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평가에 관해

by 에프오

반기말이나 연도말이 되면, 부서별 성과에 대한 평가와 그에 연동한 개인 평가때문에 직원들이 예민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과급 등 다른 인센티브가 적은 편인 공공조직은 특히나 더욱 승진과 연관된 근무평가에 예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승진보다 워라밸, 파이어족 되기 등이 더 관심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공조직은 승진을 통해 본인의 존재가치와 노력의 의미를 인정받는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러나 대규모 조직이 대부분 그러하듯 개인에 대한 평가가 개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직과 업무의 성격이 연도별 성과측정이 어려운 경우도 많고, 있다해도 그것이 개인의 성과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일을 하다보면 무자르듯 평가를 할 수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관리자 입장에서는 규정에 정해진대로 등급을 나눠서 평가를 해야하는 입장이다보니 어쩔수 없이 명확하지 않은 결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방식, 그리고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방식이 연공서열에 근거해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가장 많이 하는 방식이란 얘기는 내부논란이 적고 다수에게 수용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데, 바꿔말하면 조직구성원 다수가 연차에 대해서만큼은 어느정도 인정해주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연차가 높다고 일을 꼭 잘하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해야하는 당위성이 있는것도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합니다만, 그러나 그럼 그 외에 어떤 부분을 더 많이 고려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히 공공조직 내부에서도 특별히 일을 잘하거나 유능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거의 주요부서 요직 근무를 거쳐 동료들보다 빨리 승진루트를 타곤 합니다. 다만 승진 자리 수에 비해 그런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이고, 나머지 자리를 비슷비슷한 직원들의 경쟁을 거쳐 채우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연차가 비슷하거나 좀 낮아도 일을 잘하거나 능력있는 직원 혹은 업무부담이 많았던 직원들을 발탁승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절반이상은 연차를 고려해서 평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공부문에는 아직도 적은 급여를 받으며 묵묵히 오래 일해온 동료에 대한 온정적인 존중심이 민간보다 조금 더 많이 남아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얘기도 합니다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요? 저는 이상적인 근무평가는 조직이 필요한 관리자를 선별하는 일종의 모델 선별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래전 공공조직의 혁신을 화두로 대기업 CEO 한분과 사담을 나누다가 의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공부문의 복지부동, 무사안일이 항상 비판의 쟁점이 되곤 했던지라 어떻게 기술혁신을 통해서 조직을 혁신할 것인가 고민중이라고 했었는데, 그분이 "공공부문이 너무 빨리 앞서서 혁신하면 사회의 안정성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라고 반문하는 겁니다. 항상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저에게 생각의 전환이 되었던 대화였습니다.


민간의 조직문화가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겪을때 공공부문이 꼭 그에 속도를 맞춰서 다같이 바뀔 필요는 없다, 그런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돌이켜보니, 공공부문의 답답함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조직의 관리자들은 과감한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겠지만, 일부는 또 점증주의적 경로의존성(Path-dependency)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입장이라면, 연공서열에 가중치를 둬서 관리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꼭 과거 관행에 갇힌 폐습인가 하는 부분은 논쟁이 될 것 같습니다. 근무한 연차가 많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관리자가 되는 것이 무사안일 등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일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기존 조직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이를 바탕으로 외부 혁신 요구에도 수용성이 높은 제도설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어떤 장점을 취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어떤게 낫다라기 보다는 각자의 방식에 대한 장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정책방향과 조직의 운영비전에 따라 적재적소에 평가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평가방식이 낫냐'라는 해묵은 논쟁으로 시간을 버리기보다, '우리 조직은 어떤 조직이이고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설명이 평가방식으로 이어져야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평가 결과로 도출될 수 있겠죠. 결국 나, 또는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를 정의하는 것이 항상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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