기 신청할 마음은 있으시죠? "



2년 약정은 월정액이 얼마인지

1년 약정은 월정액이 얼마인지

중도해지 시 위약금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물어보았다.



학습기기는 일주일 체험이 있고

바로 계약을 할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계약을 해도 일주일 안에

카드 취소가 된다면서 계약을 유도했다.

일단 일주일 체험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다음 질문이 신청할 마음은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궁지에 몰린 듯 신청할 마음이

있다는 걸 어필하기 시작했다.



체험기기 일주일 신청은 선생님 입장에서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업일을 해봐서 알지만

당장의 계약을 이끌어내야 실적이 올라간다.

나중에 취소를 하더라도 계약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1년을 약정하면 한 달에 10만 원이 좀 넘는다.

2년을 약정하면 6만 9천 원(이것도 파격 할인가라고 했다.)

중간에 해지를 하게 될 경우

기기값은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일주일 체험이 있다고 해서 신청한 것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변명할 이유가 없었고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어쨌든 아이가 써보고 나서 결정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라고 무료체험이 있는 거니까.



선생님 입장에서는 카드를 미리 결제해도

일주일 안에 취소가 되는데

나처럼 체험만 한다는 사람은

계약할 마음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체험기기를 주고 가면서

어차피 이 주변이 본인이 관리하는 구역이라며

일주일 후에 다시 기기를 가지로 온다고 했다.


" 그래도 혹시 신청하실 수도 있는 거니까

제가 체험기기 가져러 직접 올게요."



마지막 한방을 훅 날리고 가신다.

난 분명 체험학습을 해보고 나서

신청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뭐 경험상 나 같은 사람은 신청을 안 한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 네.... 안녕히 가세요. "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분이 나쁘다.



"일주일 체험신청한 사람은 다 계약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 집이 가난한 아파트라고 무시하나? "

나의 결정에 대해 미리 판단해 버린 선생님의

태도가 기분이 나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도 내가 저 선생님이라면

이런 걸 더 물어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일이 한 집 한 집 방문하면서

자기 회사 제품을 홍보하고

학부모와 상담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지는 예상이 간다.

우리 집에 방문한 시각만 봐도 앞전 상담이 있었고

이미 진이 빠졌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달리 선생님은 계약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충만하신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오셔서 인지

계약여부가 중요해서 인지는 몰라도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어떤 학습을 원하는지 물어보시지 않았다.



학습 효과는 어떤지 등 기본적인 틀이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모든 생각이 정리가 된다.



내가 기분이 나빴던 포인트는

신청할 생각은 있는 거냐는

그 질문이었다.



신청할 마음도 없는데 체험만 해보려고 시킨 거 아니에요?

라는 말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피해의식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평소 같았으면 선생님이 미웠을 것 같다.



" 이런 아파트에 산다고 누구를 거지로 보나? "

피해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약간 생각을 달리 해본다.



1. 내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자.



그 사람 목적은 계약이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성심성의껏 회사의 제품을 알리러 온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든

나의 결정을 판단했든

그 사람의 자유인 것이고

여기까지 방문해 준 것을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자.



태도가 불성실하거나 불쾌한 뉘앙스는 아니었으니까.



2. 내 마음을 들키지 말자



사실 난 학습기기에 대해

메리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아이가 평소에 해보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고

체험신청도 교보문고에서 학습기기를

영업하시는 분들에 의해 신청을 했다.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아이가 기기를 통해 학습을

잘 해낸다면 부담이 되더라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신청해 줄 것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니까.



가격이나 중도해지 시 태블릿 pc 가격을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는 부분이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부담돼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사람이다 보니

내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않았을까?



3. 나 역시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었다.



소싯적 학교 강의를 했었다.

결혼 전 강사를 했고 학생상담도

많이 했기 때문에 상담은 질문과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늘 방문한 선생님을

판단하고 있었다.



" 나였다면 저렇게 상담하지 않았을 텐데..

왜 질문을 안 하고 바로 본색을 드러내지?



마음이 열려야 선생님에 대한 정을 봐서라도

계약을 하는 거 아닌가? "



나라면 어떻게 상담했을까? 상담 내내

혼자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대방도 나를 판단했겠지.

계약할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나도 상대방을 판단하고 있었으니

상대방이 나를 판단했다고

기분 나빠하지 말자.




" 신청할 마음은 있으신 거죠? "라고

했을 때



" 신청할 마음이 있으니까 무료체험

해보겠다고 했겠죠?"

이렇게 되받아쳐야 했는데!

가고 나니 멘트가 생각난다.



오늘도 자기 방어를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언제 난 앙칼지게 쏘아붙여 볼까?

쏘아붙이면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나의 피해의식과 자격지심 문제일지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만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이고

짚고 넘어갈 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억울한 건 항상 사건이 벌어진 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더 예리해지는 건지

이것도 연습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기분 나쁨은 잠깐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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