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점심식사

by 에프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061438001

한때 공무원의 식사문화가 일간지와 TV뉴스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점심, 저녁시간 상사의 식사를 챙겨왔던 관행이 있긴 했습니다. 저녁에 과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과장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직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술상무를 해야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일을 할때는 나이스한 사람도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즐겨서 뒷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문화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요샌 저녁 '번개'를 강요하는 상사도 거의 없거니와 저녁 퇴근시간은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 같은 것도 생긴것 같습니다. 다만 점심 식사를 상사와 같이 먹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직 조금씩은 남아있다고도 합니다.(사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해본적이 없습니다만)


사무실을 같이 쓰는 사람들끼리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과장 이상 간부들은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서 식사하는것도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서 예민한 간부들은 직원들과 식사 자체를 피하기도 합니다. 아예 직원들이 불편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안만드는게 속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간부들과 식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물론 지난번 글에서처럼, '지나치게 영향을 주려고만 하는' 착한 간부 스타일도 같이 점심먹기 피곤한 건 맞지만, 또 인내심 강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점심 한시간 그 정도는 참을만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건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같이 먹는데 돈을 안내는' 간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 내 익명게시판에도 심심하면 '간부 점심' 관련된 글이 올라옵니다. '팀(계) 별로 순번을 정해서 과장과 점심먹는 날 돌아가는 것좀 그만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종종 있지만 그보다는 직원들이 갹출해서 과장 점심까지 사는게 맞냐 하는 성토가 주를 이룹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간부들이 같이 식사한 값을 전부 부담하거나 적어도 본인것은 따로 계산하는데,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간부가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식사자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직원들을 업무관련해서 타박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간부도 있다고 하니, 뭔가 아직도 공공부문은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꽤 섞여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긴 합니다.


얼마전 고위 간부 한 분이 익명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적어서 직원들의 많은 호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지는, 간부들도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고 그분들이 직원일때 상사들을 더 어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하고 했었다, 너무 거리를 두지말고 우리 동료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말한마디 걸어보자, 그리고 간부들은 식사비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본인 식비는 칼같이 계산하고 커피라도 더 사줘라,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라떼 얘기하지말고 일얘기하지말고 직원들 어떻게 사는지 일하는데 어떤게 힘든지 잘 들어봐줘라, 그런 얘기였습니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관리자의 솔직한 글에 악플이나 그 흔한 비꼬는 글 하나 없는 훈훈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간부이긴 합니다만, 대부분 외부 약속을 일부러라도 잡는편이고 직원들과 식사하는 날의 비중은 20%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럴때는 전부 내거나, 아니면 카카오페이로 제 식비를 지불하고 식후 커피를 삽니다. 뭐라도 직급이 높은 사람이 더 내는게 맞다고 생각해왔고, 당연히 저도 제 상사에게 많이 얻어먹어왔습니다. 카카오페이로 보내는 것 자체가 나이드신 간부들 사이에서는 생소한 문화이긴 합니다만, 저는 어쨌든 30대 이하 직원들 사이에서 일상화된 방식이 편리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앙부처나 메이저 공공기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아마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한 시기를 전후해서) 직원들이 간부들의 점심을 챙기지 않고 각자 알아서 식사하는 문화가 정착된 편입니다. 그래서 종종 세종시로 파견가는 직원들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점심식사 문화에 적응을 못하겠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꼭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회사에서 정식 근무시간 외의 시간을 오롯이 개인의 시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시대에서 점심식사 문화 역시 변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공부문도 10년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만큼 변한건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이전 시대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관행이 지금 맞지 않다면, 빨리빨리 바꿔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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