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어쩌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저의 기억과 다른 저의 모습을 알게 됩니다. 대학간다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은 저를 '게으른데 공부는 어느정도 하는놈'으로 기억하고 있더군요. 돌이켜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매일 밤낮없이 쓰고 외우고 학습지도 여러개를 푸는 친구들 옆에서 저는 책도 읽을만큼 읽고, 영화한다고 밤새 영화도 가끔 보고, 글도 끄적이면서 한가롭게 보였겠다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게 효율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더 노력했다면 더 성실한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늘 목표를 정해놓고 딱 그정도만 노력하는 습성이 있었으니까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더 할 수 있는데도 '딱 그정도까지'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두뇌를 핑계로 공부도 적당히, 뭘해도 최선보단 기대하는 결과치만큼 딱 그정도만, 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우쭐댔던 것도 같습니다. 남들처럼 아등바등 하지 않고 적당히 노력해서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을 나름의 마음 속 자랑이라고 여겼던 것도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간중간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또 적당한 성취를 통해서 지금의 나까지 왔습니다. 지금의 나는 대단한 성취도 아니고 별볼일 없지만 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그래도 나름 괜찮은, 적당한 만족의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 저의 상태는 그렇게 볼수 있지만 주관적으로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제가 기본적으로 뭘 할때마다 남들보다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권태, 나태, 포기, 지연...새로 뭘 배우거나 허들을 넘어야 할때마다 게으름은 습관적으로 저를 붙잡습니다. 월해도 같이 시작한 남들만큼 늘지 않고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과 비용을 적게 들이는 걸 선호하는 이른바 효율충인데도, 더 열심히 하는것도 아니고 어영부영 시간을 떼우다보니 오히려 장기적으로 효율이 낮습니다. 이런 습관은 어디서 나온걸까 곰곰히 생각해볼때가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고, 또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삶의 중간중간 이룬 성취,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작은 성취들이 있었을텐데, 그중 제 인생에 정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바탕으로 한 과정들입니다. 그 중 일부는 성공으로 이어졌고 일부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실패의 과정이 충실했기에 그나마 지금 내가 이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었구나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그렇게 대충해서 운이 좋게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경험은 장기적으로 저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우연적인 몇번의 성공이 그때는 너무너무 좋고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성과를 이룬것에 우쭐대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런 게으른 태도를 몸에 더 각인시키고, 변화를 각성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다른 시도를 할때조차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성공은 과연 성공이 맞았을까요?
우리는 10대,20대를 거치면서 인생의 사활이 걸린,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을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실패하면 인생이 그대로 끝장날것 같은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런 갈림길은 사실 엄청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길고 긴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험난한 갈림길이 계속 생기며, 초창기의 갈림길에서 했던 고민은 그냥 그 나이대가 처음 만난 인생의 파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초창기의 갈림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가 아니라, 성공을 하기위해서 충실히 채워넣었던 노력과 시간입니다. 그 결과가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때의 충실함이 몸 속에 각인되어 있다면 다음, 또 다음의 다른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운 좋게도 성실하지 않게 성공한 사람보다, 성실하게 실패한 사람이 훨씬 더 얻은게 많습니다. 다만 당사자가 그걸 당장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