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를 옮기시는 분들과 작별 기념 그간 고생하셨다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연차가 낮은 직원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말에 본의 아니게 개똥철학처럼 말이 길어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마가 뜨는' 말이 없는 침묵상황이 어색해서 뭐라도 말을 하게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식사시간에 말이 많아집니다. 고쳐야지 하는데 잘 안되네요.
저희 회사는 최근 관리자 인사를 먼저 하고 그 후 직원들의 부서이동 선호를 조사해서 이를 감안하여 하위직급 직원 배치를 하는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관리자가 누군지에 따라 부서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관리자가 누군지에 따라 부서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업무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선호에 차이가 있는건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특히 직급이 낮을수록 상급자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혹은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덜 끼치는 사람을 찾는 것을 뭐라 할수는 없습니다.
제가 식사자리에서 말했던 요지는, 업의 본질을 먼저 생각하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덜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우리 부서가, 그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왜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설사 그와 다른 생각을 하는, 혹은 전혀 일의 방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상사나 동료를 만나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이죠.
예를 들어서 말해보았습니다. 환경분야에서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가 '쓰레기 수거 관련 주민협의체 운영'이라고 해봅시다. 일반적으로 공공부문에서 자리배치를 받고 담당하는 업무를 안내받을때 전임자의 인수인계 내용은 주민협의체의 구성원이 누군지, 회의는 1년에 몇번 열고 누가 주재하는지 정도입니다. 사실 협의체이든 위원회이든 회의일정을 잡고 위원들을 소집하고 회의내용을 정리하고 쟁점을 보고하는 정도의 일일 것입니다. 임기가 끝난 위원들을 대체할 신규위원 후보를 추천하는 정도가 좀 까다로울수는 있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업무라고 하기도 그렇고 본인도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발짝 더 나아가보면 이 주민협의체는 왜 필요할까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뭔가 갈등요소가 많으니까 필요했겠지요. 쓰레기 수거에 연결된 문제는 뭘까. 쓰레기는 하루평균 몇톤이 발생하고 몇톤이 소각되고 몇톤이 매립될까.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그럼 그 처리비용 중에 주민들이 얼마나 부담하고 세금으로 얼마나 지원될까.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주로 민원을 제기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주민들과 쓰레기 처리업체와 관할기관 사이의 갈등지점은 어디일까. 그 과정에서 주민협의체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의견들이 주로 반영되어야 할까. 관할기관이 받아들여야하는 의견은 어느정도이며 이를 업체와 어떻게 협의해야 할까.
놀랍게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글 검색을 하면 이런 의문들은 쉽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그만큼 우리는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설사 사소한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도 큰 차이가 납니다. 상사나 동료가 어줍지 않은 지시와 간섭을 할때 업무의 배경과 앞으로의 추진방향을 알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상사의 지시를 무시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나름의 영역에서 의사를 표현하고 절충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업무에 지치는 회사원들에게 다소 이상적인 얘기일 수 있겠지만, 회사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업무의 코어를 명확하게 하려는 노력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