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의 소천

해천 김현룡교수님 소천하시다!

by 정태산이높다하되

“여러분 공부는 별거 아니예요. 그냥 뭘 꾸준히 읽으면 되요. 어려운 책 읽고 쓰고 하는게 처음부터 쉽지 않으니 쉬운 소설책 끌리는 것 아무거나 구해서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읽어보세요. 나름대로 뿌듯하고 소중한 시간이 될거예요.”


복학하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학과 공부에 전혀 괸심을 못가질 때였다.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어 학기가 끝나갈 무렵 전공 수업시간(춘향전 강독)에 나같은 학생들에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아랫목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서 읽어봐요. 등과 벽 사이에 베개를 놓고 기대면 편하지요.”


방학이 됐고 나는 교수님의 조언대로 정말 책방의 소설책 코너에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 거렸던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은 내 인생의 소설 <향수>였다. 쌩덱쥐베리만큼이나 인상적인 이름의 저자는, 파크리크 쥐스킨트.


1935년 생이니 올해로 우리가 세는 연세로 치자면 91세가 되셨다. 근 한 세기를 살아오신 분이다. 그런데도 장수니 호상이니 하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교수님의 하해와 같은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제자들이 아직 온전히 전수받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평생 진심으로 학문을 사랑하셨을 거라고 내가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교수님의 표정을 몇년간 바라본 때문이다. 수양을 오랜 동안 하신 분들의 특징은 일단, 맑은 피부다. 교수님의 맑은 피부와 한없이 온화한 표정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10년마다 읽었다. 서너번 쯤 될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또다른 작품인 <좀머씨 이야기>와 <콘트라바스>도 읽게 됐다. 그리고 최근엔 내가 책을 쓰기도 했다. 교수님의 사소하지만 따뜻했던 조언에서 비롯된 일이다.


달포 전까지도 구순의 교수님의 가르침을 원하는 옛제자들을 모아 <삼국유사>를 강의하셨다고 한다. 최후의 일각까지도 공부에 진심이셨던 대학자의 삶이란 이러하다. 지극히 아름답다.


그래서 교수님은 아들과도 같은 수제자이자 애제자인 김종군(교수)이란 걸출한 인물을 키워내셨다. 수많은 제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시는 날도 마침 염천이 식어 비교적 선선하니 이 또한 수양을 많이 하신 덕택임이 분명하리라.


해천 김현룡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림제공) 아제세이, <천공의 섬> 저자 정윤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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